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물들인 단풍처럼…가을빛 원앙들의 ‘나는 솔로’
김포 장릉저수지 원앙들…한 철 사랑에도 필사적
‘힘의 상징’ 화려한 깃털 가꾸며 암컷 유혹하기 바빠
단풍이 물드는 가을이 되면 수컷 원앙이 화려한 깃털로 갈아입고 자태를 뽐내며 암컷을 곁눈질하기 바쁘다. 짝짓기를 위해서는 아름다운 깃털로 암컷을 유혹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년 봄 짝짓기를 위한 필사적인 ‘깃털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경기도 김포시 장릉 저수지는 천연기념물인 원앙이 봄·가을로 찾아온다. 필자는 2009년 봄 장릉 저수지에서 원앙 6마리를 처음 만난 뒤 원앙에게 먹이를 주기 시작했다. 이후 이곳을 찾는 원앙이 점차 늘어 2018년부터는 300여 마리가 지속해서 관찰되고 있다. 원앙은 가을이 지나 저수지가 얼면 따뜻한 곳으로 남하했다가 얼음이 풀리는 2월 하순 북상 중에 저수지를 다시 찾아 한 달 정도 짝짓기를 벌인다.
올해도 어김없이 10월 중순에 수컷 원앙이 화려한 깃털로 단장한 채 찾아왔다. 가을 단풍처럼 발그레 물든 모습이다. 나무 위에 앉아있는 원앙의 모습은 주렁주렁 열매가 매달린 것처럼 보인다. 수컷 원앙은 가을부터 ‘혼인 깃’을 준비한다. 혼인 깃은 번식기 조류의 깃털이 화려한 색상이나 문양으로 바뀐 것을 말한다. 차근차근 준비한 혼인 깃은 봄이 되면 더욱 아름답게 빛난다. 원앙의 화려한 혼인 깃을 따라갈 새는 별로 없다.
수컷의 화려한 깃털은 암컷을 유혹하는 최고의 수단이면서 동시에 암컷과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비결이 되기도 한다. 암컷들이 수컷의 화려한 깃털을 보고 짝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수컷 원앙에게 깃털은 곧 경쟁력이자 생존력이다. 깃털이 화려하지 않으면 짝짓기 한 번 못하고 헛물만 켜는 신세가 되고 만다. 수컷들이 아름다운 깃털을 뽐내며 암컷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무던히 애쓰는 이유다.
사정이 이러하니, 수컷은 겨우내 깃털을 살뜰히 관리하면서 암컷이 변심하지 않기를 바라며 ‘부부관계’를 유지한다. 가을과 겨울이 지나고 이듬해 봄기운이 감돌면 공들여 가꿔온 깃털을 ‘비장의 무기’로 활용해야 할 결정적 순간이 다가온다. 수컷들은 몸집을 이용해 경쟁자와 힘을 겨루기보다 화려한 깃털을 ‘힘의 상징’으로 내세운다. 멋지고 화려한 깃털을 과시하면서 가슴을 마음껏 부풀리는 것이다.
수컷 원앙은 기회만 닿으면 암컷을 유혹하려고 하기 때문에, 이미 짝을 맺은 수컷이라 하더라도 언제 암컷을 뺏길지 몰라 철저하게 경계한다. ‘원앙 부부’는 서로에게 변함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다른 상대가 다가오면 경계하는 모습을 보인다. 암컷은 다른 수컷이 다가오면 잽싸게 내쫓고, 수컷도 다른 암컷이 다가오면 얼른 몰아낸다. 배우자의 이런 행동을 본 원앙은 신뢰의 표시로 부리로 서로의 목 부위를 어루만지며 사랑의 돈독함을 보여준다.
연못 위에 비단옷을 곱게 차려입은 원앙 한 쌍이 온종일 물 위를 떠다니며 잠시도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각자 속내는 다르다. 우수한 종을 남기기 위해 ‘바람’ 피울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기 때문이다. 어찌 된 일인지 원앙은 은근슬쩍 다른 상대와 짝을 맺어도 걸리는 법이 없다. 이들 ‘부부’의 외도를 발견하는 것은 언제나 관찰자뿐이다.
실제로 원앙의 부부관계는 번식기에만 유지되고, 번식기가 끝나면 떨어져서 각자 행동한다. 이듬해에는 다시 새로운 짝을 찾아 구애 태세에 돌입한다. 그렇더라도 번식기 동안의 원앙 부부는 잠시도 떨어지지 않고 함께 행동하므로 우리나라에서는 다정한 부부를 상징하는 새로 여겨진다.
이렇게 한 철 화려함을 자랑하는 수컷이지만, 여름이 오기 전 암컷과 같은 깃털로 변환한다. 이때 암수를 구분하는 방법은 부리다. 수컷은 부리가 붉은색이고, 암컷은 검은색을 띤 희색이다. 그리고 다시 가을을 맞으면 혼인 깃으로 바꾸는 일을 반복한다.
우리나라와 일본엔 일 년 내내 텃새로 지내는 무리가 있고, 철새로 지내는 원앙은 북한·중국 동부·러시아 사할린·일본 홋카이도에서 번식하고, 제주도·중국 중남부에서 월동한다. 우리나라에서 봄과 가을에 원앙 무리가 많이 관찰되는 것은 이동 중인 철새 원앙들이 우리나라를 거쳐 가기 때문이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촬영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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