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같은 화면으로 매번 화제···최종 1화 남겨둔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가로등이 켜진 밤길을 걷는 여자가 있다. 키가 큰 여자인가 싶지만 다시 보니 긴 그림자다. 여자의 머리 위에 있는 카메라가 천천히 여자의 그림자를 따라간다. 조금 걷다보니 빛 때문에 그림자가 하나 더 생긴다. 꼭 세 사람이 있는 것 같다. 여자는 두 개의 그림자와 함께 계속 걷는다.
MBC 드라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이친자’) 의 이 장면은 소시오패스같기도 하고, 그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해 꼬일대로 꼬인 것 같기도 한 주인공 장하빈(채원빈)의 복잡한 성격을 감각적으로 보여줬다. 드라마는 딸이 사람을 죽였다고 의심하는 베테랑 프로파일러 장태수(한석규)와 속을 알 수 없는 딸이 펼치는 스릴러다. ‘이친자’는 흥미로운 설정만큼이나 TV 드라마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영화같은 미장센으로 화제가 됐다. 지난 11일 마지막회 편집을 마친 송연화 PD를 서울 상암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이친자’의 등장인물들이 사는 세계에는 꼭 낮이 없는 것 같다. 사건이 벌어지는 때는 늘 밤이다. 가장 어두운 곳은 주인공 부녀가 사는 집이다. 집인데 밖보다 어둡다. 벽도 바닥도 가구도 거의 검은색에 가까운 짙은 갈색이다. 드라마의 이런 분위기는 냉전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국 영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에서 영감을 받았다. “촬영 감독과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영국의 서늘하고 차갑고 뿌연 느낌이 전달되면 좋겠다고.”
극 중 거의 유일하게 밝은 공간은 태수가 일하는 경찰서다. “일반적인 드라마에서는 집을 따뜻하게, 직장을 차갑게 그려요. 그런데 태수의 시점에서는 반대죠. 태수에게 경찰서는 ‘자신이 모든 답을 알고 있는 익숙한 공간’이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조명 톤을 밝게 했어요. 집은 오히려 이 사람에게 ‘전혀 뭐가 뭔지 모르겠는 미지의 공간’이죠. 그래서 거의 불을 안 켜는 수준으로 어둡게 갔습니다.”
직선으로 곧게 구획된 도로, 절반은 수직의 담, 나머지 절반은 수평의 지붕으로 채워진 컷 등 대부분의 화면이 대칭구도인 것도 ‘이친자’의 특징이다. “아빠와 딸처럼 혈육이지만 대척점에 있는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대칭 구도로 표현했어요. 대칭은 딱 맞았을 때 안정감도 주지만, 틀어질까봐 긴장감도 들게 만들거든요.”
그는 이 정적인 드라마에서 가장 동적이었던 장면, ‘비오는 날의 차 추격신’을 실감나게 찍기 위해 살수차를 쓰지 않고 장마 때까지 기다렸다. 이렇게 집요할 정도로 아름다운 연출에 공을 들인 이유는 무엇일까. 송 PD는 “시청자들에게 기존 드라마 화면과 다른 것을 보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드라마에서 시각적인 아름다움도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거든요. 드라마를 보다가 ‘저건 어떤 의미일까’ 고민해보게 만드는 포인트를 넣는 것도 중요하고요. 아쉬움없이 찍었습니다.”
‘이친자’는 2021년 MBC 드라마 극본 공모전에 당선된 작품이다. 당선 후 1년 넘게 극본을 수정해 지금의 작품이 탄생했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작가 마사 스타우트가 소시오패스에 관해 쓴 책의 국내 번역판 제목이다. 작품을 준비하며 이 책을 읽던 송PD가 드라마 제목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 출판사에 양해를 구하고 썼다. 90분으로 확대 편성된 ‘이친자’ 최종회는 오는 15일 방송된다.
김한솔 기자 hans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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