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honey] 로컬문화 꽃피우는 나주
(나주=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전남 나주는 전주와 함께 '전라도'(全羅道)라는 지명의 어원이 된 호남의 대표적인 도시다.
경상도(慶尙道)가 경주와 상주의 앞 글자를 딴 것처럼 말이다. 어느새 서늘한 바람이 부는 늦가을이다. 옷깃을 여미며 KTX 나주역에 내렸다.
서둘러 구도심으로 향했다. 민간 중심의 로컬문화 사업들이 특히 빛을 발하고 있다는 소문이다.
나주에서는 '2024 나주로컬페스타'가 열리고 있었다.
축제 분위기의 나주…옛 영광 찾은 듯
먼저 나주향교 인근을 중심으로 한 변화가 눈에 들어왔다.
과거 어수선했던 거리는 깔끔하게 정비가 돼 있었고, 곳곳에는 로컬 페스타 행사를 알리는 현수막도 발견할 수 있었다.
뭔가 큰 변화가 이뤄지고 있는 느낌이다. 못 보던 카페도 눈에 여럿 들어왔고, 새로운 식당도 많이 들어섰다.
무엇보다 마음에 든 것은 새로운 식당과 카페 등이 우후죽순 들어서지 않고 구시가지의 모습과 어울리는 모습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주시는 원도심 활성화를 위해 도시재생뉴딜사업을 꾸준히 펼쳐오고 있다.
관 주도의 도시재생 사업이 민 주도의 로컬 문화와 잘 어우러진 모습이다.
2024 나주로컬페스타는 골목상권 활성화를 위해 전라남도와 나주시가 후원한 '앵커스토어' 사업으로, 복합문화공간 '3917마중'이 주최했다.
전라남도는 민간 주도 지역 혁신상권 조성을 목표로 '2024년 로컬 앵커스토어 육성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다.
행사장에서는 로컬 브루어리 '나주꺼야'의 팝업 행사와 지역 특산물인 배를 활용한 상품 전시와 '나주배 양갱' 만들기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도 열리고 있었다.
나주로컬페스타가 열리고 있는 곳은 나주향교 바로 옆의 3917마중이었다.
이곳은 한때 버려진 폐가와 폐정원을 리모델링해 멋진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한 곳이다.
모두 7채의 한옥과 4천 평의 정원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이번 축제는 한국관광공사 사업과도 관계가 있다. 한국관광공사는 매해 성장형 관광벤처사업을 선정한다.
행사장에는 QR코드가 곳곳에 비치돼 있었다. 360도 VR 영상이 나주의 과거와 현재를 비춰주고 있었다.
3917마중이 한국관광공사의 성장형 관광벤처사업으로 선정되면서 개발한 프로그램이다.
민간에서 운영하는 나주로컬페스타와는 별개로 나주시 주최의 '2024 나주영산강축제'도 열리고 있었다.
이 축제는 나주시가 국가 정원 승격을 목표로 조성한 '영산강 정원' 일대에서 개최됐다.
나주시는 곳곳에 물웅덩이만 있던 버려진 영산강 들섬 일대를 꾸며 축제장으로 변모시켜 놨다.
특히 이곳저곳 피어있는 가을꽃과 가을을 맞아 붉게 물든 댑싸리는 환상적인 느낌을 줬다.
인기 가수 송가인의 공연에는 11만 명이나 몰렸다는 후문이다.
지역을 이끄는 민간 업체들 그리고 3917 마중
3917마중은 '제1회 전라남도 예쁜 정원 콘테스트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은 곳이다.
정원 가운데는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근대 가옥이 있고 그 앞에는 수령 80년의 금목서 한 그루가 자리 잡고 있다.
금목서는 향수 샤넬 No. 5의 원료로 쓰인다는 나무다. 특히 이맘때 향기가 만 리까지 간다고 해 만리향이라 부르는 금목서 향기가 대문 바깥에서부터 날 정도다.
마중에서는 지역 특산품인 배를 활용한 배 양갱을 맛볼 수 있다.
또 배를 활용해 비누를 만들어보는 시간은 알차고 재미났다.
지역 크리에이터들이 만든 배꽃 모양 우산과 돗자리는 특색있었다.
오후에는 흑백요리사 안유성 명장의 로컬 음식 문화 관련 강의도 열렸다. 사인 요청이 쇄도했다.
각종 문화공연이 열리고 있는 사이 난파정으로 향했다.
난파정은 나주 근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난파(蘭坡) 정석진(鄭錫珍)의 큰아들이 살던 집터에 1915년 재건립한 집이다.
정석진은 1895년, 단발령에 반발해 의병을 일으켰지만, 관군에게 붙잡혀 참수됐다.
지역 호장이었던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동학혁명 당시인 1894년에는 나주로 내려온 동학군들을 서성문 일대에서 물리친 인물이기도 했다.
3917마중 남우진 대표의 권유로 인근의 한 나주곰탕 식당으로 향했다.
곰탕 맛도 좋았지만, 그 식당에서 운영하는 작은 박물관이 더 매력이 있었다.
박물관의 이름은 '째깐한 박물관'이다. 조그만이라는 의미를 띤 전라도 사투리다.
이곳은 나주 유일의 개인이 운영하는 민속 박물관이다.
초가집 형태의 작은 가옥 내부로 들어서니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근대 한국을 살아온 지역민들의 생활용품이 전시돼 있다.
박물관 바로 앞은 '사매기'라는 말의 어원이 된 사마교가 서 있다.
도보 2분 거리에 금성관이 있다. 저녁에는 다시 축제장인 마중으로 돌아갔다.
가을밤 정취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음주 프로그램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화에 월백하고'라는 이름의 이 프로그램에서는 로컬 브루어리 '나주꺼야'에서 생산한 맥주와 음식을 즐길 수 있다.
때마침 축제를 맞아 지역 청년들의 공연도 펼쳐졌다.
주민들은 도시재생의 핵심은 관의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민간의 소프트웨어가 어우러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이 주도가 된 도시 재생은 대부분 막대한 자금만 먹다 흐지부지되기 일상이라는 것이다.
나주는 그야말로 민간 주도의 로컬 문화가 꽃피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민간의 노력, 그리고 지역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었기에 가능한 변화였다.
전동인력거로 돌아보는 나주
오후에는 나주읍성 일대를 전동인력거로 둘러보았다.
나주향교, 금성관, 나주 정미소 등을 지나며 도시재생과 역사 보존이 조화를 이룬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특히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진행되는 주민들의 설명은 현지인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재미있는 내용의 이야기들이었다.
가장 인상적인 것 가운데 하나는 나주가 일제강점기 소 도축이 이뤄졌던 곳이었고, 이 때문에 나주곰탕이 유명해졌다는 얘기였다.
도축된 소를 위한 위령비는 세계에서 유일할 것이라는 설명도 있었다.
나주곰탕의 국물이 맑은 이유는, 전날 미리 해놓은 밥을 다음날 뜨거운 쇠고기 국물에 토렴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동인력거에 올라타면 나주의 모든 관광 요소를 한눈에 즐길 수 있다.
나주읍성 투어를 진행하는 전동 인력거는 금성관 주차장에서 매주 토·일요일, 공휴일에 운영된다.
이용요금은 카트 1대당 3만5천원으로 최대 4명이 탈 수 있고, 요금 중 5천원은 지역 상품권으로 되돌려준다.
첫 번째 내린 곳은 고래 등처럼 큰 기와 건물인 금성관이었다.
객사로 활용되던 이곳은 조선시대 객사 건축물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과거 나주의 위세를 한눈에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이어 도착한 곳은 붉은 벽돌로 지어진 나주정미소다.
일제강점기 쌀 수탈 현장이었던 이곳은 이제는 세련된 복합문화공간이 됐다.
내부는 다양한 전시품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장 및 카페로 꾸며져 있다.
전동인력거 여행을 마치고 영산강에 도착했다. 지난번에 타지 못했던 황포돛배를 체험해 보기 위해서다.
이곳은 전라도 해안에서 잡아 올린 홍어가 올라오던 뱃길이었다.
수심과 너비가 충분해 수상 운송의 핵심지였음을 보여준다.
주변에는 홍어를 테마로 한 음식점 여러 곳이 성업 중이다.
평일 그리 고객이 많지 않은 것 같아 걱정됐는데 대부분이 택배를 통해 전국적으로 팔려나간다고 한다.
나주역에 다시 도착해 보니 이곳은 앞으로 남도 여행의 출발지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주송정역, 무안국제공항, 목포 등 전남 서남부권 어느 곳에서도 가까웠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민간 차원의 도시 재생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모습이었다.
관에서 조금만 더 받쳐주면 더 큰 효과를 거둘 것 같다는 생각이다.
나주향교를 둘러싼 은행나무 고목들이 황금빛으로 물들 때 다시 이곳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다시 열차에 올랐다.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4년 11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polpo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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