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정말 하고 싶었던 말
마침내 접견실 문이 열렸다. 호박색 넥타이에 감색 정장 차림의 대통령이 특유의 자신감 넘치는 걸음걸이로 성큼성큼 들어섰다. 미국 뉴욕과 영국 런던에서 서울로 날아든 취재진에게 격려의 악수를 건너는 대통령의 입가에는 잔잔한 웃음이 번졌다.
조명에 불이 들어왔다. 날카로운 질문들이 귓가에 꽂히고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미국 대선, 북한의 도발 같은 외교 안보 현안으로 시작해 4대 개혁 등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 경제 현안, 저출생 문제 등으로 주제가 넘나 들었지만 대통령의 대답은 흔들리지 않았다.
대통령 앞에는 메모지 한 장 놓여있지 않았다. 생각의 흐름에는 거침이 없었고, 인터뷰 내내 취재진의 끄덕임이 자주 느껴졌다. 70분의 시간은 그렇게 시나브로 흘렀다.
미국의 대표 시사 주간지 뉴스위크와의 단독 인터뷰는 그렇게 진행됐다. 당장이라도 전쟁을 일으키겠다는 듯 으르렁거리는 북한의 도발 위협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4대 개혁을 완수하겠다는 대통령의 확신에 찬 모습이 취재진에게는 더 크게 다가왔던 것 같다. 뉴스위크가 커버스토리 제목을 “윤 대통령에게 가장 큰 문제는 북한이 아니다”라고 뽑은 이유일 것이다.
“재임 중에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몇 %로 높이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퇴임 후 다음 정권에서 우리의 성장을 계속 추동할 수 있는 잠재 성장동력을 얼마나 만들어 내는가가 재임 중에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하는 윤 대통령의 목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지지율이 추락해도, 중간선거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제 임기 중 이 문제가 어느 정도 풀려야 하고, 개혁과 제도 개선을 하지 않고 물러설 수가 없다”라는 말은 임기 반환점을 맞은 윤 대통령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사자후(獅子吼)’ 같았다.
뉴스위크는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11월 5일)가 나온 직후 발간된 첫 잡지 커버 스토리로 윤석열 대통령을 선택했다. 대표 이미지로는 은은한 미소 속에서도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는 사진을 골랐다. 커버 스토리 메인 타이틀처럼 ‘국내적 진실(Home Truths)’이라는 도전에 직면해 있지만 불굴의 의지로 개혁을 완수하려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이미지로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한 듯 하다.
본문의 제목은 한결 더 비장하다. ‘혹독한 맞바람(Harsh Headwinds)’. 부제로는 ‘점차 더 호전적이 돼 가는 북한이라는 유령(specter)의 그림자 속에서 한국의 구조적 문제를 개혁하기 위한 윤 대통령의 전쟁(battle)’이라고 뽑았다.
뉴스위크 편집팀은 “전 세계인들에게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한국 내 도전적 환경의 엄중함(magnitude of the challenges)을 현실적으로 부각시키려 했다”고 설명했다.
물론 윤 대통령은 인터뷰 도중 국가안보 현안과 국내적 개혁 모두 경중을 가리기 어려운 절체절명의 과제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윤 대통령의 뜻이 전달됐는지 뉴스위크는 인터뷰 일문일답의 제목으로 ‘한국 정부의 대외정책과 국내적인 개혁과제의 추진은 동전의 양면’이라는 발언을 인용했다.
뉴스위크와 인터뷰 관련 논의가 시작된 것은 지난 3월로 거슬러 간다. 집권 2년 차를 맞아 커버 스토리로 다뤄 보겠다는 제안이 있었지만 4월 국회의원 총선거가 예정돼 있었고 의대 정원 증원을 비롯한 의료 개혁 추진에 매진하던 시기여서 타이밍을 잡지 못했다. 그러던 중 임기 반환점을 앞두고 다시 한번 인터뷰 논의가 재개됐고 10월 16일 7개 월 여 만에 인터뷰가 성사됐다.
커버 스토리의 비중을 감안해 뉴스위크 소유주인 데브 프라가드 최고경영자(CEO)와 낸시 쿠퍼 글로벌 편집장(Global Editor in Chief)이 영국에 주재하고 있는 매슈 토스테빈 선임 에디터와 함께 팀을 이뤘다.
프라가드 CEO는 디지털 혁신을 통해 뉴스위크를 흑자로 돌려놓은 경영의 귀재. 2021년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서 프라가드 CEO의 경영 노하우와 리더십을 사례 연구 교재로 활용해 유명세를 탔다. 메인 기사의 필자인 토스테빈 선임기자는 BBC와 로이터 통신에 몸담으면서 중동, 아프리카 등 분쟁지역 종군기자로 활약해 온 전형적인 강골 기자.
인터뷰는 결국 예정된 시간을 넘겼지만, 추가적인 질문 3~4개를 더 소화하면서 취재진의 궁금증에 화답했다. 이어진 화보 촬영 시간. 70여분 간 이어진 인터뷰 뒤에 진행된 프로필 사진 촬영이었지만 대통령은 시종 밝은 표정으로 제작진의 요청에 응했다.
공식적인 촬영이 끝난 뒤 윤 대통령은 취재진에게 2층 접견실을 직접 상세히 소개했다. 미국 존 F 케네디 재단이 수여한 ‘용기 있는 사람들 상’, 지난해 미국 국빈 방문 당시 선물 받은 빈티지 야구 용품, 그룹 퀸과 ‘아메리칸 파이’를 부른 돈 매클린의 레코드판 선물 등에 대한 이야기꽃을 피운 뒤 취재진과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것으로 모든 일정을 마무리했다.
윤 대통령은 4대 개혁에 집중했지만 뉴스위크 취재진은 남북 대치의 현장이 궁금했던 것 같다. 북한의 경의선 동해선 연결도로 폭파의 여파로 비무장지대 방문은 무산됐고 파주의 오두산 통일전망대 방문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뉴스위크 기사에는 “통일 전망대에는 한국의 지도자들이 통일에 대한 희망을 쓴 서예가 전시돼 있다. 화려한 문구 사이에서 돋보이는 윤 대통령의 간결한 메시지는 ‘자유, 평화, 그리고 통일’ 이었다”는 문구로 반영됐다.
뉴스위크 측은 윤석열 대통령의 개혁 추진 의지의 강인함(resilience)과 사심 없는 결단력(selfless determination)을 두 개의 키워드로 보았던 것 같다. 글로벌 중추국가로 도약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4대 개혁의 성공은 이제 전 세계인의 관심거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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