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밭춘추] 감 따는 날

2024. 11. 1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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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산소 아래에 있는 대봉감이 탐스럽게 익었다.

부실하게 열매를 맺은 감나무를 향해 이 녀석 또 해거리를 한다며 눈을 흘겼다.

자식들을 모두 결혼시켜 새 둥지까지 마련해 주고 감나무처럼 병든 고목이 되어 세상을 떠나셨다.

대봉감을 깨끗이 씻어 물기를 말리기 위해 햇살 좋은 뜨락에 널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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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용 동화작가.

어머니 산소 아래에 있는 대봉감이 탐스럽게 익었다. 지난해엔 부실하게 열었는데 올해는 제법 알도 크고 윤기도 자르르 흐른다. 봄에 밑거름을 주고 보살핀 덕이다. 나눠먹을 사람들을 떠올리며 감을 땄다. 그러나 어머니의 인자하고 넉넉한 얼굴이 감을 따는 동안 내내 떠나지 않는다.

시골집 뒤꼍에 있던 오래된 감나무가 죽었다.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심은 나무인데 지난해 이맘때 마지막으로 감을 땄다. 부실하게 열매를 맺은 감나무를 향해 이 녀석 또 해거리를 한다며 눈을 흘겼다. 그러나 우연히 감나무 뒤쪽을 살펴보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나무가 구멍이 날 정도로 움푹 파였기 때문이다. 벌레도 득실거린다. 내가 무심한 사이에 병들어 썩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몸으로 열매를 맺기 위해 얼마나 힘들었을까. 거름도 제대로 주지 않고 방제도 하지 않으면서 가을이 되면 수확할 욕심만 가득했던 것이다. 어머니 모습이 떠올라 울컥해진다.

어머니가 그랬다. 그 많은 자식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당신의 몸이 망가지는 줄도 모르고 일을 했다. 주렁주렁 딸린 일곱 남매를 건사하느라 정작 당신 자신은 돌볼 새가 없었다. 자식들 입에 음식 들어가는 모습이 가장 보기 좋다던 어머니, 하지만 당신의 입에는 자식들이 먹고 남은 거친 음식뿐이었다. 자식들이 자라는 동안 어머니의 속은 썩어가고 있었고 무릎은 망가져서 수술도 약발도 듣지 않았다. 자식들을 모두 결혼시켜 새 둥지까지 마련해 주고 감나무처럼 병든 고목이 되어 세상을 떠나셨다.

대봉감을 깨끗이 씻어 물기를 말리기 위해 햇살 좋은 뜨락에 널어놓는다.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홍시로 잘 숙성시켜서 이웃과 나눌 것이다. 박인로의 시조를 중얼거린다. 반중(盤中) 조홍(早紅)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유자(柚子) 아니라도 품엄즉도 하다마는 품어가 반길 이 없을 새 글로 설워하노라. 박진용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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