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는 약하게, 나는 강하게…뺏고 뺏기는 FA 정치학
프로야구 자유계약(FA)시장이 활활 타오른다. 한화 이글스가 케이티(KT) 위즈로부터 심우준(4년 50억원), 엄상백(4년 78억원)을 데려왔고, 엘지(LG) 트윈스는 기아(KIA) 타이거즈에서 불펜 장현식(4년 52억원)을 빼 왔다. 심우준을 뺏긴 케이티는 내야 공백을 메우기 위해 두산 베어스로부터 허경민(4년 40억원)을 영입했다. 한화, 엘지, 케이티 모두 올 시즌 그들보다 더 높은 순위의 팀에서 전력을 수혈한 공통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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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 구단이 순위를 다투는 KBO리그에서 상대의 전력을 약화시키는 것도 스토브리그 전략 중 하나다. 수도권 구단 한 단장은 “특A급 선수가 아닌 이상 하위권 팀보다 상위권 팀 FA 선수를 데려오는 게 낫지 않겠는가. 우리보다 순위가 위인 팀 전력을 끌어내려야만 우리가 올라갈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물론, 타 구단 선수를 영입하면서 ‘우리 팀’ 전력 약화를 최소화하는 것은 필수. 이번 FA시장에서 롯데 자이언츠 마무리 투수 김원중보다 장현식이 ‘매물’로 더 인기가 있던 이유다. 김원중은 FA 등급으로 A, 장현식은 B였다.
FA 선수를 외부에서 영입하는 구단은 원소속 구단에 A등급 선수의 경우 직전 연도 연봉의 200%와 보호선수 20명 외 선수 1명 또는 전년도 연봉의 300%를, B등급의 경우는 직전 연도 연봉의 100%와 보호 선수 25명 외 선수 1명 혹은 전년도 연봉의 200%를 보상해야만 한다. 즉, A등급은 팀의 21번째 선수를, B등급은 26번째 선수를 원 소속팀에 내줘야만 한다. 팀 내에서 21번째와 26번째 선수의 비중은 차이가 있다. 김원중은 롯데에 잔류하면서 4년 54억원에 계약했는데, 보장액(44억원)은 오히려 장현식(52억원)보다 적다. 만약 김원중이 B등급이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수도 있다.
엄상백과 최원태(LG)의 경우도 똑같이 FA 신분이지만 등급에서 차이가 있다. 선발투수라는 포지션은 같지만 엄상백은 B등급, 최원태는 A등급이다. 엄상백은 2015년 데뷔해 통산 45승44패 평균자책점 4.82, 최원태는 2016년부터 프로 무대에 올라 78승58패 평균자책점 4.36을 기록했다. 최원태가 엄상백보다 한 살 어리기도 하다. 하지만 FA 계약은 엄상백이 먼저 했다. B등급이었기 때문에 어린 유망주가 많은 한화의 고민이 적었다.
올해 FA 선수 중 A등급은 최원태, 김원중을 비롯해 구승민밖에 없다. 불펜 투수인 구승민도 원소속팀 롯데와 계약 기간 2+2년, 최대 21억원에 계약을 끝냈다.
FA 계약 이후 ‘뺏고 뺏긴’ 두 구단 간에는 치열한 머리싸움이 전개된다. 보호선수 작성과 지명 절차가 기다리기 때문이다. 선수를 ‘뺏긴’ 구단의 경우 보통은 보상 선수로 필요한 부분을 보강하기도 하지만, 여의치 않을 때는 상대 전력을 약화시키는 전략을 택하기도 한다. 2016년 말 두산이 그랬다.
두산은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한 이원석에 대한 보상 선수로 입대를 앞둔 백업 포수 이흥련을 깜짝 지명했다. 당시 삼성은 두산에 포수 자원이 많다는 점(양의지, 최재훈, 박세혁 등)에서 투수 위주로 보호 선수를 짰는데, 두산이 삼성의 허를 찔렀다. 포지션이 중복되더라도 향후 트레이드 카드로 쓸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두산의 선택이었다. 동시에 삼성의 포수 전력을 약화시킨 것은 물론이다.
각 구단들은 FA 영입 계획을 시즌 중 시뮬레이션을 돌려가며 미리 짠다. 시즌 직후 FA 선수 잔류, 영입 계획을 세우면 한 발 늦을 수 있다. 외부 FA선수 영입 계획을 짠 구단은 보호선수 등을 염두에 두고 시즌 중 제대 선수를 일부러 1군에 등록하지 않기도 한다. 한화가 올해 그랬다.
2003년생 포수 유망주 허인서는 지난해 상무에서 타율 0.393, 장타율 0.573, 출루율 0.500의 성적을 거뒀는데 올해 7월 제대 뒤에도 한화는 그를 1군에 등록하지 않았다. 군 복무를 마쳤지만 당해년도에 1군 엔트리에 등록되지 않은 선수는 외부 FA 계약 때 자동보호선수가 되기 때문이다. FA 선수 보상을 위한 보호선수 20명, 혹은 25명으로 안 묶어도 된다는 뜻이다. 상무 제대 선수가 1군에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해당 팀이 시즌 뒤 FA 선수 영입에 관심이 있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된다. 팀 순위 경쟁이 치열하다면 코칭 스태프 의견에 따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지만 말이다.
스토브리그는 지금도 물밑에서 치열하게 전개 중이다. 향후 예상 외 깜짝 계약이 이뤄질 수도 있다. ‘사인 앤 트레이드’ 가능성도 상시 열려 있다. 지난 시즌 뒤 내부 FA 포수였던 김민식과의 계약에 진전이 없자 키움 히어로즈로부터 전격적으로 베테랑 포수 이지영을 사인 앤 트레이드로 영입했던 에스에스지(SSG) 랜더스가 한 예다. 이후 김민식은 구단 첫 제시액보다 낮은 액수에 도장을 찍어야만 했다. 그만큼 계약 시기도 중요하다.
올해 스토브리그가 끝나면 과연 누가 웃고 있을까. 그리고, 과연 그 팀은 내년 시즌이 끝난 직후에도 웃고 있을까. 성적이 꼭 투자에 비례하는 것만은 아니기에 하는 말이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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