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구조조정]①직원 20% 내보내고 밸류업?
현금 많고 순익 늘어도 인건비 감축 '드라이브'
KT가 임직원 20% 이상을 내보내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AICT(인공지능+정보통신) 회사로 도약을 위한 혁신의 일환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구조조정의 시급성과 효과성에는 여러 의문이 남는다. KT 구조조정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살펴봤다.[편집자 주]
KT가 본사 직원의 자회사 전출과 희망퇴직을 골자로 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그 규모만 4500여명으로 2014년 황창규 전 회장 시절(8300여명) 이후 10년여 만이다. 국내 통신업계 화두인 'AICT 컴퍼니'로의 체질 개선 차원이다.
그러나 당장의 인건비 감축이 기업가치 제고에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었는지에는 물음표가 남는다. 현재 KT 재정 상황 자체가 지표상 과거 구조조정 당시보다 훨씬 나은 편이기 때문이다.
통신장애는 재해라더니 '밸류업' 앞세워
KT는 선로 통신시설 설계와 전송·개통을 담당하는 KT 넷코어(전 KT OSP) 1483명, 네트워크와 선박 무선통신을 운용하는 KT P&M 240명 등 신설 자회사 전출희망자 1723명에 대한 접수를 최근 완료했다. 이들은 KT가 신설 법인을 출범하는 내년 1월자로 자회사로 자리를 옮길 예정이다.
별개로 진행한 특별희망퇴직 신청에는 2800여명이 몰렸다. KT 전체 인원의 6분의 1가량에 해당한다. 이들 인력이 한꺼번에 빠질 경우 일시적 업무 공백을 걱정하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특히 기간통신사업자로서 KT의 통신망 품질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대규모 전출과 퇴직으로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책임소재와 업무 연속성 등에 구멍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 2018년 KT 서울 아현지사 화재 사고의 주된 원인도 네트워크 운용 인력 감축과 노후화로 지목된 바 있다.
"통신망 장애는 장애가 아닌 재해"라며 통신 인프라의 안정적 운영을 최우선 과제로 내걸었던 기존과 사뭇 달라진 분위기다. KT도 대비책을 강구 중이다. 이미 선로 설계·운용, 법인 회선 운영을 맡을 단기 계약직 채용 공고를 낸 상태다. 정년 퇴직자들을 대상으로 계약직으로 현업 복귀 의사가 있는지도 조사 중이다. 정규직을 계약직으로 대신하겠다는 것인데, 조직의 군살을 빼 슬림화하겠다는 취지는 희미해지고 고용 안정성만 떨어뜨린다는 지적도 있다.
자회사 전출과 희망퇴직 인원이 빠지면 KT 본사 인력은 약 1만5000여명으로 감소한다. 기존보다 23%나 줄어드는 규모다.
이번 구조조정은 '인력 혁신'이라는 워딩으로 KT 밸류업(기업가치 개선) 계획에 포함됐다. 텔코(Telco·통신사)에서 AICT로 사업구조를 전환해 수익성을 개선하려는 방안의 하나라는 게 KT의 설명이다.
이를 반영하듯 시장에서도 밸류업 전망이 나오고는 있다. 내년부터 인건비가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김준섭 KB증권 애널리스트는 "구조조정으로 내년 분기에 1조1000억원에 이르던 연결 인건비가 10% 이상 감소하고, 특히 별도 기준으로는 분기 인건비가 20% 가량 줄어드는 효과가 기대된다"며 올해와 내년 주당배당금(DPS)을 2000원으로 전망했다.
직원 이탈 속 '임기 반환점' 맞는 김영섭 대표
하지만 이번 조치가 밸류업을 위한 필수조건이었는지에 대해선 여전히 회의적 시선이 적지 않다. 먼저 8000여명에 이르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한 2014년의 경우 이미 직전 3개년 연속 영업이익이 쪼그라드는 등 실적이 휘청이던 시기다. 대규모 적자에 배당도 실시하지 못했다. 그 해 1분기 기준 현금과 현금성자산은 1조7000억원을 밑돌았다.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올해 3분기 누적 순이익만 1조1867억원으로 지난해 전체 순이익 9887억원을 이미 웃돌았다. 영업이익 또한 3분기 누적 1조4646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6%가량 확대했다. 특히 3분기 현금·현금성자산은 무려 4조원에 육박한다. 1분기 기준으로도 이미 3조원을 넘어섰다.
KT 소수노조인 KT새노조가 이번 구조조정에 대해 "한마디로 김영섭 대표이사 사장 자신의 연임을 위한 실적 포장용이라고밖에는 볼 수 없는 졸속이고 일방적인 구조조정"이라고 밝힌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대주주나 경영진 먼저 경영실패의 책임을 지고 고통분담에 나서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게 구조조정인데, 단순히 인건비를 줄여 이익을 더 나눠가지는 식으로 접근하다보니 사내에서조차 충분한 동의를 얻지 못한 것이다.
KT가 희망퇴직보상금을 최대 4억3000만원으로 올리자 직원들이 우르르 희망퇴직신청에 몰린 것도 곱씹어볼 대목이다. 미래에 대한 비전, 사명감과 자부심은 뒤로 한 채 기회가 될 때 최대한 많이 받고 떠나자는 분위기가 팽배해있다는 걸 시사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발생할 핵심인력 이탈은 두고두고 KT 경쟁력의 페인 포인트(불편을 느끼는 점)가 될 수 있다.
김영섭 대표는 연말 임기 반환점을 앞두고 있다. 가시적인 결과물로 본인의 성과를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다. 안정상 중앙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겸임교수는 "임기 중반을 넘어가면 역대 사장들이 했던 것과는 다른 차별화된 성과를 내야만 연임을 보장할 수 있다"며 "주요 사업을 매각해야 할 정도로 취약했던 과거 (구조조정) 상황과 지금은 다르다. (KT가) 드라이브를 너무 세게 걸었다"고 했다.
한수연 (papyrus@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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