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서 필수 의료진 쫓겨날 위기 느껴"…30조 원 쓰겠다더니 결국 '제로섬 게임' [스프]
조동찬 의학전문기자 2024. 11. 13. 10:51
[주간 조동찬] 필수 의료 지원 정책의 역설
건강한 삶을 위한, 믿을 수 있는 의학 정보! '주간 조동찬'에서 전해드립니다.
대학병원에서 쫓겨날 위기의 필수 의료 과목들
지난주 서울에서 대한고혈압학회 추계 학술대회가 열렸다. 예년처럼 축제 분위기는 찾기 어려웠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병원과 학교를 떠난 지 8개월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리라. '고혈압 관리와 만성질환 정책' 세션에서는 비장한 분위기까지 감돌았다. 그것은 최근 시행된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지원 사업과 관련이 깊었다.
고혈압과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사업의 상관관계를 간파하기는 쉽지 않다. 정부를 포함해 그 누구도 공개적으로 설명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내용을 내부적으로 들여다보면 단번에 알아챌 수 있다.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이라 함은 서울아산병원, 분당서울대병원 같은 대학병원들이 병실을 현재의 85%까지 줄이고, 중증·응급·희소 질환 환자의 비율을 높이는 것이다.
병실을 15% 줄이고, 비중증·비응급·비희소 질환 환자를 줄이면 병원은 손실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11월 7일 기준, 47개 상급종합병원 중 65%인 31개 병원이 참여했다.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사업에 참여하면 중환자실, 응급실 등의 병실료와 중증·응급·희소 질환의 진료 수가를 올려 주겠다고 정부가 발표했기 때문이다. 전공의의 공백이 너무 길어 전문의 중심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급작스럽게 내놓은 대책이지만 얼핏 보면 좋은 방향처럼 보이고 실제로 그런 측면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여기에는 무서운 칼날이 숨겨져 있다. 예를 들어 국내 최대 병원인 서울아산병원은 현재 2,424개 병상을 336개 줄이고, 분당서울대병원도 현 1,133개 병상을 104개 축소해야 한다. 병상을 줄이면 그만큼 진료 환자와 해당 의료 인력도 줄여야 한다. 병원 경영진의 선택은 뻔하다. 상대적으로 높은 수가를 받을 수 있는 중증·응급·희소 질환의 의료 인력은 그대로 두거나 보강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진료 과목의 의료 인력은 줄일 것이다.
대학병원에서 고혈압을 진료하는 의사들은 고혈압이 중증·응급·희소 질환임을 입증하지 못하면 신규 의료진을 채용하지 않는 방법을 통해 자신의 진료 과목이 퇴출될 위기에 봉착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학회에서 만난 한 대학병원 고혈압 진료 교수는 역설적인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필수 의료라는 말이 모호한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심근경색과 뇌졸중의 원인인 고혈압 진료는 필수 의료라고 할 수 있잖아요. 상급병원 구조 전환 정책은 필수 의료를 보강하겠다는 것인데 오히려 저희 같은 필수 의료진이 쫓겨나게 생긴 건 역설 아닙니까?"
이런 위기감은 정형외과, 척추신경외과, 내분비내과, 재활의학과, 영상의학과, 안과 등의 진료 과목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정부는 필수 의료의 질을 높이겠다며 30조 원+알파라는 돈을 쓰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 돈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잘 따져봐야 한다. 그래야 정부 정책의 디테일을 알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30조 원 중 첫 번째 10조 원은 2년 전 뇌출혈로 다른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지만 사망한 대형병원 간호사 사건 이후 책정된 금액으로, 출처는 국민건강보험금이다. 두 번째 10조 원은, 올해 의료 대란으로 수술과 진료가 줄어들면서 상급종합병원의 건보공단 청구 금액이 예년보다 10조 원이 줄었는데 바로 이 돈으로, 역시 국민건강보험금이다. 세 번째 10조 원은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시범을 통해 병실과 환자 수가 줄어들면 남을 것이라고 예상되는 금액이다. 즉, 필수 의료 지원 금액 30조 원의 출처는 모두 국민건강보험금이다.
그런데 내년 국민건강보험료 인상률은 올해에 이어 '0'%로 결정됐다. 건강보험료가 동결된 건 네 번째 있는 일이고 연속 동결된 건 처음인데, 정부가 경제 악화, 고령화 등 여러 상황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물가 상승률 등을 보정하면 국민건강보험의 총액은 당분간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다면 정부가 필수 의료 지원으로 책정한 30조 원만큼 비필수 의료에 책정될 금액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필수 의료에 포함되지 않으면 수가가 종전에 머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삭감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진료 과목 학회에서 정부가 던진 키워드 '중증', '응급', '희소'에 들어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은 이런 구도가 너무 쉽게 보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초에 열렸던 대한신경외과 학회에서 나온 말이다.
"필수 의료란 말이 의학적으로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제아무리 의학적 근거를 들이밀어도 소용없을 것 같습니다. 보건복지부 및 여러 관계자들의 '오프 더 레코드'를 종합해 보면 '상급종합병원에서 진료 비율이 월등히 높은 진료가 필수 의료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러니 우리가 대학병원에서 생존하려면 로컬(비대학병원을 일컫는 말)에서 보는 환자를 저희는 안 보는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이 발언은 나의 취재와 일치했다. 현재는 질환의 중증도에 A, B, C로 나누고 이에 따라 수가를 달리하고 있다. 그런데 이게 기계적인 분류라며 그동안 불만이 많았고, 최근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사업이 발표되면서 중증도 분류에 따른 수가 격차가 더 벌어질 기미가 보이자 의료계 현장에서 저항이 극에 달했다. 그래서 정부는 새로운 중증도 분류 체계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는데, 이는 사실상 의료 현장을 달래기 위함으로 보였다. 의료 현장이 기꺼이 받아들일 새로운 중증도 분류 체계를 마련하려면 어마한 연구가 필요하고 그러려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건강한 삶을 위한, 믿을 수 있는 의학 정보! '주간 조동찬'에서 전해드립니다.
대학병원에서 쫓겨날 위기의 필수 의료 과목들
지난주 서울에서 대한고혈압학회 추계 학술대회가 열렸다. 예년처럼 축제 분위기는 찾기 어려웠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병원과 학교를 떠난 지 8개월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리라. '고혈압 관리와 만성질환 정책' 세션에서는 비장한 분위기까지 감돌았다. 그것은 최근 시행된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지원 사업과 관련이 깊었다.
고혈압과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사업의 상관관계를 간파하기는 쉽지 않다. 정부를 포함해 그 누구도 공개적으로 설명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내용을 내부적으로 들여다보면 단번에 알아챌 수 있다.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이라 함은 서울아산병원, 분당서울대병원 같은 대학병원들이 병실을 현재의 85%까지 줄이고, 중증·응급·희소 질환 환자의 비율을 높이는 것이다.
병실을 15% 줄이고, 비중증·비응급·비희소 질환 환자를 줄이면 병원은 손실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11월 7일 기준, 47개 상급종합병원 중 65%인 31개 병원이 참여했다.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사업에 참여하면 중환자실, 응급실 등의 병실료와 중증·응급·희소 질환의 진료 수가를 올려 주겠다고 정부가 발표했기 때문이다. 전공의의 공백이 너무 길어 전문의 중심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급작스럽게 내놓은 대책이지만 얼핏 보면 좋은 방향처럼 보이고 실제로 그런 측면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여기에는 무서운 칼날이 숨겨져 있다. 예를 들어 국내 최대 병원인 서울아산병원은 현재 2,424개 병상을 336개 줄이고, 분당서울대병원도 현 1,133개 병상을 104개 축소해야 한다. 병상을 줄이면 그만큼 진료 환자와 해당 의료 인력도 줄여야 한다. 병원 경영진의 선택은 뻔하다. 상대적으로 높은 수가를 받을 수 있는 중증·응급·희소 질환의 의료 인력은 그대로 두거나 보강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진료 과목의 의료 인력은 줄일 것이다.
대학병원에서 고혈압을 진료하는 의사들은 고혈압이 중증·응급·희소 질환임을 입증하지 못하면 신규 의료진을 채용하지 않는 방법을 통해 자신의 진료 과목이 퇴출될 위기에 봉착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학회에서 만난 한 대학병원 고혈압 진료 교수는 역설적인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필수 의료라는 말이 모호한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심근경색과 뇌졸중의 원인인 고혈압 진료는 필수 의료라고 할 수 있잖아요. 상급병원 구조 전환 정책은 필수 의료를 보강하겠다는 것인데 오히려 저희 같은 필수 의료진이 쫓겨나게 생긴 건 역설 아닙니까?"
이런 위기감은 정형외과, 척추신경외과, 내분비내과, 재활의학과, 영상의학과, 안과 등의 진료 과목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역시 돈 문제였다
30조 원 중 첫 번째 10조 원은 2년 전 뇌출혈로 다른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지만 사망한 대형병원 간호사 사건 이후 책정된 금액으로, 출처는 국민건강보험금이다. 두 번째 10조 원은, 올해 의료 대란으로 수술과 진료가 줄어들면서 상급종합병원의 건보공단 청구 금액이 예년보다 10조 원이 줄었는데 바로 이 돈으로, 역시 국민건강보험금이다. 세 번째 10조 원은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시범을 통해 병실과 환자 수가 줄어들면 남을 것이라고 예상되는 금액이다. 즉, 필수 의료 지원 금액 30조 원의 출처는 모두 국민건강보험금이다.
그런데 내년 국민건강보험료 인상률은 올해에 이어 '0'%로 결정됐다. 건강보험료가 동결된 건 네 번째 있는 일이고 연속 동결된 건 처음인데, 정부가 경제 악화, 고령화 등 여러 상황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물가 상승률 등을 보정하면 국민건강보험의 총액은 당분간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다면 정부가 필수 의료 지원으로 책정한 30조 원만큼 비필수 의료에 책정될 금액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필수 의료에 포함되지 않으면 수가가 종전에 머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삭감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진료 과목 학회에서 정부가 던진 키워드 '중증', '응급', '희소'에 들어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은 이런 구도가 너무 쉽게 보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초에 열렸던 대한신경외과 학회에서 나온 말이다.
"필수 의료란 말이 의학적으로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제아무리 의학적 근거를 들이밀어도 소용없을 것 같습니다. 보건복지부 및 여러 관계자들의 '오프 더 레코드'를 종합해 보면 '상급종합병원에서 진료 비율이 월등히 높은 진료가 필수 의료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러니 우리가 대학병원에서 생존하려면 로컬(비대학병원을 일컫는 말)에서 보는 환자를 저희는 안 보는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이 발언은 나의 취재와 일치했다. 현재는 질환의 중증도에 A, B, C로 나누고 이에 따라 수가를 달리하고 있다. 그런데 이게 기계적인 분류라며 그동안 불만이 많았고, 최근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사업이 발표되면서 중증도 분류에 따른 수가 격차가 더 벌어질 기미가 보이자 의료계 현장에서 저항이 극에 달했다. 그래서 정부는 새로운 중증도 분류 체계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는데, 이는 사실상 의료 현장을 달래기 위함으로 보였다. 의료 현장이 기꺼이 받아들일 새로운 중증도 분류 체계를 마련하려면 어마한 연구가 필요하고 그러려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조동찬 의학전문기자 dongchar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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