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 크다’ 판단땐 재판 방송 가능… “알 권리” vs “쇼 변질” 팽팽[Who, What, Why]
피고 동의없어도 재판부 재량
국민 87%·법학자 92% “찬성”
검사·판사는 ‘부정적’ 더 많아
박근혜·노무현 탄핵은 생중계
최순실 1심 선고는 방송 안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받고 있는 4건의 재판 중 2건이 이달 중 선고가 나오면서 이 대표는 ‘운명의 11월’을 맞이하게 됐다. 의원직 유지는 물론 차기 대권가도에도 큰 영향을 미칠 판결이기 때문에 해당 재판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은 상황이다. 재판부가 오는 15일 이 대표의 선고 공판 중계를 불허했지만 남은 재판의 중계 여부를 두고도 여야가 계속 공방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역대 주요재판의 경우 첫 재판 결과가 나오는 1심이나 최종 확정판결이 나오는 상고심을 생중계했지만 재판 중계에 피고인이 직접 모습을 드러낸 사례는 없었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4부(부장 한성진)는 오는 15일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선고 공판의 생중계를 하지 않기로 했다. 이번 재판은 이 대표가 받는 4개의 재판 중 가장 먼저 1심 결과가 나오는 사건이다. 재판부는 “관련된 법익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결선고 촬영·중계 방송을 실시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전날 수원지법 형사11부(부장 신진우)도 이 대표의 외국환거래법 위반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등 혐의 재판 3차 공판준비기일에 “시민단체에서 재판 생중계를 요청했는데 이 부분은 요건에 맞지 않는다”며 재판중계 거부 입장을 밝혔다. 재판장인 신 부장판사는 “피고인 동의가 있거나 공공의 이익이 인정되는 경우 피고인 동의 없이도 생중계할 수 있는데 대법원 규칙에 따르면 판결 선고나 공판 또는 변론 전 생중계할 수 있다”고 말했다. 25일 열리는 이 대표의 위증교사 혐의 재판도 여당을 중심으로 생중계 요구가 높아지고 있어, 재판부가 중계 여부를 밝힐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 관심 높은 사건, 2017년 개정 규칙으로 생중계 가능해져=1·2심 재판 생중계는 2017년 8월 대법원이 관련 규칙을 개정하면서부터 가능해졌다. 개정된 규칙은 재판부가 피고인이 생중계에 동의할 경우 선고 공판을 생중계하되 피고인이 동의하지 않더라도 공공의 이익이 크다고 판단되는 1·2심 재판 선고를 재량으로 중계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2018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1심 선고가 생중계됐다. 당시 재판부는 법정 내 질서유지 등을 고려해 방송사 카메라가 아닌 법원 내 자체 카메라로 영상 촬영해 외부에 송출하는 방법을 택했다. 생중계 결정은 선고기일이던 2018년 4월 6일로부터 사흘 전인 4월 3일 결정됐다. 반면 여론의 전망이나 관심이 컸지만 생중계가 허용되지 않은 예도 있었다. 2017년 8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사건 1심 선고 당시 일각에서 생중계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재판부는 공익보다 피고인들이 입게 될 손해가 더 크다며 허용하지 않았다. 2018년 2월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 1심 선고 때도 재판부는 피고인이 재판 촬영이나 중계에 동의하지 않은 점 등을 이유로 생중계하지 않았다.
헌법재판소도 국민적 관심이 쏠린 재판을 생중계한 바 있다. 헌재는 2017년 3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에서 선고 장면을 생중계했다. 앞서 2004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과 2004년 10월 신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 위헌확인 심판, 2008년 1월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의 주가조작 등 범죄혐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 위헌확인 심판 선고도 생중계했다. 헌재는 재판 중계에 대해 2021년 9월 헌재 심판규칙을 개정해 영상재판 근거를 구체적으로 마련했다. 이 규칙에 따르면 국민 관심이 큰 사건의 변론이나 선고 등을 인터넷·TV 등을 통해 생중계할 수 있다.
◇법조계, 국민 알 권리 대 무죄 추정 원칙 충돌=주요 재판에 대한 중계 수요가 커지면서 법원도 지난해 11월 법원방송을 개국해 하급심 재판을 중계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현재는 개인정보 보호 문제 등에 가로막혀 논의가 보류된 상황이다. 가장 큰 비판은 법원 내부에서 나왔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재판과정을 중계하면 재판장이 일거수일투족을 조심할 것”이라며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개별 이해득실에 따라 사법부를 비난하는 경향이 재판 중계로 심화할 가능성도 있다. 서울 소재 한 변호사도 “중계를 하면 변호인들이 눈길을 끌기 위해 이른바 ‘쇼’를 하면서 법리에 집중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무너진 사법부 신뢰를 재판 중계로 회복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김정중 서울중앙지법원장은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공적 관심이 많거나 국민 알 권리가 보장돼야 하는 사건은 생중계도 적절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답했다. 실제로 법원행정처가 지난해 11월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87.9%가 재판 생중계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보였고, 법학자들도 92.3%로 높은 찬성률을 나타냈다.
해외에서도 주요 재판을 중계하는 사례가 많다. 미국이 대표적으로 1976년 앨라배마주·워싱턴주가 중계를 허가하자 다른 주도 뒤따라 중계를 시작했다. 현재는 인터넷 스트리밍 방송을 포함해 컴퓨터·휴대전화 등을 통한 녹음, 촬영까지 허용된다. 다만 성폭력 사건과 청소년 사건의 경우 방송·녹화가 금지되고 일부 중계가 허용되는 경우도 정해진 규정을 따라야 한다. 영국도 알 권리와 피고인 인권 보호를 위해 금지 또는 허용규정을 두고 재판을 중계한다. 무죄 추정 원칙을 지키기 위해 1심 재판은 중계가 엄격히 금지되지만 항소심 법원은 재판장이 판결문을 낭독하고 선고하는 과정이 공개된다.
대륙법 국가인 독일, 프랑스는 피고인의 방어권을 우위에 두는 추세로 녹음·촬영을 통한 재판 중계는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하지만 독일에서는 최근 재판 공개 필요성이 증가하면서 2017년 10월 ‘미디어공개 확대에 관한 법률’을 만들어 연방최고법원의 재판 선고에 대해 중계방송을 가능하게 했다. 프랑스도 2005년 사전허가를 조건으로 한 재판 중계방송을 검토했다. 일본은 1949년 개정 형사소송규칙에 따라 법정 내 사진촬영·녹음·방송은 법원 허가를 받지 않으면 할 수 없도록 했다. 허가를 받은 경우도 법관이 착석 후 개정을 선언하기까지 2분 이내에 촬영할 수 있고 조명기기는 사용할 수 없다.
정선형 기자 linear@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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