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의 그라운드] 사실상 이기흥 셀프 승인…불공정 대한체육회 공정위

김종석 2024. 11. 13.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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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무정지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스포츠공정위로부터 연임 승인을 받은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사진제공 대한체육회)

“혹시나 했는데 역시 아니었다.”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가 3선 도전에 나선 이기흥 체육회장의 차기 회장 선거 출마 자격을 인정한 데 대한 체육계의 반응은 대부분 이랬습니다. 예상했던 결과가 나왔다는 거죠.

이로써 이기흥 회장은 내년 1월 14일 열릴 예정인 차기 체육회장 선거에 입후보할 자격을 얻게 됐습니다. 이 회장은 이미 지난 4일 진행한 스포츠공정위 소위원회 논의에서 출마 허용 기준인 60점을 한참 넘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2일 열린 전체 회의에서는 재적 위원(위원장 포함 15명) 과반수 이상 출석에 출석 인원 과반수 이상의 지지를 받아 승인 결정이 내려졌다고 하네요.

회장을 포함한 대한체육회 임원의 연임은 한 차례만 가능한데 스포츠공정위 심의를 통과하면 두 차례 이상 연임(3선 이상)도 할 수 있습니다. 이 회장은 2016년에 4년 임기인 대한체육회장에 처음 당선됐고 2021년 선거를 통해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대한체육회 산하 경기단체 임원도 마찬가지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체육계에서는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 전체 회의가 사실상 거수기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합니다. 스포츠공정위 위원들이 이기흥 회장의 측근으로 분류되기 때문입니다. 김병철 스포츠공정위원장조차 2017년부터 2년 동안 이 회장의 특별보좌역을 맡았기에 측근 인사로 간주합니다.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는 김병철 위원장을 포함한 위원 15명이 모두 이 회장이 임명한 인사라고 합니다. 오진학 전 대한체육회 사무차장, 설수영 경기대 스포츠경영학과 교수, 최종균 선문대 무도학부 교수 등이 위원이라고 하네요. 이 회장이 측근을 통한 셀프 심사를 받았다는 조롱 섞인 비난이 나오는 이유죠. 

문체부는 “대한체육회장 자신이 임명한 스포츠공정위원들에게 자기 임기 연장 심사를 받는 건 불공정하고 비상식적”이라면서 지난달 대한체육회에 제도 개선을 권고했습니다. 하지만 소귀에 경 읽기였습니다. 

이번 스포츠공정위를 앞두고 이 회장은 각종 비위 혐의로 수사 대상에 올랐습니다. 국무조정실 정부합동공직복무점검단 발표에 따르면 이기흥 회장이 연루된 체육회 비위 혐의 리스트에는 직원 부정 채용, 물품 후원 요구, 후원 물품 사적 사용, 예산 낭비 등으로 채워졌습니다. 스포츠공정위 전체 회의 전날에는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유인촌)가 이기흥 회장에 대한 직무 자격정지 조처를 내렸습니다. 대한체육회 노조원들은 스포츠공정위원회 심의 도중 이 회장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노조는 “이 회장으로 인해 체육회가 여러 외부 수사나 감사를 받고, 전 국민적 손가락질을 받는 기관이 됐다”라며 “그럼에도 이 회장은 책임을 회피하고 도망가기 급급하다”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대한체육회장 3연임을 노리고 있는 이기흥 회장. 대한체육회 제공>

각종 비위 의혹에 주위의 싸늘한 여론에도 이기흥 회장의 연임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 스포츠의 중심 역할을 해야 할 대한체육회장 자리를 자신의 보신을 위한 방패로 사용하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옵니다. 예산과 감사 등을 이유로 대한체육회 경기 가맹단체 길들이기에 나서는 한편 시도체육회까지 자신의 우군으로 결집하고 있다는 말도 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기단체 회장은 “이 회장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경기단체 회장들이 눈치를 보고 있다. 만약 이 회장에 맞서려거나 반대파로 분류되면 해당 단체는 이런저런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라고 말하더군요. 

국회의 출석요구에는 도피성 해외 출장 등을 이유로 불참한 이 회장이 지난 경남 전국체전 기간에는 경기장을 순회하며 선거운동에 열을 올렸다고 합니다. 이 회장은 문체부의 직무 정지 조치에도 바로 다음 날 서울행정법원에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하며 발 빠르게 대처했습니다. 

한 체육계 인사는 “이기흥 회장은 치밀하고 체계적으로 체육회 요직에 측근 인사를 앉혀 자신의 권력을 강화해 왔다. 김병철 공정위원장 같은 감사원 출신이나 예산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기재부 출신 인사들을 중용했다”라고 말했습니다. 대한체육회의 중요한 조직 가운데 하나인 전국체육대회(전국체전) 위원회 위원장 자리는 몇 달째 공석으로 있습니다. 그 이유도 이기흥 회장이 위원장으로 점찍은 거물 인사가 아직 현직에 있어서라고 하더군요. 이기흥 회장의 정치권 네트워크가 여야에 걸쳐 광범위하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기도 한 이 회장은 국제 스포츠계에 정부의 과도한 개입과 중립성 훼손에 목소리를 높이며 동조 세력을 규합하려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이 회장은 산하단체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 ‘내로남불’이라는 비판도 받습니다. 마음에 맞는 협회장을 앉히기 위해 무리하게 관리단체 지정의 칼날을 휘두르기도 했습니다.

대한테니스협회 역시 관리단체로 지정했다가 법원으로부터 지정 효력 정지 처분을 받았죠. 대한테니스협회는 적법한 절차에 따른 보궐선거를 통해 선출된 주원홍 당선인에 대한 인준 요청을 이미 지난달 대한체육회에 전달했으나 묵묵부답이라고 합니다. 이기흥 회장이 주원홍 당선인과의 구원(舊怨) 등 개인적인 감정에 따라 깔고 뭉개버렸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이기흥 회장은 지난 8년의 재임 기간에 테니스협회를 포함해 9개 회원단체를 관리단체로 지정했습니다.

이 회장의 이러한 행보는 체육회장 선거에 나가기만 하면 승산은 충분하다고 예측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현재 군소후보가 난립한 상황에서 지난 8년 동안 체육회장으로 있으면서 연임 작업에 공을 들인 이 회장을 압도할 대항마는 그리 없어 보입니다. 이 회장이 법원에서 유죄 확정판결을 받거나 선거에서 떨어지지 않는 한 정부와 대립각을 유지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입니다. 한 대한체육회 회원경기단체 회장은 “이기흥 회장의 추종세력도 만만치 않다. 그들은 ‘정부가 지나치게 체육회장 선거에 간섭하려 한다. 체육인들이 똘똘 뭉쳐야 한다’라며 결집을 외치고 있다”라고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대한체육회 홈페이지에는 스포츠공정위의 목적 및 역할에 대해 ‘법제, 포상, 징계 등의 공정한 심의를 통한 스포츠계 전반의 공정성 확립’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기흥 회장의 연임을 둘러싼 스포츠공정위의 이번 결정을 보면 그 어디에도 ‘공정한 심의’도 ‘공정성 확립’도 찾기 힘들어 보입니다. 어느새 스포츠공정위 무용론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공정의 가치가 무너진 스포츠 현장에 비뚤어진 권력다툼만이 가득해 보입니다.

김종석 채널에이 부국장(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

글= 김종석 기자(tennis@tenni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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