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 평가지표 PFS가 만능? 간암 신약은 생존기간 연장 충분"
암 환자에게 투여한 항암제가 효과를 내면서 성장을 멈춘 암 세포가 다시 자라지 않아 환자도 생존한 기간을 뜻하는 무진행생존기간(PFS)은 항암제 평가를 위한 주요 지표 중 하나다. 일각에선 PFS를 입증하지 못한 항암제의 의미를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하지만 면역항암제가 등장하면서 간암 등에선 PFS가 절대 지표는 아니라는 해석이 늘고 있다. PFS 개선에 관계없이 암 환자 생존기간(OS) 연장엔 성공하는 신약이 잇따르면서다. 아스트라제네카의 '임핀지'와 '이뮤도'를 간암에 병용 투여하는 치료법 등이 대표적이다.
전홍재 분당차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13일 "약이 잘 듣는 환자에겐 장기 생존을 기대할 수 있게 하고 약이 듣지 않는 환자에겐 효과가 떨어지는 면역항암제는 '올 오어 낫띵'과 같다"며 "임상 시험 1차 지표로 활용한 OS 개선 입증으로도 약물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했다.
미국간학회의 간암 임상시험 가이드라인도 "PFS는 다른 고형암 연구엔 적합한 치료효과 평가 지표일 수 있지만 간암은 간기능 악화로 인한 사망 등 교란요인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직접적인 임상 지표인 OS로 평가하는 게 더 적절하다"고 권고하고 있다.
간암에서 OS 개선이 의미있는 것은 암의 특성 때문이다. 이미 질환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에서 진단되는 간암 치료 목표는 생존율 향상이다. 많은 치료제가 전체 생존기간(OS) 연장을 목표로 개발되는 이유다.
간암은 전신 건강 상태에 큰 영향을 주는 장기다. 전 교수는 최근 간암 치료 후 간 기능이 떨어진 환자의 사망 위험이 치료 중 간암이 악화된 환자 사망 위험보다 높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간암 환자 생존율 개선을 위해선 전신 건강 상태를 잘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다.
많은 간암 면역항암제 임상시험에서도 1차 지표로 OS 개선을 평가하고 있다. 임핀지+이뮤도는 물론 BMS의 옵디보+여보이 병용요법도 1차 평가 지표가 OS 개선이다.
전 교수는 "PFS 중앙값을 보기 위해선 50% 환자가 어디에 속하는지를 봐야 하는데 간암 면역항암제 임상시험에서 그것까지 만족하기는 쉽지 않다"며 "이미 OS를 1차 지표로 개선해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까지 받았기 때문에 PFS에 지나치게 연연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한국의 간암 사망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다. 간암 환자 5년 생존율은 39.3%로 전체 암 5년 생존율(72.1%)의 절반 수준이다. 원격 전이 단계 간암 환자 5년 생존율은 3.1%에 불과하다.
간암 극복을 위한 치료제가 많이 개발되고 있지만 다른 암에 비해 생존율 개선 속도는 빠르지 않다. 10년간 5년 상대 생존율은 1% 높아지는 데 그쳤다.
간은 몸에 들어간 독성 물질을 해독하는 장기다. 암을 없애려면 독성이 강한 약물을 투여해야 하는데 암 탓에 기능이 떨어진 간에 항암제까지 투여하면 환자가 버티질 못한다. 화학독성항암제 치료가 간암엔 잘 활용되지 못하는 이유다.
넥사바, 렌비마 등의 표적항암제가 간암 치료에 활용되고 있지만 환자 생존율을 개선하는 데엔 한계가 있었다. 로슈의 티쎈트릭 등 면역항암제가 잇따라 간암 치료에 활용되면서 변화를 맞고 있다. 인체 면역계의 암 공격력을 높여주는 면역항암제는 간 기능 저하를 최소화하면서 암을 없앨 수 있어서다.
면역 T세포를 활성화하는 CTLA-4 억제제 '이뮤도'와 PD-L1 억제제 '임핀지'를 병용 투여한 면역항암제 병용요법은 간암 치료법 중 처음으로 4년 장기 생존을 입증했다.
이 치료를 받은 환자들의 4년 OS는 25.2%다. 환자 4명 중 1명이 4년 넘게 삶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미다. 암 완치 기준으로 불리는 5년 생존율은 19.6%다. 기존 표적항암제인 넥사바(9.4%) 대비 이점을 분명히 확인했다.
글로벌 제약사들의 간암 정복 도전은 이어지고 있다. 두개의 면역항암제를 조합한 BMS 옵디보와 여보이 병용요법도 간암 치료 기대주로 꼽힌다. 간암 1차 치료에 활용해 2년 OS 49%를 입증하는 등 후속 연구 속도를 높이고 있다.
로슈는 면역항암제 티쎈트릭과 표적항암제 아바스틴 조합에 새로운 TIGIT 계열 면역항암제인 티라골루맙을 추가해 간암 치료 효과를 확인하기 위한 후속 임상시험을 하고 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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