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샷] 심해에서 헤엄치는 달팽이 첫 발견

이영완 기자 2024. 11. 13. 08:2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600m 심해에서 무인잠수정으로 발견
손가락 모양 꼬리를 노처럼 저어
몸은 투명, 머리 두건으로 먹이 잡아
미국 몬테레이만 수족관 연구소의 무인잠수정은 심해에서 투명한 갯민숭달팽이인 바티데비우스 카누닥틸러스(Bathydevius caudactylus)가 손가락 같은꼬리로 헤엄치는 모습을 처음 관찰했다./MBARI

1995년 가수 이적이 ‘달팽이’를 발표했다. 노래 가사는 달팽이 이야기였지만 힘든 삶에서도 꿈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을 보여줘 큰 인기를 얻었다. 달팽이는 가사에서 ‘집에 오는 길은 때론 너무 길어, 나는 더욱더 지치곤 해’라면서도 ‘언젠가 먼 훗날에 저 넓고 거칠은 세상 끝 바다로 갈 거라고’ 다짐했다. 과학자들이 이적의 달팽이가 이미 꿈을 이뤘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확인했다.

미국 몬테레이만 수족관연구소(MBARI)는 “2600m 아래 심해(深海)에서 무인잠수정이 자유롭게 헤엄치는 갯민숭달팽이 신종(新種)을 발견했다”고 13일 국제 학술지 ‘심해 연구’에 발표했다. 몸길이 14.5㎝인 심해 달팽이는 손가락 모양의 꼬리를 노처럼 휘저어 헤엄쳤다. 머리에는 마치 두건 같은 구조가 있었고 몸은 투명해 내장까지 훤히 보였다.

미국 몬테레이만 수족관 연구소의 무인잠수정이 발견한 심해 갯민숭달팽이인 바티데비우스 카누닥틸러스(Bathydevius caudactylus). 몸이 투명해 안이 다 보인다. 흰색은 뇌, 붉은색은 위, 주황색은 소화선이다./MBARI

◇빛도 없는 심해에서 떠다니는 달팽이

갯민숭달팽이(학명 nudibranchia)는 화려하고 밝은 색상의 바다 달팽이다. 학명은 벌거벗었다는 뜻을 가진 라틴어 ‘nudus’와 그리스어로 아가미란 뜻인 ‘brankhia’에서 왔다. 달팽이는 보통 등에 껍질을 단 것으로 유명하지만 껍질 없는 민달팽이도 있다. 갯민숭달팽이는 그중 바다에서 사는 민달팽이다.

브루스 로빈슨(Bruce Robison) MBARI 수석과학자 연구진은 2000년 2월 캘리포니아주 몬테레이만 앞바다에서 원격 조종 무인잠수정(ROV) 티뷰론으로 수심 2614m 심해를 탐사하던 중 이상한 연체동물을 처음 관찰했다. 연구진은 지난 20년 동안 티뷰론 ROV가 촬영한 150건 이상의 목격 사례를 검토한 후, 갯민숭달팽이 신종임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갯민숭달팽이에게 바티데비우스 카우닥틸러스(Bathydevius caudactylus)란 이름을 붙였다. 앞부분 속명(屬名)은 ‘깊다’라는 그리스어 바티스(Bathys)에 교활하다(devious)는 단어를 합쳤다. 다른 갯민숭달팽이와 다른 특징으로 연구자들을 속인 심해 동물의 교활한 특성을 반영한 이름이라고 설명했다. 뒤 종명(種名)인 카우닥틸러스는 꼬리돌기란 뜻이다.

바티데비우스는 일반 갯민숭달팽이와 달리 심해에서 사는 별종이다. 갯민숭달팽이는 대부분 얕은 바다에서 바닷말이 우거진 곳이나 산호초에서 산다. 이번에 발견한 바티데비우스는 심해저에 사는 것으로 확인된 첫 갯민숭달팽이다. 이 종은 대양에서 빛이 도달하지 못하는 수심 1000~4000m에 산다.

미국 몬테레이만 수족관 연구소의 무인잠수정이 발견한 심해 갯민숭달팽이 바티데비우스 카누닥틸러스(Bathydevius caudactylus)가 빛을 내 천적의 주의를 분산시키는 모습./MBARI

◇등껍질뿐 아니라 피부색도 없앤 벌거숭이

바티데비우스는 빛도 없는 심해에서 살기 위해 독특한 형태로 진화했다. 대부분 바다 달팽이는 해저에 붙어 있는 먹이를 먹기 위해 뾰족한 혀를 사용하는 반면, 이번 달팽이은 두건으로 먹이를 잡았다. 마치 식충식물인 파리지옥처럼 두건으로 손톱보다 작은 갑각류를 덮쳤다. 심해에 사는 해파리, 말미잘도 같은 방식으로 사냥한다.

이동 방식도 다르다. 달팽이는 마치 무중력 우주 공간에 있는 것처럼 가라앉지도 수면 위로 떠오르지도 않고 몸 전체를 아래위로 물결치듯 움직이면서 떠다녔다. 이 과정에서 포식자에게 먹히지 않으려고 투명한 몸을 가졌다. 그러다가 들키면 갑자기 몸에서 빛을 발산해 포식자의 주의를 돌린다. 연구진은 무인잠수정이 촬영하자 적을 만난 듯 빛을 발산했다고 밝혔다.

생식 방식은 다른 갯민숭달팽이와 같다. 암컷과 수컷의 성기를 모두 가진 자웅동체(雌雄同體)다. 열악한 심해 환경에서 자손을 더 잘 퍼뜨리는 방법이라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달팽이는 한 몸에서 수정하면 산란을 위해 바다 밑바닥으로 내려간다. 무인잠수정은 달팽이가 알을 낳기 위해 손가락 모양 꼬리로 진흙 바닥에 달라붙는 모습을 관찰했다.

연구진은 바티데비우스의 유전자를 분석해 진화 과정을 살폈다. 얕은 바다에 사는 사자갈기 갯민숭달팽이(Melibe leonina)와 베일 갯민숭달팽이(Tethys fimbria)도 먹이를 잡을 때 두건을 쓴다. 유전자를 분석 결과 이들은 바티데비우스와 가깝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갯민숭달팽이의 두건은 수렴진화(收斂進化)의 한 예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수렴진화는 고래와 물고기, 박쥐와 새처럼 전혀 다른 종이 비슷한 환경에 적응하면서 외형이나 생활사 등이 비슷하게 된 것을 일컫는 말이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 결과처럼 심해 동물에 대해 더 많이 알수록 해양 생태계를 더 잘 관리할 수 있다고 밝혔다. 로빈슨 박사는 “심해 동물은 지구를 공유하는 우리의 이웃”이라며 “새로운 발견이 있을 때마다 대중에게 바다 깊은 곳에서 발견되는 놀라운 동물과 환경을 보호하도록 영감을 주는 기회가 된다”고 말했다.

참고 자료

Deep-Sea Research Part I.(2004), DOI: https://doi.org/10.1016/j.dsr.2024.104414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