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 러 파병, ‘강 건너 불’이 ‘발등의 불’이 되기까지
북한군 특수부대의 우크라이나 전쟁 참전 소식은 분명 놀라운 얘기다.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는 10월23일자 기사에서 “2년 반 동안 우크라이나전의 수렁에 빠진 러시아를 구하는 동시에 한반도의 군사 균형을 바꿔놓을 수도 있다”라고 지적했다. ‘수세대 만에 벌어진 유럽 최대 전쟁의 국제화’이며 ‘강 건너 불’ 같았던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등의 불’로 다가온 느낌이다.
그러나 아직은 많은 것이 미지수다. 북한군 참전이 전쟁의 양상에 어떻게 작용하며 우리 안보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든 게 안갯속이다. 따라서 속단과 경거망동은 금물이다. 오히려 그동안의 경과를 살펴보고 놓친 부분은 없는지 세세하게 되짚어봐야 할 시점이다.
시작은 평양에서 연 6·19 북·러 정상회담이었다. 북·러 양측이 이 과정에서 보여준 모습은 적어도 ‘죽고 못 사는’ 동맹의 모습은 아니었다. 서로 의심하며 꺼림칙해하면서도 필요 때문에 손을 잡는다는 느낌이 강했다. 추후 확인된바, 북한이 가장 골몰한 것은 대규모 노동자 파견을 통한 외화벌이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러시아는 북한을 전쟁에 직접 끌어들일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다만 올해 미국 대선에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가까운 트럼프 후보의 당선에 북한이 모종의 역할을 해주길 기대했다. 그렇게 출발한 양국 관계가 어떻게 북한군의 우크라이나 전쟁 파병으로 급전환한 것일까. 시계를 거꾸로 돌려, 그간의 맥락을 되짚어봤다.
북한 노동자 15만명 러시아 파견 계획
북·러 정상회담 사전협의 과정에서 북한의 무리한 요구가 러시아를 곤혹스럽게 했다.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중국·현대아시아연구소의 콘스탄틴 아스몰로프 한국학센터 선임연구원이 4월23일(현지 시각) 러시아 싱크탱크 국제문제위원회(RIAC)에 기고한 글에서 그러한 정황이 드러났다. 그는 ‘러시아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관계의 현황과 전망’이란 글에서 뜬금없이 “(북·러 협의 과정에서) 러시아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서 탈퇴하는 상황을 예상할 수 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결의안을 위반한다면 새로운 압박의 명분이 될 것이 분명하다”라고 우려했다.
당시에는 그가 왜 이런 얘기를 하는지 일반론적으로만 이해할 수 있을 뿐이었다. 나중에 구체적인 정황이 드러났다. 북한이 대규모 노무부대 파견을 받아줄 것을 러시아 측에 요구한 것이다. 유엔 회원국이 북한 노동자를 받아들이는 것은 2017년 12월의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2397호 위반이다. 이 때문에 아스몰로프 연구원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서 탈퇴하는 상황’이라거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결의안을 위반’하는 것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던 것이다.
진통 끝에 양측은 15만명의 북한 노동자를 5만명씩 세 차례에 걸쳐 파견하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파견 지역은 크림반도(크름반도)가 유력했다. 북한 노동자들은 크림반도의 재건에 투입되거나 포도농장에서 일하기, 그리고 밤에는 실전 경험을 쌓기 위한 훈련 등을 하며 1인당 월 1000달러(약 137만원)에 해당하는 액수를 루블로 받기로 돼 있었다.
왜 15만명이었을까. 아스몰로프 연구원 기고문이 공표된 4월23일에서 열흘 앞선 4월13일 자오러지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장이 평양을 방문했다. 북·중 양국 사이에는 지난해 4~5월께부터 코로나19 이전 중국에 파견된 약 10만명의 북한 노동자 송환 문제가 쟁점이 돼왔다. 중국은 북한 노동자가 중국에 있다는 자체가 안보리 결의 위반이니 모두 송환하고 차후 빈자리를 메우자는 입장이었고, 북한은 순차적으로 빈자리를 메우면서 송환하자는 입장이었다. 10만명의 인건비 수입이 달린 일이라 북한도 물러설 수 없었다(〈시사IN〉 제860호 ‘기시다가 말한 ‘대담한 현상 변경’은 평양 연락사무소?’ 기사 참조).
북한은 자오러지의 방북에 큰 기대를 가졌다. 그러나 정작 그는 북한이 절대 들어줄 수 없는 얘기를 조건으로 걸었다. 러시아와의 밀착 관계를 완화하라는 것이었다. 북한으로서는 10만명의 인건비를 조달할 다른 후보지를 찾아야 했다. 그때 마침 러시아와 정상회담 사전협의가 진행됐다. 노동자 15만명 파견 얘기가 나오게 된 배경이다.
러시아 역시 이 사안이 달가울 리 없었다. 안보리 결의 위반이 명백한 상황에서 북한 노동자 파견 요청을 받아들일 명분도 마땅치 않았다. 이 사안이 그 뒤 크게 불거지지 않은 것은 북한 노동자들이 신분을 위장해 움직였거나 러시아 측이 합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면전에서 거절할 수는 없었다. 러시아도 북한이 부담스러워할 요구사항이 있었기 때문이다. 11월 미국 대선이 임박한 시점에 푸틴 대통령에게 우호적인 트럼프 후보 당선을 위해 ‘10월 서프라이즈’에 나서달라는 것이었다(〈시사IN〉 제876호 ‘미국 대선 겨냥한 북·러의 동반 질주’ 기사 참조).
신의주 대홍수와 기시다 총리 방북 계획
북한도 미국 대선을 코앞에 둔 시기에 또다시 동북아의 ‘빌런’ 역할을 하는 게 기분 좋을 리는 없었을 것이다. 2020년 미국 대선 직전에 중국 역시 비슷한 주문을 했으나 무시하고 넘어갔다. 이번에는 사정이 달랐다. 7월25일부터 29일까지 신의주를 포함한 압록강 중류지역에 몰아닥친 대홍수 피해 때문이었다. 북한 당국은 당시 신의주 피해 상황만 발표했지만 압록강 중류 자강도와 양강도 피해가 훨씬 컸다고 한다.
자강도 군수공장들이 쑥대밭이 된 것도 큰 문제였다. 우크라이나 전쟁 기간 북한이 러시아에 약 180만 발 포탄을 넘기고 10억 달러(약 1조3750억원)를 벌어들였다고 한다. 러시아로 넘어간 포탄 대부분이 자강도의 군수공장에서 생산된 것들이다. 그런데 홍수 피해로 생산 차질이 벌어졌다. 포탄 수출을 대체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수해 피해 복구와 관련해 애초에 북한이 내심 도움을 기대한 쪽은 일본이었다. 지난 3월26일 김여정 부부장이 느닷없이 “일본 측과의 그 어떤 접촉도 교섭도 외면하고 거부할 것”이라며 접촉 중단 선언을 한 것은 북한이 절실히 원한 의료진단 설비 지원에 일본이 난색을 표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중국으로 기울었던 것인데 자오러지 방북으로 서로 입장 차이만 확인했다.
이미 4월 말부터 북·중 관계가 험악해졌다는 얘기가 돌기 시작했다. 중국이 북한의 밀무역을 엄격히 단속한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그러자 5월 중순 몽골에서 북·일 접촉이 재개됐다는 소식과 함께 북측의 ‘특별한 각오’에 대한 얘기가 들려왔다. 북한이 중국과 ‘헤어질 결심’을 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북·일 관계를 급진전시키려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통해 ‘중국의 뺨을 후려치길 원한다’는 것이다. 그러던 중에 7월 말 홍수 피해가 발생했다.
홍수 피해를 인도적으로 지원하는 일은 첨단 의료진단 장비 제공보다는 훨씬 쉬운 문제였다. 5월 중순 시작된 북·일 간 막후 접촉이 8월 초까지 계속됐다. 일본에 약 일주일 결단의 시간이 주어졌다. 일본이 인도적 지원 의사를 밝히는 것을 신호탄으로 그동안 합을 맞춰온 프로그램들이 수면 위로 떠오를 예정이었다. 북한이 납치 피해자 조사에 응하는 대신 일본은 대북 독자 제재를 풀어준다는 2014년 스톡홀름 합의 시즌 2가 시작될 예정이었다.
플러스 알파로 중요한 이벤트도 기획됐다. 기시다 총리의 평양 방문과 납치 피해 조사를 명분으로 한 일본 연락사무소의 평양 진출 선언이다. 기시다 총리는 이를 발판으로 9월의 자민당 총재 선거에 재도전해 총리직을 이어갈 심산이었을 것이다. 실제 기시다 총리는 8월9일부터 12일까지 나흘간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을 거쳐 몽골을 방문할 계획이었다. 북·일 접촉의 무대 몽골에서 북한의 홍수 피해를 위로하며 인도적 지원 의사를 밝히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그림이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천재지변이 발목을 붙잡았다. 중앙아시아 순방 하루 전인 8월8일 일본 남동부 미야자키현에서 규모 7.1 강진이 발생한 것이다. 일본 기상청은 그날 오후 난카이 지진 임시 정보에 따라 거대지진 주의보를 발표했다. 대지진 예고까지 떨어진 마당에 총리가 자리를 비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순방 계획은 취소됐다. 결국 8월14일 그는 재선을 포기하고 총리직에서 사퇴하겠다고 발표함으로써 역사의 무대에서 내려왔다.
‘10월 서프라이즈’의 예고편
8월부터 9월 초까지 북한은 어딘지 이상했다. 8월19일부터 29일 사이 남한의 ‘을지 자유의 방패(UFS)’ 훈련이 있었음에도 조용히 넘어갔다. 신의주 대홍수 수습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왔지만, 북·일 관계 이벤트에 몰두하느라 미처 대체 프로그램을 마련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북측의 움직임이 재개된 것은 9월4일 밤이다. 이날 밤부터 9월8일까지 닷새간 6차례에 걸쳐 오물 풍선을 살포했다. 그리고 9월13일 김정은 위원장이 고농축 우라늄 시설을 방문했다. ‘10월 서프라이즈’의 예고편이 뜬 것이다. 바로 7차 핵실험이다.
김 위원장이 이곳을 찾아 “전술핵무기 제작에 필요한 핵물질 생산에서 보다 높은 목표를 내세우고 총력을 집중하라”고 한 얘기가 바로 그 뜻이다. 전술핵 무기 제작을 위해서는 핵물질뿐 아니라 핵탄두 소형화가 필수적이다. 현재 탄두 중량 600㎏대인 소형화 기술을 200㎏대까지 낮추려면 7차 핵실험이 필요하다.
9월15일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제14기 제11차 회의를 10월7일 평양에서 소집하기로 결정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해 연말과 올해 1월 남북 간 동족관계 부정과 적대국가 규정, 헌법의 통일 관련 문구 삭제와 영토 규정 신설 등을 지시한 이래 이를 이행하기 위한 최고인민회의 개최 시기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특히 미국 대선 전인 10월경 최고인민회의를 개최해 서해상에 새로운 영해선을 선언하고 이를 빌미로 서해 북방한계선(NLL) 근처에서 국지전을 시도할 가능성이 거론돼왔다. 이로써 미국 대선 전 ‘10월 서프라이즈’의 윤곽이 드러난 것이다.
물론 그 반대의 정황 또한 없지 않았다. 8월27~29일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중국을 방문했다. 북한이 중대한 도발 징후를 보일 때마다 주로 제3국에서 양제츠 외교담당 정치국원이나 왕이 외교부장을 만나 이를 봉쇄해온 그가 이번에 직접 베이징으로 날아온 것이다. 이틀간 6차례 11시간 회의 중 북한의 7차 핵실험 저지를 당부하는 내용이 없었다면 이상한 일이다. 중국 역시 7차 핵실험이 레드라인이라는 점을 강조해왔으므로 북한이 이를 넘어서는 것은 쉽지 않다. 반면 미국 대선 결과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고 미·중 관계가 악화되면 중국이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면서 거꾸로 이를 주문할 수 있다.
동족관계와 통일을 부정하고 남북을 두 개의 적대국가 관계로 규정한 김정은 위원장 발언도 내외의 반발에 부딪혀 희석돼왔다. 무엇보다 통일을 부정하는 것은 선대의 유훈을 부정하는 것으로 김정은 권력의 정당성을 위협하는 행위라는 점이 분명해졌다. 그래서인지 북한을 방문한 조총련계 인사들에게 북측이 “그것은 어디까지나 북남 관계에 국한된 얘기일 뿐 해외 동포들까지 적용되는 건 아니다. 그러니 확대해석 하지 말라”는 투로 설명을 한다고 한다. 무엇보다 김 위원장 지시대로라면 벌써 사라졌어야 할 조평통과 통전부 등 통일 관련 조직들이 간판만 떼어놨을 뿐 방도 안 빼고 인원과 조직 역시 그대로라는 것이 확인됐다. 김 위원장의 과격한 발언들이 현재의 남한 정부에 대한 감정 배설이었다는 쪽으로 정리되는 추세다.
헌법 개정을 요란하게 떠들어 혼란을 조성하기보다는 ‘남북의 국경에 영구 차단막을 설치해 남북을 두 국가로 떼어놓고, 핵 위협으로 북한의 안전을 담보하며 앞으로 30여 년간 경제를 발전시켜 성공한 국가로 북한이 거듭난 뒤 그때 가서 통일 방안을 찾겠다’는 소위 ‘김정은 혁명사상’의 요점을 조용히 현실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10월15일 정오 군사분계선 북쪽 경의선 연결도로와 철도선로 일부 구간을 폭파한 것이 바로 영구 차단막 설치의 일환인 셈이다.
다만 북한은 미국 대선을 닷새 앞둔 10월31일 동해상으로 고체연료 추진체계를 적용한 신형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함으로서 ‘10월 서프라이즈’의 일단을 보여줬다. 현재로서는 7차 핵실험보다 한 급 낮춘 시도를 한 것으로 보이지만 남은 기간 핵실험까지 감행한다면 중국과는 아예 척질 각오를 하고 트럼프에게 올인하겠다는 뜻이 될 것이다.
쇼이구의 방북과 쿠르스크 전투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서기의 9월13일 방북이 없었다면 북한은 난처한 상황에 놓였을 것이다. 일본의 인도적 지원이 무산된 이후 기댈 곳은 이제 러시아밖에 없었다. 따라서 푸틴의 주문대로 일단은 7차 핵실험과 국지 분쟁을 암시하는 헌법 수정의 예고편을 띄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때 쇼이구가 등장해 ‘최대 고객의 요구사항’이 바뀌었음을 통보한 것이다. 북·러 관계에서 쇼이구라는 인물이 등장하면 뭔가 큰일이 벌어졌다. 2023년 9월의 보스토치니 북·러 정상회담을 예고한 것도 그해 7월 그의 방북이었다. 이번에도 ‘10월 서프라이즈’가 아닌 파병을 요청하는 푸틴의 메시지를 직접 들고 왔을 것이다.
푸틴은 왜 방침을 바꿨을까. 그만큼 절박한 사유가 있어서다. 바로 쿠르스크 전투다. 쿠르스크 전투와 관련해 우크라이나 측은 8월6일 기습 공격이 있기 전까지 미국에조차도 알리지 않고 극비리에 진행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얘기다. 미국의 위성 정보에 광범위하게 의존해온 우크라이나 군이 미국에 알리지도 않고 단독 작전을 감행했다는 것은 믿기 힘들다. 오히려 그 반대일 가능성이 높다.
쿠르스크 전투는 멀게는 지난해 연말에서 올해 초 이뤄진 미국의 우크라이나 전쟁 전략 수정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미국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지난해 12월27일 기사에서 미국 정부의 초점이 ‘완전한 승리’라는 우크라이나의 목표를 지지하는 것에서 ‘종전 협상 시 입지 개선’으로 바뀌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지난해 우크라이나 군의 대대적인 반격 작전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러시아 군을 완전히 몰아내는 승리 전략에서 방향 전환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협상 전략은 자칫하면 푸틴이 차지한 우크라이나 영토를 인정하는 것으로 귀결할 수 있다. 침공 이전 러시아가 차지했던 우크라이나 영토는 크림반도와 도네츠크주 일부, 루한스크주 등 4만2000㎢에 불과했다. 2022년 3월 전면 침공 이후에는 한때 27%에 달하는 11만9000㎢까지 늘어나기도 했다. 현재는 20% 정도로 알려지고 있다. 푸틴은 이것만 보장되면 협상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고 트럼프 역시 대통령이 되면 이 선에서 끝내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쁜 선례를 남기게 된다는 점에서 바이든 정부로서는 용납할 수 없었다. 러시아가 이란을 배후에서 지원하고 조종하는 것에 대해서도 경고할 필요가 있었다. 트럼프가 집권해 협상을 시작하더라도 우크라이나가 잃어버린 땅을 되찾으려면 우크라이나 역시 러시아 땅을 그만큼 갖고 있어야 한다. 쿠르스크 전투는 결국 미국 대선 이후 협상을 겨냥한 러시아 땅 ‘알 박기’인 셈이다.
전황이 엎치락뒤치락하지만 현재까지 평가는 알 박기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젤렌스키는 이 땅을 크림반도와 교환하기를 원한다. 돈바스 지역의 도네츠크나 루한스크 등 러시아 주민 비율이 높고 이미 인민공화국이 들어선 곳까지 우크라이나 국기로 바꿔달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쿠르스크 전투가 한국전쟁 당시 연합군 측의 인천상륙작전을 벤치마킹했다는 점은 국제적으로도 알려진 듯하다. 인천상륙작전 당시 북한군은 낙동강 전투에 집결돼 있었다. 우크라이나 전선도 동남부의 돈바스와 남부의 크림 전선에 고착돼 있다. 그러다 보니 모스크바와 직결되는 동부의 쿠르스크 대평원이 비어 있었다. 8월6일의 기습공격 이후 우크라이나 군이 무방비 상태에서 질주해 8월13일에는 1000㎢까지 장악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모스크바까지 하루 거리라는 얘기도 나왔다.
당시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국과 서방이 장거리 미사일을 지원하면 우크라이나 특수부대의 희생이 따르더라도 푸틴을 제거하겠다며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이나 서방의 생각은 다르다. 모스크바 권력 내부에서 푸틴은 강경파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핵무기 사용을 주장하는 강경파들을 통제하고 추스르는 역할을 맡고 있다. 따라서 대화 상대로 푸틴이 있는 게 낫다고 판단한다.
쇼이구가 평양을 찾은 9월13일은 쿠르스크와 돈바스의 양쪽 전선이 교착 국면에 빠져 있을 때다. 8월6일부터 시작한 우크라이나 군의 쿠르스크 진격은 8월22일께부터 둔화되었다. 9월3일부터는 오히려 러시아 군이 도네츠크 방면의 우크라이나 군 요충지인 포크로우스키를 역공해서 전선을 흔들다가 9월10일께부터 양쪽 전선이 교착 국면에 빠져들었다. 9월15일 올렉산드르 시르스키 우크라이나 군 총사령관은 CNN 인터뷰에서 동부전선의 러시아 군을 쿠르스크 쪽으로 분산 배치하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러시아로서도 미국 대선 이후 협상 국면을 생각하면 하루가 급한 상황이었다. 교착 국면을 타개할 병력 투입이 필요했다. 10월27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 군사분석가 울라디슬라우 셀레즈뇨우는 한 인터넷 방송에 출연해 “쿠르스크 지역에서 러시아 군이 우크라이나 군을 밀어내려면 5만명 이상의 병력이 필요할 것이라고들 생각했지만, 초기에 (러시아는) 4만명 정도만 투입했고 반격이 주춤했다. 북한군 1만2000명을 추가하면 쿠르스크의 역학관계가 크게 바뀔 수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 러시아에 파견된 북한군의 수는 1만2000명 선과 크게 다르지 않다. 푸틴에게는 그 정도의 병력조차 동원할 여력이 없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왜 그런가. 푸틴에게 전쟁은 장기 집권에 따른 지지율 하락을 끌어올리기 위한 앰플주사 같은 것이다. 크림전쟁 전인 2014년 3월 그의 지지율은 61%였다. 전쟁 후인 2015년 6월에는 89%까지 치솟았다. 코로나19 직후인 2020년 4월 59%, 우크라이나 전쟁 직전인 2022년 1월 69%대의 상대적으로 저조하던 지지율이 특별 군사작전 선언 직후인 2022년 4월에는 82%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전쟁 당사자가 여론 주도층인 대도시 거주자들 본인의 일이 될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전쟁 초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2022년 9월21일 30만명 동원령을 내리자 전국 각지에서 반대 데모가 빗발쳤다. 지지율에 민감한 푸틴으로서는 여론 동원력이 큰 대도시 거주자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전쟁의 주력군은 와그너그룹 같은 범죄자들이나 외국 용병, 지방 거주 가난한 사람들과 소수민족이 될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 군 누적 사상자 수가 61만5000명(전사 11만5000명, 부상 50만명)에 이르는 지금은 그것도 한계점에 도달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9월13일 쇼이구가 평양의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한국과 척지길 원치 않는 푸틴
북한군 파견 소식이 전해진 후 가장 첨예한 화두는 그래서 북한이 얻는 대가가 뭐냐는 것이다. 또 러시아는 과연 어디까지 줄 생각이며, 한국 안보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다. 북한의 1순위는 당연히 돈이다.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북한은 현재 심한 자금 압박을 받고 있다. 그래서 ‘용병’이란 소리를 감수하면서까지 자신들의 정예부대를 전쟁터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 파병 북한군이 1인당 받는 액수와 관련해 국정원은 월 2000달러(약 275만원), 미국 측은 월 1500달러(약 206만원)로 추산한다. 이 중 90%는 국가가 떼어가고 10% 정도만 개인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파견 병력의 인건비를 포함해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받는 돈은 1년에 6억 달러(약 830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군사기술 제공도 대가 중 하나다.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받고자 하는 군사기술 1순위는 군사 정찰위성 관련 기술이다. 특히 이번에 국정원이 북한군 파병을 식별할 때 사용한 것과 같은, 합성 개구 레이더(Synthetic Aperture Radar·SAR, 인공위성에 탑재해 이동하면서 목표물에 부딪혀 반사되는 신호를 분석해 합성한 뒤 영상으로 보여주는 장치) 기술을 북측도 원한다고 알려졌다.
그런데 북·러 간에 미묘한 입장 차이가 있다고 한다. 러시아는 이미 만들어진 위성을 주겠다고 하는데 북한은 굳이 기술로 달라고 한다는 것이다. 러시아가 일부러 오작동으로 골탕을 먹일 수 있다고 의심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러시아에 요청하는 두 번째 기술은 이미 많이 언급된 것처럼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의 대기권 재진입 기술이다. 세 번째는 러시아가 핵잠수함을 줄 가능성은 높지 않으니 임대라도 해달라는 것이다.
러시아가 어디까지 합의를 해줬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러시아 측이 ‘한국에 피해가 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지속적으로 한 얘기들이 계속 지켜지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사실 이상한 일들이 있었다. 러시아가 북한에 지원한 미국 본토 타격용 고체연료 ICBM인 화성18호는 2022년 12월 엔진시험 후 2023년 단 두 번 만의 시험발사로 완벽하게 성공해 미국 전문가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그런데 유독 한국을 타격 대상으로 하는 무기 지원에서는 사고가 많이 터졌다.
지난 5월27일의 군사 정찰위성 발사의 경우, 북한이 익숙한 RD-250 엔진을 사용한 1단 추진체가 군사용이라는 이유로 북한이 익숙하지 않은 민간용 엔진을 사용하게 하여 조작 미숙으로 공중에서 폭발했다. 지난 7월1일 평양 인근에서 발사한 사거리 120㎞의 단거리미사일은 러시아가 제공한 마하5짜리 초음속미사일의 초기 단계 모델이었는데 이 또한 이상 비행 후 공중에서 폭발했다. 이쯤 되면 무기보다 기술로 달라는 북한 입장도 이해가 가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필생의 꿈인 블라디보스토크 일대 동방 개발의 최적 파트너는 한국이라는 생각을 그가 여전히 갖고 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북한의 도움이 필요해서 당장 손을 잡지만 한국과 척을 지지 않도록 미묘한 균형을 취해왔다는 것이다. 과연 앞으로도 계속 그럴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우리 안보가 걸려 있는 이 엄중한 상황에서 참고해야 할 점임은 분명하다.
남문희 편집위원 (<코리아 체스판> 저자)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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