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어탕 미꾸라지, 소금 비벼 죽이지 말라…세계적 윤리학자의 당부 [영상]
실천윤리학자 피터 싱어 프린스턴대 명예교수
“‘개식용특별법’ 동물권 확대 첫걸음…어류까지 고려하길”
저명한 실천윤리학자 피터 싱어 미국 프린스턴대 명예교수는 수능을 앞둔 한국의 수험생들에게 마치 살아있는 예수나 부처처럼 여겨진다. 그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에는 “싱어 교수님 ‘생활과 윤리’ 과목 만점 받게 해주세요”와 같은 ‘기도 댓글’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 과목이 수능의 선택 과목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올해 78살 “현존하는 가장 논쟁적이고 영향력 있는 철학자 중 한 명”(미국 ‘뉴욕커’)인 싱어 교수가 세 번째로 한국을 찾았다.
그가 29살 옥스퍼드대 대학원 재학 시절 쓴 책 ‘동물해방’(1975년)은 공장식 축산에 반대하고 우리가 농장동물과 실험동물에게 가하는 ‘종차별주의’를 지적했다. ‘동물도 고통을 느낀다면 인간과 마찬가지로 도덕적으로 대우해야 한다’는 그의 철학을 담은 이 책은 출간 이후 지난 50여년 동안 전 세계 동물권 운동의 이론적·철학적 기반이 되어 왔다.
“출간된 이래 단 한 번도 절판된 적이 없는” 이 책이 지난해 48년 만에 전면 개정돼 나왔다. 그는 서문에서 “동물 해방을 위한 투쟁은 1975년 이래 진전을 보았으나 (동물에 대한) 대규모 잔혹 행위를 막는 데에는 여전히 실패하고 있다”고 현시대를 평가했다. ‘고통을 최소화하고 행복을 극대화하는 것이 우리의 도덕적 의무’라는 그의 철학은 기후변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실천법을 제시하고 있을까.
지난 11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한겨레와 만난 싱어 교수는 “개인이 동물복지를 실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채식”이라며 “동물의 고통을 줄이는 것이 곧 기후변화를 늦추는 길”이라고 말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돌고래 생태법인’ 논의부터 ‘개 식용 금지 특별법’ 제정까지 국내 굵직한 동물권 이슈와 이에 대한 그의 견해를 물었다.
Q. ‘동물해방’을 비롯한 여러 책이 동물권 논쟁과 동물해방 운동을 촉발했지만, 스스로는 “동물권 옹호론자는 아니”(책 ‘왜 비건인가’)라고 밝히신 바 있습니다. 현재 한국에서는 멸종위기종인 제주 남방큰돌고래에게 법적 지위를 부여하자는 ‘생태법인’ 논의가 진행 중입니다. 동물에게 법적 권리를 부여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동물이 법적 지위를 갖는다는 것은 동물 자신을 대변하는 사람이 법적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뜻일 겁니다. 저는 그것이 매우 정당하다고 생각해요. 예컨대 어린이나 지적 장애가 있는 사람은 후견인을 선임해 대신 소송을 제기할 수 있어요. 이러한 권리가 우리 종(인간)에게만 제한되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모든 인간이 이성적 능력에 상관없이 법적 권리를 가진다면, 인간이 아닌 동물에게도 이를 부여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Q. 최근 출간하신 새 책 ‘칠면조에 대한 고려’(Consider the Turkey, 국내 미출간)에서는 서구사회의 전통적 명절 음식인 칠면조 요리에 대한 재고를 촉구하신 것으로 압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개고기 소비 문제가 있었는데요, 지난해 ‘개의 식용 목적의 사육·도살 및 유통 등 종식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며 개의 식용·도살·판매가 2027년부터 금지될 예정입니다. 일부에서는 “왜 소·돼지는 먹으면서 개만 ‘특별 대우’를 하느냐”는 의견을 내놓습니다. 특정한 종에 대한 우리의 윤리적 노력이 다른 농장동물들에 대한 태도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요?
“먼저 개 식용 금지를 지지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개 식용·도살·판매 금지는 동물을 잔인하게 도살하고 소비하는 것을 금지하는 제도를 확대하기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 책 ‘칠면조에 대한 고려’는 반려견인 개와 농장동물인 칠면조를 대하는 인간의 차별적 인식에서 출발했습니다. 이처럼 한국사회가 개에게서 출발한 문제의식을 닭, 돼지, 소 같은 농장동물로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돼지 역시 개처럼 쾌락과 고통을 느낄 수 있고 더 나은 삶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Q. 말씀하신 것처럼 ‘쾌락과 고통을 느끼는 능력’(쾌고감수능력)을 지닌 동물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윤리적으로 대해야 한다고 말씀해오셨습니다. 과학이 발달하며 쾌고감수능력을 지닌 것으로 밝혀지는 동물 종도 늘어나고 있는데요, 만약 제한적이더라도 식물에서 그런 능력이 밝혀진다면 우리는 식물 섭취도 제한해야 할까요.
“실제로 영국에서는 문어와 랍스터, 게를 포함한 일부 무척추동물이 고통을 느낀다는 과학적 증거가 밝혀진 뒤 이 동물을 지각 있는 존재로 인정해 ‘동물복지법’에 포함했습니다. 다만 저는 아직 식물이 고통을 느낀다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러한 증거를 찾을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만약 식물이 고통을 느낀다는 증거가 있다면 식물에 가하는 피해나 고통을 최소화해야겠지요.
그에 앞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식물에 끼치는 피해를 최소화할 방법은 지금도 마련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바로 동물성 식품 소비를 줄이고 비건(동물성 식품·제품을 소비하지 않음)이 되는 것입니다. 축산업에서 가축을 사육하기 위해 소비하는 옥수수, 밀, 보리, 콩 등은 인간이 직접 소비하는 식물량보다 훨씬 더 많기 때문입니다.”
Q. 채식을 하는 것이 효율적이란 말씀이시군요. 동물권 논의뿐 아니라 기후변화, 빈곤문제에서도 정확한 정보에 기반을 둔 효율적 기부와 자원 재분배를 강조해오셨어요. 이러한 ‘효율적 이타주의’ 관점에서 시민들이 동물복지를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요.
“두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우리 자신의 식단을 완전 채식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우리는 수억 수천만 마리의 동물을 식용으로 소비합니다. 동물의 고통을 줄이려면 식용으로 죽어가는 농장동물에게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완전 채식으로의 변화가 어렵다면 일주일 1회 정도에서 2~3일로 차차 늘려가는 방법을 추천합니다. 두 번째는 동물의 고통을 줄이는 활동을 벌이는 동물단체를 지원하고 기부하는 것입니다.”
Q. 정책과 법안을 만드는 정치인들이 할 일도 있을 것 같습니다.
“공장식 축산을 규제하는 법안을 만드는 것이겠지요. 가령 유럽연합(EU)은 축산동물 복지에 관해 한국보다 더 나은 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유럽연합도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암탉이 날개를 펼칠 수 있도록 공간을 보장하는 것 등은 진일보한 정책이라 생각합니다.
또 동물에게 느리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가하는 것을 금지해야 해야 합니다. 특히 한국의 추어탕은 미꾸라지를 죽일 때 소금을 사용해 고통스럽게 죽입니다. 동물에게 큰 고통을 가할 뿐 아니라 불필요한 방식입니다. 독일에서도 과거 장어를 죽일 때 소금을 사용했지만, 지금은 법으로 금지했습니다. 한국도 동물법을 개정해 어류를 고통스럽게 죽이는 것을 전면 금지했으면 좋겠습니다.”
Q. 오늘(11일)부터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는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가 시작됐습니다. 전 지구적인 기후위기를 멈추기 위해 가장 시급하게 실천해야 할 과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미 잘 알고 있듯, 궁극적인 과제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것입니다. 이번 총회에서는 화석연료의 이산화탄소 배출뿐 아니라 공장식 축산에서 발생하는 메탄에 대해서도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고기를 위해) 사육하는 동물의 수를 줄이는 것은 가장 빠르게 온실가스를 줄이는 방법입니다. 향후 20년은 우리가 온실가스 배출을 통제하고 줄일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텐데, (공장식 축산이 만들어내는) 메탄이 이산화탄소보다 약 80배 강한 온실가스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나아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자신이 당선되면 ‘파리협정’(지구의 평균 온도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섭씨 2도로 제한하는 국제 협약)에서 탈퇴할 것이라 밝힌 바 있습니다. 기후협약 당사국은 트럼프가 이런 결정을 내릴 경우, 미국 수출에 대한 무역 제재도 고려해야 합니다.”
“동물해방은 곧 인간해방이기도 하다”는 1975년 판 ‘동물해방’ 서문의 마지막 문장은 반세기가 지난 현 시점에서도 유효한 것이다. 싱어 교수의 이번 방한은 에스비에스(SBS)가 해마다 주최하는 지식나눔 프로젝트인 ‘SBS 디(D) 포럼 2024’에 연사로 참여하며 이뤄졌다. 12일 오후 그는 ‘변곡점이 될 21세기, 윤리적 사고를 확장해야 하는 이유’를 주제로 강연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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