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분대로 끊어라’… K-팝, 짧아야 뜬다

안진용 기자 2024. 11. 13.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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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2014·2024년 ‘노래 길이’ 비교해보니
서사보다 퍼포먼스·임팩트 중시
평균 4분→ 3분→ 2분대로 줄어
전세계 인기 ‘아파트’ 2분 50초
MZ, 쇼트폼 즐기고 영상은 2배속
음원 미리 듣기 때 매력 끌어야
도입부 없애고 본론부터 들려줘

K-팝의 ‘길이’가 더 짧아졌다. 문화일보가 2004년, 2014년, 2024년 히트곡 톱10을 전수 조사한 결과, 2000년대 초, 평균 4분대였던 반면 최근에는 2분대에 진입한 것으로 집계됐다. 긴 내러티브보다는 즉흥적 자극, 서사보다는 콘셉트에 초점을 맞추며 쇼트폼에 중독된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 성향을 반영한 결과라 할 수 있다.

◇평균 길이 ‘2분’ 진입한 K-팝

12일 기준, 국내 최대 음원사이트 멜론 차트 톱10에 든 10곡의 평균 길이는 2분58초였다. 걸그룹 블랙핑크 로제가 미국 팝스타 브루노 마스와 함께 부른 ‘아파트’가 2분50초였고, 에스파의 신곡 ‘위플래시’(3분3초)는 3분을 조금 넘겼다. 밴드 음악을 하는 데이식스의 노래는 상대적으로 길었다. ‘해피(HAPPY)’(4위·3분10초), ‘웰컴 투 더 쇼’(8위·3분37초),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9위·3분25초) 모두 3분대였다. 반면 퍼포먼스를 앞세운 K-팝 가수의 노래 길이는 대다수 짧았다. 지드래곤이 7년 만에 발표한 ‘파워’(3위·2분23초), 에스파의 ‘업(UP)’(5위·2분46초), 제니의 ‘만트라’(6위·2분16초), 에스파의 ‘슈퍼노바’(10위·2분59초) 모두 2분대였다.

10년 전인 2014년 멜론 연간 차트 톱10의 평균 길이는 3분40초였다. 1위인 ‘썸’이 3분31초였고, 박효신의 ‘야생화’(2위·5분12초)가 5분 벽을 넘었다. 3∼5위인 태양의 ‘눈, 코, 입’(3분50초), 아이유의 ‘금요일에 만나요’(3분37초), 산이·레이나의 ‘한여름 밤의 꿀’(3분53초) 모두 4분에 근접하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걸그룹인 에이핑크의 ‘미스터 츄(Mr. Chu)’(3분34초)와 걸스데이의 ‘섬싱(something)’(3분20초) 역시 3분대를 유지하고 있어, 최근 활동하는 K-팝 그룹의 노래가 그때보다 상대적으로 더 짧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년 전인 2004년 멜론 연간 차트 톱10을 보면 K-팝 그룹을 필두로 한 ‘보는 음악’보다는 ‘듣는 음악’이 대세였다. 조PD의 ‘친구여’(4분18초)가 1위였고, 이승철의 ‘긴 하루’(3분41초), 테이의 ‘사랑은 향기를 남기고’(4분20초), 박효신의 ‘그곳에 서서’(4분14초) 등 4분대 노래가 2∼4위 그룹을 형성했다. 김윤아의 ‘야상곡’(6위·4분13초), 이수영의 ‘휠릴리’(7위·4분20초) 등 발라드는 대부분 4분대였고, 세븐의 ‘열정’(8위·3분20초), 휘성의 ‘불치병’(10위·3분24초) 등 댄스곡은 3분대였다. 그리고 톱10의 평균 길이는 4분1초였다. 2024년 11월 현재와는 무려 1분3초가량 차이 난다.

◇왜 “더 짧게”를 외치나

K-팝의 길이가 짧아진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음원 순위 차트 주체의 변화다. 2004년 차트에서 ‘아이돌’로 분류할 수 있는 가수는 세븐 정도다. 하지만 2014년 이후에는 K-팝 가수들의 비중이 크게 늘었고, 2024년 현재는 톱10 모두에게 ‘아이돌’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결국 노래뿐 아니라 퍼포먼스와 영상을 중시하는 K-팝 가수들이 시장의 주도권을 쥐면서 짧은 시간에 다양한 요소를 집약적으로 보여 주는 콘텐츠가 각광받기 시작했다. 이들의 음악은 ‘힐링’과 ‘여유’보다는 ‘재미’와 ‘자극’에 방점을 찍는 경향이 있다. 임희윤 음악평론가는 “요즘은 음악을 평가할 때 뮤직비디오나 챌린지 등 외적인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한 명의 작곡가가 노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여러 작곡가가 송캠프 형태로 참여해 만들기 때문에 긴 서사 구조보다는 짧게 임팩트를 줄 수 있는 요소에 초점을 맞춘다”고 분석했다.

향유 계층의 성향도 반영됐다. K-팝 그룹의 노래는 주로 10∼30대, MZ세대가 즐긴다. 이들은 “더 짧게”를 외친다. 각종 SNS에서 쇼트폼을 즐겨보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를 보며 1.2∼1.5배속 혹은 건너뛰기(skip) 방식으로 콘텐츠를 소비한다. 이런 성향은 음악을 들을 때도 고스란히 반영되고, 이를 파악한 K-팝 관계자들이 짧은 노래로 승부수를 띄운 셈이다.

또한 요즘 K-팝은 도입부에 하이라이트를 배치하는 사례가 늘었다. ‘음원 미리듣기’ 시간인 1분 안에 충분히 어필해야 전곡 감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서론과 도입부를 과감히 들어내고 본론부터 들려주는 음악이 주류로 자리 잡게 됐다. 임 평론가는 “과거에는 댄스음악에도 기승전결이 있던 반면 요즘은 긴 서사보다는 짧은 단어나 구절이 주는 느낌이 더 중요하다. ‘슈퍼 이끌림’ ‘슈슈슈 슈퍼노바’와 중독성 있는 가사를 붙인 노래들이 인기를 끄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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