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고비 상륙, 누구나 날씬해지는 세상이 열린다?
만약 당신이 156㎝에 58㎏(BMI 지수 23.83)인 여성이라고 해보자. 17개월(68주) 동안 850만원(4주에 약 50만원)을 들여 비만치료제를 사용해서 몸무게의 15%인 8.7㎏을 뺄 수 있다면 이 약은 ‘기적의 약’이라 불릴 만할까? 다만 구토·메스꺼움·탈모, 최악의 경우 췌장염에 걸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한 가지 더, 약 복용을 중단하고 1년이 지난 뒤에도 감량한 몸무게를 유지한 사람은 3명 중 1명뿐이다.
적어도 김미현씨(가명)는 이 다이어트 약을 자신의 ‘꿈을 이루어줄 약’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아이를 낳고 40대에 들어서면서 식단조절과 운동을 병행해도 예전만큼 살이 빠지지 않았다. “제일 몸무게가 적게 나갔을 땐 48㎏이었거든요. 그런데 임신하고, 출산하고, 나이 드니까 한번 늘어난 몸무게가 줄어들질 않더라고요. 한창 몸무게가 많이 나갔을 때 10㎏을 빼본 적도 있어서 다이어트에는 나름 자신이 있었는데도요.” 현재 김씨는 10월15일 한국에 상륙한 덴마크 기업 ‘노보노디스크’의 주사형 비만치료제 ‘위고비’를 사용 중이다.
‘일론 머스크의 다이어트 약’으로도 알려진 위고비는 쉽게 접할 수 있는 먹는 다이어트약과 달리 스스로 복부나 허벅지, 팔 등에 주사를 놓는 주사형 비만치료제다. 노보노디스크의 전작 ‘삭센다’와 같은 글루카곤 유사 펩티드-1(GLP-1) 계열의 약물이다. GLP-1은 음식을 섭취하면 체내에서 발생하는 호르몬인데, 위고비는 이 호르몬을 모방한 GLP-1 유사체로 투약할 경우 음식을 먹지 않아도 포만감을 느끼도록 한다. 노보노디스크는 당뇨병 치료를 위해 GLP-1 계열 약물을 개발했지만 해당 물질이 혈당수치를 조절할 뿐만 아니라 체중 감량에도 도움을 준다는 것을 알게 됐고 2021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비만치료제로 승인받아 시장에 본격적으로 출시하게 됐다.
2018년 한국에서 유통된 삭센다는 국내 출시 4개월 만에 품절 사태를 빚을 만큼 돌풍을 일으켰다. 위고비는 삭센다보다 감량 효과가 높을 뿐만 아니라 주사를 놓는 횟수를 줄여 소비자의 접근성을 높였다. 삭센다는 하루에 한 번씩 주사를 놓아야 했던 반면 위고비는 일주일에 한 번만 주사를 맞으면 된다. 1펜(주사제의 단위)으로 4주 동안 사용할 수 있는데 펜당 가격은 40만원 후반부터 50만원 초반 수준이다. 국내 약국 공급가(37만원)가 공개돼 약국 간 ‘난매(저가 경쟁)’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위고비는 기존 다이어트 약과 다른 존재감을 보이는 ‘게임체인저’로 평가받는다. 우선 위고비는 연간 약 1조3500억원(약 10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하는 ‘블록버스터 신약’이다. 위고비가 견인한 노보노디스크의 성장세는 가히 기록적 수준이다. 2022년 위고비가 시장에 등장한 이후, 2023년 매출이 네 배 이상 증가했다. 지난해 노보노디스크의 기업가치는 약 4300억 달러(약 593조원)로 덴마크 주식시장 전체의 시가총액을 넘어섰을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가장 비싼 기업이었던 프랑스의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약 3800억 달러)의 기업가치를 앞질렀다.
심지어 위고비의 판매량이 급증하면서 덴마크 화폐 크로네의 통화가치가 상승하자 중앙은행이 금리를 조정해 크로네의 가치를 유로와 맞추는 등 통화정책에 변수가 커졌다. ‘국민기업’이 된 위고비가 경제성장을 이끌고 있지만 덴마크로서는 악재도 있다. 화폐가치가 커져 다른 산업 부문에 해외 투자가 줄어들면서 덴마크 상품의 글로벌 경쟁력에 타격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다. ‘노키아 쇼크’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과거 휴대전화 시장을 장악했던 노키아가 애플의 등장 이후 쇠락하게 되면서 북유럽은 ‘잃어버린 10년’을 겪었다. 특정 기업에 대한 국가의 경제 의존도가 커질 경우 기업의 리스크가 곧 국가 전체의 경제적 타격이 될 수 있다는 경고다.
하지만 현재 비만 치료제 시장의 성장세를 고려한 글로벌 마켓은 노보노디스크가 ‘날개 없는 추락’을 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기우에 불과하다고 판단한다. 세계보건기구(WHO) 발표에 따르면 2022년 전 세계 비만 인구는 10억명을 넘어섰다. 미국에서만 성인 약 70%가 과체중이다. WHO는 비만을 질병으로 규정했을 뿐만 아니라 현재 비만치료제를 필수의약품에 추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정부가 비만이라는 질병을 관리하기 위해 연구를 지원하고 프로그램에 투자하며 ‘글로벌 액션플랜’을 만들어야 한다는 신호를 준 것이다. 제약·바이오 업계에는 환영할 만한 소식이었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비만치료제가 고혈압 치료제에 버금가는 ‘황금 땅’이라고 정의했다. 시장 규모가 연평균 50%씩 성장해 2030년 무렵에는 약 1000억 달러(약138조원)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 ‘황금 땅’에 깃발을 꽂은 양대 산맥이 노보노디스크, 그리고 주사형 비만치료제 ‘마운자로’를 판매하는 미국 기업 ‘일라이릴리’다. 마운자로는 위고비가 한국 시장에 진입한 이후, 한국 진출을 서두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골드만삭스는 노보노디스크와 일라이릴리 두 기업이 2030년 비만치료제 시장의 약 85%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제 막 한국 시장을 두드린 위고비가 벌써부터 품귀 현상을 빚으며 주목받는 까닭은 뭘까? 소비자에게는 ‘전작의 성공’이 후속작에 대한 거부감을 줄인 것으로 보인다. 위고비에 앞서 개발된 노보노디스크의 삭센다는 2018년 출시 당시 체중의 9%(임상시험 결과 56주 동안 투여한 경우)를 감량해주는 ‘강남주사’로 유명해졌고,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삭센다를 저가에 판매하는 약국 성지 리스트가 떠돌 만큼 인기를 모았다. 사람들이 열광한 가장 큰 이유는 기존 다이어트 약물과 기전이 다르며 임상시험을 통해 효과와 안전성을 검증했다는 믿음에 있었다.
“거짓말하니 바로 처방전 내주더라”
다이어트 약물의 역사는 짧지 않다. 마약류 약물인 암페타민 계열 다이어트약이 유행한 적도 있다. 하지만 지나친 각성효과를 비롯한 심각한 부작용이 밝혀지면서 결국 시장에서 퇴출됐다. 이후 지방 흡수를 억제하는 제니칼, 펜타민 계열의 아디펙스, 일명 ‘나비약’으로 불리던 디에타민 등 중추신경계를 자극하는 경구용 식욕억제제가 끊임없이 등장했지만 때로는 사회문제를 일으키며 논란의 중심 속에 섰다. 다이어트 약물의 역사는 곧 실패의 연대기였다.
하지만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는 GLP-1 계열의 비만치료제를 2023년 ‘올해의 혁신’으로 선정하며 한 문장으로 그 잠재력을 설명했다. “비만이 적수를 제대로 만났다.” 특히 GLP-1 작용제는 체중 감량뿐만 아니라 약물중독,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치료에도 효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돼 임상시험이 진행 중이다. 다만 이러한 긍정적 전망에도 불구하고 〈사이언스〉는 이 약물이 만병통치약으로 취급되는 것을 경계한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부작용과 장기간 복용해야 하는 부담, 무엇보다 비만이나 과체중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약물이 처방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런 우려는 이미 현실로 나타났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위고비는 체질량지수(BMI·체중을 키의 제곱으로 나눈 값) 30 이상인 성인 비만 환자나 BMI 27 이상 30 미만이면서 고혈압 등 한 개 이상의 체중 관련 질환이 있는 과체중 성인이 처방 대상이다. 의사와 상담 후 반드시 처방전을 발급받아야 약국에서 구입할 수 있다. 문제는 이렇게 처방 대상이 제한돼 있어도 실제로는 누구나 처방전을 구하기가 너무 쉽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지만 위고비가 빠른 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문제 때문이기도 하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위고비 사용 후기에는 ‘어디서 처방전을 구했느냐’는 댓글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이때 ‘비대면 처방 앱을 이용하면 된다’는 노하우도 자연스럽게 전수된다. 비대면 진료 앱을 이용해 처방전을 발급받는 방법은 간단하다. 의사를 선택해 진료 예약시간을 정하면 그 시간에 의사와 통화를 하게 된다. 본인의 증상을 말하면 처방전이 발급된다. 위고비 처방전을 발급받는 방법도 같다. ‘의사가 전화로 키와 몸무게를 묻기에 거짓말로 대답했는데 곧바로 처방전을 발급해줬다.’ 위고비 관련 게시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내용이다.
10월2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비대면 진료에 따른 위고비 오남용 문제가 지적됐다. 온라인 불법판매 광고가 기승인 데다 정상체중 혹은 저체중인데도 비대면 진료로 위고비를 구매하는 남용 사례가 빈번하다는 지적이었다. 10월27일 더불어민주당 전진숙 의원실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삭센다의 DUR(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 점검 현황’ 자료를 통해서 위고비 오남용 처방 또한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비대면 진료로 삭센다를 처방하고 DUR 점검을 거친 진료 건수는 2023년 12월 183건에서 2024년 9월 3347건으로 18배 증가했다. 대면 진료로 삭센다 처방 후 DUR 점검을 한 건수는 같은 기간에 1.1배 증가하는 데 그쳤다. 특히 2024년 2월, 의·정 갈등에 의해 의료 공백 해소 차원에서 초진 환자라도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게 한 이후, 처방 건수는 꾸준한 증가세를 보였다.
위고비는 엄연히 부작용이 존재한다. 메스꺼움이나 구토 같은 위장 질환을 포함해 설사, 변비, 탈모뿐만 아니라 드물지만 급성췌장염, 저혈당, 장폐색, 당뇨병성 망막증 같은 합병증도 발생할 수 있다. 임상시험 결과 갑상샘암 과거력 혹은 가족력이 있는 자, 위장관운동 장애가 심한 자, 신장 이상자 등은 위고비 사용이 금지된다. 하지만 비대면 진료를 통해 처방을 받을 경우 이 같은 위험성에 대한 주의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
비대면 진료가 부추긴 위고비 품귀 현상
서울 영등포구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정현수씨(가명)는 바로 그런 이유로 비대면 처방전으로는 주사형 비만치료제를 판매하지 않는다. 그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지금 시행되는 초진 환자에 대한 비대면 진료는 혈압을 재지 않고 혈압약을 처방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했다. “건강검진을 해보면 어떤 수치는 정상 범위에 있기도 하고, 어떤 수치는 질병의 경계선에 있기도 한다. 경계선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약이 아니라 생활습관을 교정하라는 처방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다. 체중 감량도 마찬가지다. 비만 혹은 과체중인 경우 치료적 차원에서 약물이 필요할 수 있지만 점점 어리고, 점점 마른 사람들이 처방을 요구하는 경우가 흔해지고 있다. 비대면 진료는 이런 위험한 의료행위가 수면 위에서 일어날 수 있게 방조한다. 그런 가운데 특히 주사형 다이어트 치료제는 명백한 의약품임에도, 마치 식품이나 영양제처럼 오남용 경계가 낮아지고 있다.”
날씬해지고 예뻐지고 싶은 사람들에게 욕망을 스스로 통제하라는 도덕적 지탄은 힘이 없다. 10월23일 보건복지위 국정감사에서 개혁신당 이주영 의원은 (약물에 대한) 부적절한 접근 자체를 제도적으로 어렵게 만들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며 “사후피임약은 논의를 거쳐 비대면 진료에서 빠졌다. 비대면 진료 항목 추가에 예민한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비만과 탈모 치료제를 비대면 진료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김다은 기자 midnightblue@sisain.co.kr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