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생기고 똑똑했던 둘째 삼촌… 옛날 사진 보니 더 생각나요[그립습니다]
시골에서 소박하게 자라다 보면 삼촌과 조카의 관계는 돈독하다. 농사를 짓는 부모님 슬하에서 장남인 나에게는 삼촌이 네 분 계셨다. 둘째 삼촌은 그림을 잘 그리고 머리가 영특하셨다. 대부분의 농촌 가정들이 먹고살기 힘든 시기라 삼촌은 읍내에 거주하면서 사업을 하는 고모 내외분이 운영하시던 가게에서 그림을 그리는 직업을 하시다가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급성 맹장으로 들것에 실려 읍내병원으로 가시다가 별세하셨다.
그 당시 1960년대에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큰길도 없어 마을에는 자동차도 들어올 수 없었다. 이런 산골짜기 오지마을은 읍내에서 집에 들어오려면 먼지 자욱한 비포장도로를 달려 우리 마을과 거리가 멀었던 삼정마을에서 내려 산 고개를 넘어야 했다. 숲이 우거지고 오솔길 옆에는 묘지들이 있는 으스스하고 무서운 산 고개를 걸어야만 했다.
1960년대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둘째 삼촌은 그렇게 험한 숲길을 걸어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내 부모님이 농사를 짓고 계시는 고향집으로 가끔씩 왔다. 손님이 귀했던 시대라 큰 조카인 나는 삼촌이 너무 좋아 엄청 반가워했다. 삼촌이 집에 오시면 할머님이 계시는 큰방에서 어른들을 모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셨다. 어린 나는 옆에서 어르신들이 나누는 대화를 엿들었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재미있었다.
그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인 내가 공부를 하지 않고, 할머님이 거처하시는 큰방에 있으면 그토록 자상하신 삼촌은 “너는 빨리 할아버지 방으로 가서 공부하라”며 사랑방으로 나를 내쫓았다. 어르신들이 이야기 나누는 것을 듣고 싶었지만 열심히 공부하라는 삼촌의 성화에 못 이겨 아쉽지만 어쩔 수 없이 할아버지 방으로 건너온 나는 하기 싫은 공부를 수박 겉핥기식으로 대충대충 했다.
돈이 없으니 아버지가 전과나 참고서를 사줄 리가 없고, 마을에 같은 학년 친구도 없으니 모르는 문제들을 누구한테 물어볼 수도 없었다. 대충대충 공부하다 보니 성적이 좋을 리가 있었겠는가? 그런데 그 언젠가 어느 날 하루는 둘째 삼촌께서 고향집에 오셨는데, 학교에서 치른 내 시험 성적표를 보시고는 깜짝 놀라 갑자기 할아버지 방으로 오라고 하더니 시험 문제지를 들고는 차례차례 차분하게 공부를 가르쳐줬다. 그 이후부터 시험 볼 때는 삼촌한테 배운 학습 지도가 효과가 있어 100점 또는 95점 이상의 성적을 냈다. 선생님이 칭찬을 하면서도 의아스럽게 여길 정도였다.
이렇게 훌륭한 삼촌이 혼기가 꽉 차 결혼을 했는데 신혼 첫날을 보내고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했다. 의학지식이 전무했던 우리 가족들은 배 아픈 데 된장이 특효약이라 생각하고 냉수에 된장을 풀어 마시도록 하다가 호전되지 않자 결국에는 자정이 넘는 시간에 들것에 실어 이십 리 떨어진 읍내 의원으로 가시다가 맹장이 터져 버려 결국 세상을 떠나셨다.
둘째 삼촌이 갑자기 별세해 다음 날 밤 이웃집 남자분들이 와서 상여를 메고 “간다 간다!!! 정든 부모 형제 먼저 두고 북망산천으로 먼저 간다”라며 구슬픈 곡조의 소리를 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나는 어린 나이에 귀중하고 먹기 힘들었던 떡을 먹게 되어 아무런 표정도 없이 먹었는데, 할머니와 어머니, 고모는 대성통곡을 하면서 밤새도록 앞마당에서 울고 계셨다.
아!!! 지금도 그 시간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고, 슬프고, 우울하다. 둘째 삼촌이 너무 보고 싶고 그리워진다. 잘생기고 머리도 뛰어났으며 형제간 우애도 가장 깊었던 둘째 삼촌이 살아 계셨다면 우리 집의 형편이 많이 좋아지고 잘살았을 것인데….
이제 내 나이 70줄에 가까워 오니 그 옛날 함께 찍었던 사진의 주인공들이 세상을 떠났다. 사진을 보면 쓸쓸하고 공허하고 서글퍼져 가능하면 옛 사진들을 보지 않으려고 한다. 그렇지만 자꾸만 손이 가고 지난 사진들이 보고 싶어진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말한다. “힘내자.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현실에 적응해 잘 살아가자…. 둘째 삼촌도 나를 응원하고 계시겠지.”
큰 조카 이응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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