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에게 복권 판 돈마저 '비효율적'으로 쓰는 정부 [추적+]
살기 힘들수록 잘 팔리는 복권
그럴수록 더 늘어나는 복권기금
지난해 기금사업비 3조447억원
복권법도 못 없앤 칸막이에 갑갑
공익성 지출보다 유지비가 더 커
구조적 한계로 인한 폐해 수두룩
경기침체 국면에선 복권 판매량이 늘어나게 마련이다. 올 상반기에도 그랬다.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의 집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 복권 판매량은 전년 동기비 7.0% 증가한 3조6168억원을 기록했다. 당연히 복권기금 사업비도 늘어날 예정이다. 문제는 이렇게 늘어난 복권기금을 공익사업에 잘 배분하고 있느냐다.
3조6168억원. 지난 8월 28일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가 공개한 올해 상반기 복권 판매액이다. 지난해 상반기(3조3790억원)보다 7.0% 늘었다. 이대로라면 연말까지 복권 판매액은 7조2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복권 판매액은 2014년 3조2827억원에서 2023년 7조330억원으로 10년 새 두배 이상 증가했다.
복권 판매액이 늘어나면 덩달아 증가하는 게 있다. 복권기금이다. 이는 복권사업에서 발생한 수익금을 각종 공익사업에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설치한 기금이다. 복권을 판매한 돈으로 필요한 곳에 나눠주는 장치인 셈인데, 지난해 기금사업비는 3조447억원이었다.
[※참고: 기금사업은 법정사업과 공익사업으로 나뉜다. 법정사업은 수익금의 일정 비율을 특정 기관과 기금에 나눠주는 건데, 법정사업 역시 내용은 공익사업이기 때문에 기금사업비는 모두 공익사업에 쓴 돈이다. 배분 방법은 전출ㆍ예탁ㆍ출연ㆍ보조 등이다.]
■ 문제❶구조적 한계 = 주목할 건 3조원이 넘는 기금을 필요한 곳에 잘 나눠주고 있느냐다. 외부전문가를 통해 이뤄진 '2023년 복권기금사업 성과 평가'에 따르면 종합평점은 81.9점이었다. 성적이 나쁘진 않다. 2020년보다는 4.1점, 2022년보다는 2.8점 상승했다는 점에서 개선세도 보인다.
다만, 복권위가 이것만으로 복권기금을 잘 배분하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 복권기금이 구조적인 모순을 갖고 탄생했기 때문이다.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복권기금의 설치 배경부터 짚어봐야 한다.
2004년 이전엔 각 정부 부처가 각각 복권사업을 운영했다. 국토교통부의 주택복권, 문화체육관광부의 체육복권,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기술복권, 고용노동부의 복지복권 등 복권사업이 10개나 됐다. 사행성 산업이지만 수익금을 공익사업에 쓴다는 이유로 허용했다.
그런데 복권별로 수익이 다르다 보니 어떤 곳은 돈이 남고, 어떤 곳은 돈이 부족했다. 이래서는 공익사업을 의미 있게 진행하기 어렵다는 지적에 힘이 실렸다.
결국 2004년 '복권 및 복권기금법(복권법)'을 제정하고, 복권기금을 설치해 수익금의 사용과 관리를 일원화했다. 수입과 지출의 칸막이를 없애겠단 거였다. 복권법의 목적에 '복권수익금의 합리적 배분'이 명시한 것도 같은 이유다.[※참고: 체육발전에만 쓰이는 체육복권(스포츠토토) 수익금은 전액 국민체육진흥기금으로 이전된다.]
이런 복권법의 취지를 엉뚱하게도 복권법 시행령이 막았다. 시행령에서 특정기관과 기금에 일정한 비율의 수익금이 흘러가도록 법정배분비율을 정해놨기 때문이다. 칸막이를 없애려고 복권법을 만들었는데, 시행령에서 다시 칸막이를 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복권기금이 증가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기존 사업의 확대 필요성과는 무관하게 예산 증가로 인해 자동적으로 사업 규모가 커지거나 이로 인해 수익금이 허투루 쓰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 문제❷ 배보다 배꼽 논란 = 복권기금의 문제는 또 있다. 복권사업은 공익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공익사업 지출액이 사행성 산업을 유지하는 비용보다 커야 한다. 비용 대비 효과가 더 커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복권기금은 거꾸로다. 당첨금 지급과 수수료, 운영비 등 기금 자체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2023년 기준 총지출액 대비 50.6%)이 공익사업 지출액(38.7%)보다 훨씬 많다. 효율적이지 못한 기금이란 방증이다.
이렇게 구조적으로 한계가 있고 본말이 전도된 복권기금의 기금사업은 과연 괜찮을까. 무엇보다 구조적 맹점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법정사업들부터 보자.
지자체를 지원하는 사업 중에는 '시청각장애인 학습지원센터 지원' 사업이 있다. 지난해 90억원을 지원했고, 올해도 92억원을 배정했다. 그런데 센터 운영 주체는 서울시다. 지난해 기준 서울시의 재정자립도는 81.2%로, 광역지자체 중 부동의 1위다. 각 광역지자체에 비슷한 비율로 복권기금 수익금을 배분한 탓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국민체육진흥기금에 복권기금 수익금을 배정하는 것도 의아하다. 이미 1조842억원(2023년 기준)의 체육복권 수익금 전액이 국민체육진흥기금으로 들어가고 있어서다. 특히 국민체육진흥기금은 지난해 기획재정부의 기금운영평가에서 여유자금이 넘쳐나 공공자금관리기금 예탁을 늘리라는 권고를 받았다. 자체조달 기금도 다 못 써서 돈이 남아돈다는 얘기다. 법정배분비율에 따른 수익금 배분의 폐해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도 법정배분비율에 따라 수익금을 배분한다. 여기서 눈여겨볼 건 집행률이 2021년 94.0%, 2022년 92.8%, 2023년 91.7%로 매년 하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반면, 같은 기간 배분하는 복권기금은 384억원, 401억원, 472억원으로 늘었다. 복권기금은 증가했는데 불용 비율이 상승했다는 건 기금사업이 늘어나는 액수를 다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공익사업에도 맹점은 있다. 대표적인 게 주택도시기금이다. 복권기금은 주택도시기금에도 배분하는데, 지난해 배분액은 4500억원이었다. 다가구 매입임대(1350억원)와 기존주택 전세임대(3150억원)에 사용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주택도시기금의 다가구 매입임대 융자사업 예산은 당초 계획보다 절반가량 줄었다.
그나마도 다 집행하지 못해 계획 대비 집행률은 45.2%에 불과했고, 714억원을 남겼다. 다가구 매입임대 출자사업도 집행률(91.6%)은 높았지만, 2276억원을 남겼다. 이런 상황에서 복권기금 배분 명목으로 또 4500억원을 배분했으니, '돈이 남아돈다'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이런 사례들은 모두 복권기금사업의 경직성에서 비롯되는 한계를 보여준다. 구조적 한계가 미치는 영향이 결코 작지 않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복권기금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선 당초 목표로 했던 재정 칸막이부터 없애는 게 우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재정 칸막이를 없애겠다고 만든 복권법이 20년이 되도록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법정배분비율 같은 걸 없애고, 사회 상황에 따라 우선순위를 둬서 다양한 공익사업에 복권기금을 활용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줘야 한다"고 꼬집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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