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치 앵커'에서 KBS 사장 후보자로, 박장범은 누구
내부보다 '외부 소통' 많다는 평가…시류 따라 사장 사퇴 요구하다 구성원 압박 성명 동참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
윤석열 대통령 술친구로 알려진 사장이 취임하자마자 KBS 메인 뉴스 앵커가 된 인물이, 대통령 대담에서 영부인의 명품백 수수 의혹을 축소해 비판 받더니 KBS 사장 후보자가 됐다. 이제는 '파우치 앵커'라는 수식어가 익숙해진 박장범 후보자다.
박장범 후보자는 대전광역시 출신으로 대전 대성고를 졸업했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연세대 경제학과 88학번(1988년 입학) 동기이다. 성태윤 실장은 지난해 12월26일 '윤비어천가'(윤석열+용비어천가) 논란의 KBS '시사기획 창'에서 윤 대통령 세일즈 외교를 호평한 주요 인터뷰이로 등장했고, 방송 사흘 뒤 정책실장에 임명됐다.
박 후보자는 1994년 KBS 공채 20기 기자로 입사해 경제부, 경제과학팀, 국제부 등을 거쳤다. 취재보다는 방송 진행 경력이 많은 기자로 꼽힌다. 지난 10월 KBS 이사회의 사장 후보자 면접 당시 박 후보자에게 “외부 쪽은 많이 만나는 것 같은데 내부 소통이 약해 보인다는 평가가 있다”는 질문이 나오기도 했다.
김인규 사장 시절인 2011년부터 3년간 박 후보자는 KBS 유럽지국 런던특파원으로 일했고, 2013년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영국 국빈 방문을 <여왕의 국빈초청, 세계 최고의 의전과 격식> 등 보도로 전했다. 청와대의 세월호 참사 보도 외압 논란이 불거진 2014년 5월엔 <길환영 사장 즉각 사퇴하라>는 해외특파원 성명에 이름을 올렸다.
길환영 사장이 물러난 뒤 박장범 후보자는 시사제작국 시사제작2부장, 통합뉴스룸 사회2부장 등 주요 보직을 맡았다. 2016년 6월 사회2부장 시절 'KBS 뉴스 옴부즈맨'에서 “사건의 본질인 조현병 환자에 의한 묻지마 살인이라는 분석”을 강조해 정신질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인식하게 할 수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보직자로서 박 후보자는 자사 보도에 대한 KBS 내부 지적을 비판한 간부들 성명에 동참하기도 했다. 2015년 12월 KBS가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 청문회를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는 KBS 기자협회장 지적과 이를 다룬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성명이 나오자 <기자협회장의 특정기사 보도 요구는 명백한 '편집권 침해'>라는 성명을 냈다.
2016년 7월 정연욱 기자가 청와대 보도 외압에 침묵하는 KBS와 간부진을 비판한 기자협회보 기고를 했다가 제주총국으로 발령됐을 땐 “회사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기고를 하고서 아무런 일이 없기를 바라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라는 간부진 성명을 냈다.
2017년부터 약 1년간은 고대영 사장의 비서실장을 맡았다. 그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고 사장에게 항의하는 KBS 구성원들을 두고 박장범 당시 비서실장이 “얘들이 저렇게 깽판을 치는 게 여론에 괜찮다”고 말한 일화가 있다. 고 사장이 국정원 금품 수수 의혹, 민주당 도청 의혹 등을 받던 시기였다.
이후 고대영 사장이 해임된 뒤로 박 후보자는 주요 보직에 오르지 못했지만 일부 시사 프로그램 진행을 맡았다. 2019년 7월엔 이후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이 된 황상무 당시 KBS 기자 등과 '문재인 정부 태양광 보도외압 논란'을 비판하는 성명을 낸 바 있다.
박 후보자의 튀는 행보는 윤석열 정부에서 다시 두드러졌다. 2022년 9월 이른바 '바이든-날리면'으로 불린 윤석열 대통령 비속어를 두고 이를 보도한 언론이 문제라는 성명에 박 후보자도 동참했다. “(윤 대통령 잘못은) 비공식적인 상황에서 한 발언이라도 언제든지 악의적으로 보도할 의지가 있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점”이라며 “그 발언이 외교 참사라고 보도한 MBC는 사실상 자신이 오히려 외교참사를 조장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지난해 7월엔 윤석열 정부의 보훈 정책에 대한 '일요진단 라이브' 클로징멘트에서 방송 주제와 무관하게 자신이 비서실장으로 모신 고대영 전 사장의 해임무효소송 승소 소식을 언급했다. 당시 그는 “공영방송 사장을 불법 해임한 문재인 전 대통령 그리고 불법 해임과 관련됐던 여러 사람들, 일제히 침묵하고 있다”면서 “침묵의 커튼 뒤에 숨은 이들의 생각이 궁금하다”고 했다. KBS는 해당 영상을 삭제했다 다시 게재했다.
그리고 같은 해 11월, 박민 후보자가 사장에 취임하면서 박장범 후보자는 '뉴스9' 앵커가 됐다. 박 후보자와 함께 윤 대통령 비속어 보도 비판 성명을 냈던 이춘호 전략기획실장, 장한식 보도본부장, 강동구 기술본부장 등도 박민 KBS 체제의 요직에 올랐다.
메인뉴스 앵커로서 박 후보자는 노골적으로 정권, 특히 윤 대통령에 우호적 보도를 했다고 평가 받는다. 앵커 이틀 차였던 지난해 11월14일 박민 사장이 과거 KBS 보도가 불공정했다고 주장하며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한 날, 박 후보자도 <보도 공정성 훼손 대표적인 사례들은?> 제목으로 일부 보도가 '불공정'했다고 사과했다.
이들이 문제 삼은 보도는 이른바 '검언유착' 보도, 오세훈 서울시장(당시 후보)의 처가 땅 의혹 보도('생태탕' 보도), 윤 대통령의 봐주기 수사 의혹을 다룬 '김만배 녹취록' 보도, 고 장자연씨 사망에 대한 윤지오씨 뉴스 출연 등이었다. 이는 기사 작성자 이름도, 기사 본문도 없이 홈페이지에 게시됐고 KBS기자협회 등의 비판을 샀다.
사흘 뒤 정부 행정전산망 마비로 전국이 혼란을 겪었던 날 그가 진행한 KBS '뉴스9'는 윤 대통령의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참석 소식에 집중했다. 나흘 뒤 '뉴스9'는 영국에 국빈 방문한 윤 대통령이 의전 받는 모습을 보도 기사 외에도 무려 5분36초나 중계해 '땡윤뉴스'라는 비판을 자초했다.
올해 2월 윤석열 대통령과의 신년 대담은 박 후보자가 '파우치 앵커'로 불린 계기가 됐다. 신년 기자회견도 하지 않은 윤 대통령이 우호적 매체만 만난다는 비판 속에 진행된 대담이다. 이 자리에서 박 앵커는 윤 대통령 배우자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사건을 “이른바 '파우치', 외국 회사의 조그만 백을 어떤 방문자가 김건희 여사를 만나서 놓고 가는 영상이 공개됐다”고 표현했다.
이런 박 후보는 지난달 현직 앵커로서 유례 없이 KBS 차기 사장에 도전했고, 10월4일 KBS 이사회의 공모 접수 결과 공개로 '사장 지원자' 신분이 된 뒤로도 앵커 자리를 고수했다. 이후 박 후보자가 진행 '뉴스9'는 검찰의 김건희 여사 불기소 처분 등을 비판적으로 다루지 않고 김 여사 의혹을 축소한다고 지적 받았다. 그러나 KBS 여권 이사들은 지난달 23일 야권 이사들이 불참한 표결에서박 후보자를 차기 사장으로 임명제청했다. 박 후보자는 오는 18~19일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있다.
KBS 내부에선 앵커 자리를 사유화한 박 후보자가 사장이 되어선 안 된다는 비판이 높다. 박 후보 임명제청 이후 가장 연차가 낮은 50기에서 박 후보자 동기인 20기, 그보다 선배인 18기에 이르는 KBS 기자 495명이 박 후보자 반대 성명을 냈다. KBS 내부의 기자협회와 PD협회, KBS 다수 노조인 언론노조 KBS본부와 상대적으로 신생 노조인 KBS같이노조 등도 박 후보자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앞서 KBS 인사청문준비단은 기자들의 잇단 박 후보자 사퇴 요구에 대해 “사내 기자들의 성명서에 대해 엄중하고 겸허히 받아들인다”며 “후보자는 사내 통합과 내부 갈등 해소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 (KBS 뉴스) 시청률과 신뢰도에 대한 입장은 인사청문회에서 설명드리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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