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와 피터 틸, 美 신보수주의 온다[이제교의 시론]

2024. 11. 13.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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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교 편집국 부국장
귀환한 트럼프 미국 치유 역설
페이팔 마피아 손 잡고 승리해
미국 국민은 신보수주의 지지
국방 기술과 패권 정치의 결합
밴스는 마가 제국 후계자 유력
미국 알아야 한국의 길도 보여

4년 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을 쫓기듯 떠난 날, 폭스 뉴스의 터커 칼슨 앵커는 트럼프 유세 실황을 내보냈다. 수만 명이 모인 집회는 “유 에스 에이”를 외치는 열기로 가득했다. 칼슨의 내레이션이 이어졌다. “트럼프 시대가 끝나갑니다. 분열과 대립, 증오주의자…. 그에게는 비판적 언론이 달아준 수식어가 따라다녔죠.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는 대중을 좋아하고 이해한 리더였습니다. 또 많은 사랑을 받았죠. 미 역사에서 이런 정치인은 없었습니다.”

트럼프가 귀환했다. 제47대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게 선거인단 312 대 226으로 압승을 거뒀다. 7개 경합주에서 모두 이겼고 50.4%(7487만 표) 득표율을 기록했다. 상·하원도 장악했다. 세계 언론에서 역사적 승리라는 평가가 쏟아졌다. 당선 확정 후 트럼프는 “강하면서 안전하고 번영하는 미국을 위해 쉬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나라의 치유를 돕겠다(help our country heal)”고 외쳤다.

이번 미 대선에서 트럼프가 했던 최고의 거래는 ‘페이팔(Paypal) 마피아’ 세력과의 결탁이다. ‘신의 개입’이라는 암살 모면도 있고, 맥도날드 알바로 대중 마음을 잡고, 청소 트럭 운전사로 푸에르토리코 쓰레기섬 발언 위기도 넘겼지만, 압권은 JD 밴스 오하이오주 상원의원의 부통령 후보 발탁이었다. 페이팔 마피아는 실리콘밸리의 ‘빅테크 보수주의 그룹’을 칭한다. 정신적 지주는 온라인 결제서비스 페이팔 창립자인 피터 틸이다. 노동자 출신인 밴스는 2011년 틸을 예일대 로스쿨 강연회에서 처음 만난 뒤 틸의 현실 진단에 공감했고 정계 입문 도움도 받았다. 틸은 프랑스 철학자 르네 지라르의 모방욕망 이론에 뿌리를 두고 미국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바라봤다. 지난 7월 플로리다로 날아가 트럼프에게 밴스를 부통령 후보로 추천한 사람으로도 알려져 있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CEO, 크래프트 벤처스의 데이비드 색스 대표, 인공지능(AI) 방산기업 앤두릴 설립자 팔머 러키도 페이팔 마피아의 일원이다. 억만장자인 그들은 가상화폐 옹호론자들이다.

페이팔 마피아는 좌경화되는 민주당을 보면서 미국의 몰락을 예견했다. 트럼프 역시 그들의 명성과 돈이 필요했다. 머스크가 대선에 쏟아 부은 돈만 1억3200만 달러다. 틸은 국방부에 AI 빅데이터를 납품하는 팰런티어의 창립자이기도 하다. 현실의 정치와 국방 정보기술산업의 교차점에서 양측의 이해는 맞아떨어진다. 그들에게는 좌파 성향 직업 관료와 여기에 동조하는 학계·언론계의 리버럴 그룹, 이른바 ‘딥 스테이트’ 청소라는 공동 목표도 있다. 미국은 치유 대상의 병든 국가고, 딥 스테이트는 암세포 덩어리로 여겨졌다. 트럼프를 대변자로 생각하는 군중은 환호하고 열광했다.

둘의 결합은 트럼프 2기 미국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예고한다. 첫째, 값싼 동맹 시대의 폐기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국제안보의 플레이어이자 곳간지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지금 국가부채가 35조 달러, 무려 4경8496조 원이다. 어느 나라도 이 같은 천문학적 빚더미 속에서 생존할 수 없다. 둘째, 러스트 벨트 노동자들이 원하는 제조업 부흥과 중산층 부활이다. 미 우선주의에 입각한 관세전쟁은 필연적 수순이다. 셋째, 불법 이민자 추방과 국경 통제.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1500만 명(추정)의 불법 이민자가 유입됐고 미국민들은 사회 전반적으로 불안을 느꼈다. 넷째, 우클릭 행보로 과도한 기후환경 정책과 성 정체성 선택권 등 PC주의(정치적 올바름) 통제가 예상된다. 다섯째, AI 국방기술 혁신과 패권주의 강화다. 중국 견제를 위해 대서양보다는 아시아 지역 동맹이 중요해지고, 한국과 일본·호주와의 협력 증진은 필수적이다.

미국민은 미국 예외주의를 선택했다. 단순한 고립주의가 아니다. 자유의 횃불을 치켜들 세계 유일 국가, ‘언덕 위의 하얀 집’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세계의 리더 자리를 유지하려면 번영을 지속해야 한다. 트럼프는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전면에 내걸고 돌아왔다. 페이팔 마피아가 뒤를 봐주는 밴스는 4년 후 마가 제국의 후계자로 나설 것이다. 신보수주의 국제질서가 밀려오고 있다. 미국이 어디로 가는지 알아야 한국의 길도 보인다.

이제교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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