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투사 된 섬나라 시인 “해수면 1m만 올라도 건물 37% 침수”
인터뷰 | 제트닐키지너 마셜 제도 기후특사
“어떤 이들은 말해/ 저 산호가 너를 삼킬 거라고/ 해안선을 갉아먹고/ 빵나무 뿌리를 씹어대고/ 방파제를 삼키고/ 너의 섬을 부서진 뼈처럼 으스러뜨릴 거라고 (…)”(‘마타펠레 페이남에게’)
투발루, 몰디브, 키리바시 등 작은 섬나라들은 대표적인 기후변화 ‘피해국’으로, 급격히 진행되는 해수면 상승과 갈수록 빈번해지는 폭우와 가뭄을 이미 ‘현실’로 겪고 있다. 적도 부근 29개 환초에 자리잡은 1100여개 섬들로 이뤄진 마셜제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 나라 출신 캐시 제트닐키지너(37)는 작은 섬나라들이 직면한 기후변화 위협과 그에 맞서는 의지를 딸에게 들려주는 시 ‘마타펠레 페이남에게’로 주목받은 시인이자 기후운동가이다. 이 시에서 그는 “우리는 번영할 자격이 있다”며, “아무도 너를 삼키지 못하게 할 것”이라 다짐한다. 그는 2019년부터 마셜제도의 ‘기후특사’가 되어 국제회의장에서도 기후변화와 싸워왔고, 올해도 어김없이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가 열리는 아제르바이잔 바쿠로 날아갔다.
총회 전 서면으로 만난 제트닐키지너는 “총회는 우리에게 생존을 건 싸움”이라며, “우리 같은 작은 나라가 전세계적으로 모여 미래를 보존하기 위한 논의에 참여할 수 있는 (유일한) 과정”이기 때문이라 밝혔다. 마셜제도의 수도 마주로에서 태어난 그는 “우리 나라는 해수면 위로 불과 2미터 정도 올라와 있는 저지대 환초 섬나라로, 기후변화와 해수면 상승에 가장 취약한 국가 중 한곳”이라고 소개했다. 각종 연구들은 해수면이 1미터 상승하면 마주로의 건축물 37%가 영구적으로 침수될 것이라 본다. 마셜제도의 총면적은 서울의 약 3분의 1인 181㎢인데, 폭우와 가뭄을 피해 사람들이 해마다 나라를 떠나면서 현재 인구는 4만2천여명으로 줄었다. 선진국들이 일으킨 기후변화의 피해가 작은 나라들에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작은 나라들엔 기후변화에 대응할 역량이 턱없이 부족하다. 마셜제도는 지금까지 아시아개발은행(ADB), 세계은행(WB), 녹색기후기금(GCF), 지구환경기금(GEF), 유엔개발계획(UNDP), 유엔환경계획(UNEP), 국제이주기구(IOM) 등으로부터, 또 유럽연합이나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호주), 대만, 일본 등으로부터 지원을 받아왔다. 그러나 제트닐키지너는 “우리가 직면한 위기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도시 두곳을 수몰 위기에서 보호하는 데에만 약 90억달러(약 12조6천억원)가 필요하고, 국가적 차원에서는 전체 350억달러(약 49조원)의 ‘적응’(피해를 대비하기 위한 활동) 비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게다 해안 침식, 폭우, 가뭄 등 이미 일어난 ‘손실과 피해’에 대응하기 위해선 “더 많은 기후재원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수조달러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에 대한 해답을 찾아야 한다.” 그가 새로운 기후재원 체제를 합의해야 할 올해 총회가 특히나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화석연료 중단 등 기후변화의 영향을 ‘완화’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제트닐키지너는 “(이미 땅이 수몰되고 있는) 마셜제도는 한가지에만 집중할 여유가 없다”며 “전세계 배출량의 80%를 차지하는 주요 20개국(G20)의 노력과 전 지구적인 노력이 모두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 화석연료를 태워 혜택을 본 선진국들은 마셜제도 등 피해를 보는 국가들을 보호하고, 섬에서의 미래를 보장하도록 지원하는 데 큰 책임이 있다”고 덧붙였다.
기후변화 부정론자인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복귀, 갈수록 커져가는 석유국가·기업의 영향력, 교착에 빠진 국제적 합의 등 세계기후총회의 전망은 밝다고 할 수 없다. 마셜제도와 비슷한 처지인 파푸아뉴기니는 올해 총회 참석을 거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제트닐키지너는 딸에게 “아무도 너를 삼키지 않을 거야”라고 말하며 희망을 놓지 않는다. 2021년 그가 쓴 ‘자정’이란 시에는 절박한 기후위기에도 느긋하기만 한 국제회의에 대한 풍자가 들어 있는 한편, 그럼에도 꺾이지 않겠다는 의지가 함께 담겨 있다.
“우리는 테이블에 둘러앉아 의논한다/ 일을 하고 보고서를 제출하지만 시간은 부족하다/ 시계가 자정을 알리기 전에/ 호박이 썩기 전에/ 우리의 유리 섬이 산산조각 나기 전에/ 우리는 그렇게 쉽게 깨어질까?/ (…)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재조립한다/ 우리는 탄산칼슘을 모아/ 산호로 만들어진 우리의 뼈대를 햇빛 아래 자라게 한다 (…)”
윤연정 기자 yj2gaz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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