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자’ 양산하는 ‘이친자’…“최종회는 보고픈데 끝나는 건 싫다”
“범죄자 마음은 귀신같이 읽으면서 애 마음은 그렇게 몰라? 믿어야지. 무조건 믿어야지.” 장태수(한석규)는 세상을 떠난 아내 윤지수(오연수)가 자신을 이렇게 꾸짖는 것만 같아 괴롭다. 그는 프로파일러이기에 살인사건의 증거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딸 하빈(채원빈)이 범인이 아닐까 의심한다. 동시에 그는 아버지로서 세상 사람 모두가 하빈을 의심하더라도 끝까지 자식의 말을 믿고 싶다.
문화방송(MBC) 드라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프로파일러이자 아버지인 장태수가 불신과 믿음 사이에서 진실을 좇는 과정을 담은 심리 스릴러다. 몰입감 높은 극본, 팽팽한 부녀 사이를 표현하는 한석규와 채원빈의 열연, 긴장감을 높이는 연출과 영상미가 어우러져 ‘이친자’(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에 ‘미친 자’(열혈 시청자)를 양산하고 있다.
드라마는 대한민국 최고의 프로파일러로 손꼽히는 장태수가 살인사건에 얽힌 딸의 비밀을 마주하게 되면서 진실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장태수의 딸 장하빈은 어릴 때부터 평범한 아이들과 달리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동생 하준과 함께 실종됐다가 홀로 살아 돌아온 날도 눈물 자국 하나 없이 무표정했다. 그날 이후로 딸이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지금까지 그는 딸을 향한 의심과 믿음 사이에서 흔들리며 살아왔다. 그러던 중 주검 없는 살인사건을 수사하다 딸을 범인으로 의심하게 만드는 증거들을 발견한다. 이 와중에 딸은 “하준이 말이야, 정말 사고였을까?”라며 그가 부인하면서도 품어온, 딸을 향한 의심을 부추기기까지 한다. 딸을 믿는 부모가 되겠다는 마음은 또 다시 흔들린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지난달 11일 첫 방송에서 5.6%의 시청률(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로 시작해 9회 6.8%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방송 시간대가 일부 겹치는 티브이엔(tvN) ‘정년이’의 인기에 밀려 시청률이 높은 편은 아니지만, 마니아 층이 탄탄하고 화제성이 높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드라마 관련 게시판에는 “보는 게 힘든데 멈출 수가 없다” “사건을 풀어가는 방식이 흥미진진하다” “마지막 회는 보고 싶은데 끝나는 건 싫다” “연출과 배경음악의 조화가 미쳤다” “이야기도 흥미진진하고 연출 때문에도 계속 보고 싶은 드라마” 등 반응이 올라왔다. 드라마는 오는 15일 마지막 10회를 방영한다.
인기 요인으로는 먼저 빈틈없이 치밀한 극본이 꼽힌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전개에 일부 시청자들은 이야기 완성도가 높은 웹툰이나 소설을 각색한 것으로 짐작하고 원작이 무엇인지 찾아보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신인인 한아영 작가가 2021년 문화방송 드라마 극본 공모전에서 수상한 작품이다. 당시 가족관계와 의심, 신뢰 등의 주제를 심도 있게 그려냈다는 호평을 받았다.
세련된 연출도 빼놓을 수 없다. 거의 완벽하게 대칭을 이루는 화면과 인물들의 뒷모습을 보여주는 등의 방법으로 긴장감을 준다. 자식을 의심하며 무너지는 아버지의 모습을 연기한 한석규와 감정 없이 차가운 고등학생을 연기한 채원빈은 몰입감을 더욱 끌어올린다. 한석규는 일정표에 면도 안 한 날을 기록해가며 수염 길이까지 계산했다고 한다. 18살 고등학생답게 웃다가도 금세 서늘한 표정으로 돌아서는 채원빈은 섬뜩함마저 느끼게 한다.
드라마는 사건의 범인을 찾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가족 간의 불신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다른 추리물과 차별화된다. 증거를 찾을 때마다 쾌감을 느끼기보다는 딸과 연관된 것이라 괴로워하는 장태수의 모습은 이런 특징을 보여준다. 드라마 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교수는 “이 드라마는 범인을 찾아내는 과정이 아닌,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파괴된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누군가를 쉽게 믿을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린 지금, 가장 친밀한 가족 간에서조차 불신과 균열이 나타나는 모습을 보여주며 지금 우리가 어떤 현실을 살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한다”고 짚었다.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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