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도록 일하는데 나아지지 않는다

이유진 기자 2024. 11. 13. 09:3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출판]불안정노동과 흔들리는 삶을 다룬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

“우리한테 딱 빨대 꽂아놓고 그냥 빨아당기는 거죠. 죽지 않을 정도만.” “추락해서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어요. 근데 사람들이 그냥 피 닦고, 바로 일을 하더라고요. (…) 사람 일할 곳이 아니라는 걸 되게 많이 느꼈어요.”(이상 조선업 하청노동자 인터뷰)

‘노동자 계급’은 단일하지 않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구분으로도 ‘노동자’를 설명할 수 없다. ‘블루칼라 노동자’란 말도 오늘날의 저임금 불안정노동자를 포괄하지 못한다. 특수고용노동자, 프리랜서, 플랫폼노동자, 하청노동자,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 자유가 없는 가짜 자영업자, 유튜버, 크리에이터 등이 배제되기 때문이다. 쉼과 일의 경계, 작업 장소와 사적 공간 등의 경계조차 희미한 이들은 소득 빈곤, 시간 빈곤에 시달리고 기본적 노동권과 복지 혜택에 접근할 기회도 제한된다. 새로운 불안정노동이 갈수록 확산한다.

2023년 한국의 불안정노동과 복지정책의 노동자 보호 실패에 관해 쓴 영문판 연구서로 세계적 인정을 받은 이승윤 중앙대 사회복지학부 교수가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문학동네 펴냄)을 내놓았다. 불안정노동과 ‘복지국가 한국’의 현실에 관해 정교하고 엄격한 분석을 이어가면서도 시종일관 불타오르는 연구자의 열정이 책장마다 여실히 드러난다.

저자는 엄밀한 논증을 통해 노동에 관한 기존 상식과 다른 현실을 드러내는 데 집중한다. 상병수당이 없는 까닭에 아프면 곧바로 빈곤해지는 현실, 한국 청년 불안정노동의 양극화 현실, 한국 여성청년이 노동시장에서 경험하는 불안정성이 다소 개선되고 한국 남성청년이 과거보다 불안정노동을 경험하는 비율이 높아진 현실 등을 보여준다.

책 말미에 저자는 ‘액화노동’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비표준이고 비정형적인 노동 형태를 포괄하는 이 개념은 비정규직, 프리랜서, 하청노동, 플랫폼노동, 긱노동, 크리에이터와 크라우드노동까지 포함한다. 사실 이들은 독립적인 계약자가 아니라 일방적 종속성을 띠고 법 제도에서 배제되고 사회보장제도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저자는 역설적이게도 정책 표류가 더 광범위한 노동자의 연대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며 다양한 ‘패자 집단’의 연대를 강조한다.

‘현장’에서 답을 찾고자 노동자를 만나며 저자의 위치성을 자각하는 부분은 이 책의 중요한 축이다. 새벽배송을 마치고 시뻘건 눈으로 마주 앉은 노동자, 통증 때문에 울면서도 일을 멈출 수 없는 노동자, 세련된 음악이 흘러나오는 카페에서 이질적으로 앉아 있는 빈곤노동자를 만나면서 저자는 연구자로서 “부끄러운 마음” “나와 연구 대상자가 살아가는 실존적 위치 사이의 간극”을 느끼고 “이론의 베일에 감싸인 무지함”에서 벗어나려 한다. 한국에서 여성박사 소득이 남성박사의 66.9%에 불과한 점, 서구 백인 남성 지식인의 입에 의존하는 한국사회 비판도 ‘주류’가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읽는 이의 얼굴도 함께 붉어진다. 248쪽, 1만7천원.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21이 찜한 새 책

정신병을 팝니다

제임스 데이비스 지음, 이승연 옮김, 사월의책 펴냄, 2만3천원

“사회적 원인이 있는 공유된 고통”은 “정치적으로 제거되었다”고 밝히는 책. 오늘날 고통의 의료화는 비정상적 개인에 대한 화학적·인지적 개입이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제약업계가 이윤추구를 하면서 맞물린 결과다. 정신병의 과잉의료화와 신자유주의 통치성을 신랄하게 폭로한다. 지적이고 냉철하며 후련하다.

웃기지 않아서 웃지 않음

선우은실 지음, 읻다 펴냄, 1만8천원

2016년 비평가로 등단한 선우은실의 ‘생활비평 산문집’. 일상 속 ‘화’라는 감정을 담담하게 비평한달까. 어린 시절 언어화할 수 없었던 불편과 내적 흥분, 30대 비혼 여성 비평가로서 겪는 곤경 등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비평이 운명처럼 보이는 어느 비평가의 비평적 생활. 냉소적인데 다정하고 눈물겹다.

인종은 피부색이 아니다

스튜어트 홀 지음, 코비나 머서 엮음, 임영호 옮김, 컬처룩 펴냄, 2만원

영국 문화연구, 버밍엄 학파 창시자인 스튜어트 홀이 생애 말기 진행한 강연을 책으로 엮은 사실상 유작. 인종, 종족, 민족 등의 정체성 개념을 생물학에서 떼내 문화적 맥락에서 형성되는 담론적 개념으로 파악한다. 홀의 주요작들을 꾸준히 번역해온 임영호 부산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명예교수가 옮겼다.

숨과 입자

황여정 지음, 창비 펴냄, 1만6천원

광고 디자이너 이수는 회사에서 엘리베이터에 갇히며 번아웃에 시달린다. 동생 이영의 권유로 떠난 포르투갈 여행에서 이수는 요가를 배우며 삶을 전환하기로 결심한다. 종교적 문제에 골똘한 이영은 기도원에서 인터뷰를 하게 되고, 특성화고 현장실습을 하다 산업재해로 죽은 친구 승아를 떠올리는데….

Copyright © 한겨레2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