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한담] 여의도 ‘미스리’와 24년 만의 이별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등이 밀집해 있는 금융투자업계의 중심지인 서울 여의도에서 ‘미스리(Miss Lee)’를 모르는 이는 드뭅니다. 어느 시대인데 아직도 ‘미스’라는 호칭을 쓰느냐고 따져 물을 수 있지만, 여의도에서 20년 넘게 미스리는 당연히 미스리 메신저의 준말이었습니다. 한때 증권가 주요 정보는 모두 미스리를 통했고, 이른바 ‘작전’에 동원되기도 했습니다. 그런 미스리와 이별할 시간이 불쑥 찾아왔습니다.
미스리 운영사인 미소앤클라우드는 오는 12월 11일로 미스리 메신저 서비스 운영을 중단하겠다고 공지했습니다. 미소앤클라우드는 “서비스 출시 이후 고속성, 안정성, 대량 동시 전송성 등 메신저 서비스를 개선해 왔으나, 더는 이용자들께 만족스러운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서비스 종료를 결정했다”며 “그동안 미스리 메신저를 사랑해 준 이용자들에게 다 표현할 수 없는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고 했습니다.
미스리의 모태는 1997년 경북의 한 입시학원에서 개발한 메신저 ‘마이챗’입니다. 이후 사업 가능성을 보고 이지닉스라는 회사를 차려 독립, 2000년에 미스리가 정식 출시됐습니다. 참고로 이름 미스리는 개발 총괄의 첫사랑 성씨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서비스 출시 당시엔 여성 비서에게 흔히 사용하는 호칭이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영문명을 ‘MI3(미션임파서블 3)’로 잠시 바꾸기도 했지만, 여의도에선 줄곧 ‘Miss Lee’로 통했습니다.
대규모 그룹이 쪽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미스리는 늘 정보에 목마른 증권가가 원하던 메신저였습니다. 미스리의 전성기는 2009년쯤입니다. 당시엔 하루 평균 이용자가 8만명에 달했습니다. 미스리 이용자의 주사용 시간대는 증시가 열리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였습니다. 증권가와 투자자들이 미스리를 애용했다는 의미입니다.
특히 미스리는 대화 내용이 서버에 남지 않고, 사용자 컴퓨터에서도 일정 용량을 넘어서면 메시지가 차례로 삭제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 주목받았습니다. 최초로 쪽지를 보낸 이를 특정하기 어려운 만큼 보안 기능을 갖췄다는 점이 증권가에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부작용도 적지 않았습니다. 미스리를 통해 증권가 지라시가 퍼져나가는 일이 잦았고,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금융당국은 물론 수사당국의 조사 대상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지라시가 미스리를 통해 확산하면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 연예인도 있었죠. 2009년 개봉한 영화 ‘작전’에도 미스리를 통해 지라시를 유포하는 장면이 담겼습니다.
하지만 스마트폰 보급에 따라 모바일 시대가 열리면서 미스리의 입지도 점차 좁아졌습니다. 투자자들은 카카오톡, 텔레그램으로 떠나갔습니다. 이제 금융당국이 허위 투자정보를 유포하는 주요 채널로 텔레그램, 유튜브 등을 집중적으로 감시하는 것이 당연해졌습니다. 미스리는 그만큼 뒤로 밀려났습니다.
돌이켜보면 이별의 순간은 예고돼 왔습니다. 미스리와 함께 증권가 대표 메신저로 꼽혔던 야후메신저와 EZQ메신저(옛 FN메신저)는 각각 2016년과 2019년에 서비스를 중단했습니다. 미스리도 지난해부터 미스리카페와 종목채팅 등의 서비스를 차례로 중단했습니다.
증권가에서도 이미 헤어질 결심을 하고 있었다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10년 넘게 미스리를 이용해 온 한 증권사 직원은 “갈수록 오류가 잦아져 사용하는데 제한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다른 자산운용사 직원도 “미스리가 깔려있기는 하는데, 솔직히 이용하지 않은 지 꽤 됐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긴 시간만큼 추억이 될 것이란 의견도 있었습니다. 15년 넘게 미스리를 이용해 온 증권사 직원은 “처음 증권업계 발을 담갔을 때 미스리부터 가입해 설치했던 기억이 남는다”고 했습니다. 다른 증권사 직원도 “마지막 남았던 증권가 메신저인 미스리까지 퇴장하는 것을 보니, 확실히 새로운 시대가 찾아온 것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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