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끌’ 대출과 ‘영혼’ 없는 정책이 빚은 가계빚 1900조[경제밥도둑]

윤지원 기자 2024. 11. 1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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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에서 유례없는 전세보증금을 부채에 포함할 경우 한국의 가계부채 규모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150%를 넘는다. 버는 돈(GDP)에 비해 빚이 훨씬 크다는 의미다. 가계부채 관리도 시급하지만 주거 안정이라는 과제도 남아있다. 인구 1000명당 주택 수는 2022년 전국 기준으로 430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인구 1000명당 평균 주택 재고(462호)에 비하면 부족하다. 중위소득 가구의 자가보유율은 하락하는 추세다.

가계부채 관리와 주거 안정, 두 가지 목표를 한 번에 이루는 방법이 있긴하다. 집 값 자체가 안정적 수준이 되고 대출도 자신의 벌이 수준에 맞게 빌리는 것이다. 저렴하고 입지 좋은 임대 주택을 널리 보급되는 것도 방법이다. 가계대출 관리를 하는 금융위원회와 주거안정을 목표삼는 국토교통부가 긴밀한 협조를 한다면 두 목표를 모두 달성할 수도 있다. 반대로 두 부처간 불협화음이 나거나, 의지가 약하면 두 과제 모두 무기한 방치된다.

상반기 주담대 증가액 70%가 정책대출

올 상반기엔 유독 정책대출 규모가 크게 늘었다. 상반기 은행권 재원으로 집행된 디딤돌(매매)·버팀목(전세) 대출, 즉 정책대출 규모는 총 18조1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은행권 전체 주택담보대출 증가액(26조1500억원) 중 69.2%에 달한다. 국토부가 관리하는 신생아 특례대출은 올 상반기에만 6조원 가까이 몰렸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 관계자는 “출생아 수가 늘고 상품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대출이 늘었다”고 말했다. 올 2분기(4∼6월) 출생아 수는 전년 동기 대비 1.2% 늘었다.

가계대출 관리 측면에서 보면 은행 자체 대출과 디딤돌 같은 정책대출을 같이 잡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금융위원회는 지난 8월 이후 총량 규제를 압박해 은행들이 대출을 조이게 만들었다. 대출 금리는 올랐고, 그간 나왔던 대출에 각종 허들(조건)이 생겼다. 돈 나올 구멍을 틀어막아 대출을 못받게 하는 1차원적 가계대출 관리다. 국토부도 손을 들었다. 디딤돌 대출을 일부 축소·제한하기로 한 것이다. 수도권 아파트를 구입하는 경우 최대 5500만원에 이르는 최우선변제금 공제를 의무화고, 준공 전 미등기 아파트를 담보로 한 대출을 금지해 대출한도를 대폭 줄이기로 했다.

대출량 vs 서민 주거안정, 무엇이 우선?
가계대출 증감

전문가들은 고삐가 풀린 정책대출을 조이는 현재 당국의 방향은 급한 불을 끄기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말한다. 가계부채 증가속도를 보면 위기감이 너무 크고, 수도권 중심으로 부동산시장도 과열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재준 인하대 교수는 “서울을 중심으로 부동산 대세상승 분위기가 나타나면서 지금 정책대출부터 막지 않으면 나중에 더 큰 불을 막아야하는 부담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간 정책대출이 지나치게 시장을 팽창시켰다는 점에서 정책대출 조이기가 너무 늦게 나왔다는 지적도 있다. 정준호 강원대 교수는 “주택공급이 주 역할인 국토부 입장에선 짓기만 하면 팔린다는 사인을 민간 건설 사업자들에게 주기 위해 정책대출을 많이 풀어놓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민 주거안정이라는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이 지나치게 대출 의존적이었다는 비판도 나온다. 박창균 자본시장연구원 부원장은 “정책대출을 빨리 줄여 금융을 안정시키는 게 급선무”라며 “집을 사게 해주는 것만이 주거안정 정책이 아니다. 양질의 주거 서비스를 저렴하게 이용하도록 하는 임대주택도 방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가계부채관리 진짜 ‘영혼’ 있는걸까

하지만 정책대출 조이기만으론 6월 말 기준 1900조원에 육박하며 역대 최대를 기록한 가계빚을 관리하기는 역부족이다. 박 부원장은 “전체 대출 잔액을 보면 비정책 대출의 규모가 훨씬 크기 때문에 정책대출을 조여도 가계부채 증가폭을 줄이는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의 일반 주택담보대출 취급이 지속적으로 낮아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현재 1금융권의 대출관리 방식은 이르면 연말쯤 자체적으로 종료될 가능성이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출은 신규취급을 막으면 분할 상환분이 들어오는만큼 자연감소분이 생겨 은행들의 이자수익이 줄어든다”며 “장기적으로 영업이익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당국이 눈치를 주더라도 언제까지나 비대면 대출문을 닫고 있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결국 가계부채 관리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강화를 통해 부동산 시장 안정을 꾀하는 것이 정공법이다. 현재 전체 대출에서 DSR이 적용되는 건 40%에 불과한데, 이 범위를 확대해 상환 능력에 맞는 대출로 한도를 크게 낮춰야한다는 이야기다. 현재 전세자금·개인사업자·중도금 대출 등은 DSR이 적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당국은 적극적이지 않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30일 기자간담회에서 전세자금 대출에도 DSR을 적용하는 방안에 대해 “언제 (적용)하겠다 말겠다라고 답변하기 어렵다”며 사실상 연내 도입을 목표로 했던 올 초 금융위 업무계획과 상충된 답변을 내놨다. DSR 확대는 부동산시장에 찬물을 크게 끼얹을 수 있는데 그 점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정 교수는 “소득이 증가하지 않는 경제 상황에서 부동산 시장에 군불을 유지하려는 건 결국 자산에 배팅을 거는 한탕주의 사회로 계속 가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지원 기자 yj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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