기후소송 ‘세기의 판결’ 뒤집고, ‘석유 공룡’ 셸 손 들어준 법원

최혜린 기자 2024. 11. 13.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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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폴스 지구의벗 네덜란드 대표가 12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 고등법원에서 셸의 탄소배출 감축에 대한 항소심 판결이 나온 후 기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지구의벗 네덜란드 제공

세계 최대 석유기업 로열더치셸에 탄소 배출을 대폭 줄이라고 명령했던 기후변화 운동의 ‘역사적 판결’이 항소심 법원에서 뒤집혔다.

AP통신 등 외신들은 12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 고등법원이 석유기업 셸에 2030년까지 탄소배출을 2019년 대비 45% 줄여야 한다고 명령한 원심 판결을 뒤집고 셸의 손을 들어줬다고 보도했다.

법원은 석유기업에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할 ‘주의 의무’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셸 측 주장을 대부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개별 기업에 대한 탄소 배출량 감축 명령은 법원이 아니라 정치의 역할이어야 한다는 셸의 주장을 인정했다. 또 감축 비율을 45%로 못 박을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면서 “현재 기후과학계는 셸과 같은 개별 기업이 줄여야 할 구체적인 이산화탄소 수준을 충분히 합의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12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 고등법원에서 석유기업 셸의 탄소배출 감축에 대한 항소심 재판이 열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재판은 5년 전 ‘지구의 벗’ 등 환경단체가 시민 1만7000여명을 대표해 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며 시작됐다. 이들은 셸의 화석연료 투자 확대가 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네덜란드 지방법원은 셸의 탄소 배출량 감축 노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환경단체 측 주장을 받아들여 “2030년 말까지 탄소 배출량을 2019년 대비 45%를 줄여야 한다”고 명령했다. 당시 재판부는 “법원 명령이 사업에 타격을 줄 수 있겠지만, 기후위기가 셸의 이익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이는 기후변화 운동의 역사에 남을 ‘기념비적 판결’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특정 기업을 상대로 온실가스 감축 책임을 직접 물은 첫 사례였고, 2015년 파리 기후협약 이후로 기업에 구체적인 실천을 요구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겼기 때문이다. 이후 세계 각지에서는 엑손모빌 등 다른 에너지 기업을 상대로 탄소배출 책임을 묻는 각종 소송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날 고등법원이 판결을 번복하면서 다른 기후 관련 소송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외신들은 전망했다.

로열더치셸 로고.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폴스 지구의벗 네덜란드 대표는 항소심 판결이 나오자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전 세계 시민들에게 절망적인 소식”이라면서도 “이번 소송을 통해 우리는 셸과 같은 환경오염 유발 기업들이 법 위에 있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그는 “기후변화에 맞서는 싸움은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이라며 “앞으로도 셸과 같은 주요 오염 기업들을 막기 위한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법원에 상고할 계획인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셸 측은 “만족스러운 판결”이라며 “이번 결정은 우리 회사뿐 아니라 네덜란드에도, 에너지 전환에 있어서도 옳은 결정”이라고 성명을 통해 밝혔다.

항소심 재판을 계기로 셸의 탄소배출 감축 노력이 후퇴할 거란 지적도 나온다. 전 세계 석유 기업의 탄소 배출량을 추적하는 비영리 연구단체 ‘카본메이저스’에 따르면 셸이 1854년 이후 배출한 이산화탄소는 전 세계 배출량의 2.1%를 차지한다.

최혜린 기자 cher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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