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 판 바꾸겠다”던 ‘후보 한동훈’…‘대표 한동훈’은 다르다?
“제3자인 대법원장이 특검 정하는 게 ‘공정한 특검’”
취임 후 ‘채상병 특검’ 묵묵부답 속…‘중‧수‧청’ 이탈
(시사저널=박성의 기자)
"당 대표가 되면 더 소상히 국민과 소통하고, 대통령과 많은 대화를 나누겠다."
지난 7월10일, 부산 해운대에서 진행한 전당대회 합동연설회 직후 시사저널과 만난 한동훈 당시 당대표 후보는 "'한동훈 체제'에서 당정이 갈등할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에 이같이 답하며 선을 그었다. 이어 '채해병 제3자 특검법'을 추진하겠다며 "만약 민주당이 이 공정한 특검을 받지 않는다면, 민주당의 특검 의도는 진실을 규명하는 게 아니라 정쟁을 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후 한 후보는 62%의 압도적 당심을 업고 당대표가 됐다. 당정의 변화와 쇄신, 대통령과의 활발한 소통, 제3자 특검 추진을 약속했던 '후보 한동훈'. '당대표 한동훈'은 '후보 한동훈'의 이 같은 공약과 공언을 잘 지켜가고 있을까. 시사저널은 후보 당시 한 대표의 답변을 다시 공개한다.
"尹과 갈등? 합리적 토론, 많은 대화 나눌 것"
"합리적인 토론을 통해 민심을 향해 가는 길에 어긋남이 없도록 하겠다. 지난 20년 동안 대통령과 제가 함께 걸어온 길이 그렇다."
전당대회 당시 한 대표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붙던 질문이 '대통령과의 갈등설'이다. 이때마다 한 대표는 "수직적 당정관계는 바람직하지 않다"면서도 "소통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윤 대통령과 자신의 목표가 같기에, 토론을 통해 대안을 마련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대통령과 저는 바라보는 목표가 같다. 좋은 정치를 통해 국민의 더 나은 삶을 일구고 윤석열 정부를 성공한 정부로 만드는 것"이라며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조금씩은 다를 수 있지만, 그때마다 많은 대화를 나눌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윤석열 정부가 성과나 정책을 알리는 과정에서 국민과 소통하는데 부족했고, 어떠한 이슈에 대해 원칙과 방향성은 맞지만 원칙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민심에 조금 느리게 반응하는 측면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며 "당 대표가 되면 더 소상히 국민과 소통하고, 민심에 좀 더 빠르고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도록 대통령과 많은 대화를 나누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민심을 두려워하는 당정이 되도록 대통령과 수시로 대화하겠다. 지켜봐 달라"고 덧붙였다.
대통령과의 활발한 소통을 자신했던 한 후보지만, 정작 당 대표 취임 후엔 다른 현실을 마주한 모습이다. 한 대표와 윤 대통령은 같은 '특수통' 검사 출신에 20년 넘는 인연을 자랑한다. 이에 당정의 화합을 만들어낼 것이란 당초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이른바 '김 여사 리스크' 등을 두고 이견을 보이면서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회동이 성사되기까지 수차례 불편한 기류가 형성됐다.
한 대표의 거듭된 독대 요청에, 드디어 지난 10월21일 윤 대통령과 한 대표는 서울 용산 대통령실 파인그라스에서 마주앉았다. 다만 독대가 아닌 정진석 비서실장이 배석한 '3자 차담'이 진행됐다. 이 자리에서 한 대표는 김건희 여사 논란과 의료개혁 등 정국의 해법에 대해 간언했으나, 윤 대통령이 수용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윤 대통령은 추경호 원내대표 등의 요청에 '대국민담화'를 결정했고, 한 대표는 윤 대통령의 담화가 결정된 사실을 언론 보도 직전 통보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장이 특검을 정하는 게 '공정한 특검'"
"보수 정당으로서 진실을 규명하는 데 소극적이라는 오해를 피하면서도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하다."
한 대표는 후보 시절 '채상병 제3자 특검'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원희룡 후보를 비롯한 당내 친윤(親윤석열)계가 '탄핵 시도'라며 야권이 발의한 '채상병 특검법'을 거부하고 나선 것과 달리, 한 대표는 '대안이 필요하다'고 맞섰다. 일부 독소조항을 제거한 국민의힘 차원의 특검법을 따로 발의해, '특검 정국 판'을 바꿔야 한다는 게 한 후보의 주장이었다.
당시 그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기존의 정부 여당 입장과는 다른 채해병 특검 입장을 피력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지금 이 사안에 대해 국민께서 많은 의구심을 가지고 계시고, 여러 차례 실기했다는 평가도 하고 계신다. 현실적으로 저희는 108석 정당"이라며 "그렇다면 저희가 보훈과 안보를 중시하는 보수 정당으로서 진실을 규명하는 데 소극적이라는 오해를 피하면서도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하다고 저는 봤다"고 답했다.
'한동훈 안'이 필요한 이유를 거듭 묻자, 그는 "그동안 채해병 특검 문제는, 단순히 특검을 찬성하는 쪽과 특검을 반대하는 쪽이 대립하는 구도였다. (제 안이 제기된 이후) 이제는 이미 민주당이 특검을 정하는 무소불위의 '불공정한 특검'을 할 것이냐, 아니면 제3자인 대법원장이 특검을 정하는 '공정한 특검'을 할 것이냐의 구도로 바뀌었다"고 자평했다.
그러면서 "그런 구도에서라면 후자가 너무 합리적이다. 만약 민주당이 공정한 특검을 받지 않는다면, 국민께서 민주당의 진짜 의도가 진실을 규명하는 게 아니라 정쟁을 하는 것임을 알게 되실 것으로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한 후보의 자신과 달리, 한 대표는 취임 후 '채상병 제3자 특검'을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 추경호 원내대표를 비롯한 당내 친윤(親윤석열)계의 강한 반대 기류를 한 대표가 넘어서지 못하는 모습이다. 한 대표가 고립되자, 민주당은 한 대표가 내놓은 '제3자 특검' 아이디어를 그대로 차용해 한 대표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민주당은 오는 14일 국회 본회의에 수사 범위를 축소하고 정당이 아닌 제3자가 특검을 추천하는 '김건희 특검법' 수정안을 내겠다고 밝혔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한 대표를 향해 "'국민 눈높이', '민심' 운운하던 한 대표가 길을 잃고 역주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채상병 사망사건 수사 방해 및 수사외압 의혹' 관련 국정조사를 두고 "한 대표가 (채상병) 특검에 찬성 입장을 밝혔던 만큼 여당은 반대할 명분이 없다"며 "국정조사에 협력하라"고 거듭 요구했다.
"'중‧수‧청'으로 외연 확장…국민 신뢰 되찾아야"
"중도층, 수도권, 청년(중‧수‧청)으로 외연을 확장해야 국민의힘이 이기는 정당이 되고 보수가 재집권할 수 있다."
한 대표는 후보 시절 '보수의 혁신 방향, 향후 주요 과제'를 묻는 질문에 이 같이 답했다. 그러면서 "지난 총선에서 저희가 45%의 지지를 받았다. 최소한 6%의 지지를 더 받아야 보수가 재집권할 수 있는데, 지금처럼 해서는 절대로 (과반의 국민 지지를) 받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한 후보는 또 대야(對野) 공세만으로는 정부 여당 위기를 타파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기는 정당을 만들기 위해서는 거대 야당의 횡포에 잘 맞서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집권 여당으로서의 미래 비전과 보수 정당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효과적으로 제시해 잃어버린 국민의 신뢰를 되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를 위해 "여의도연구원(여연)의 정책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면서 "지역의 현장사무실 개설을 통해 원외의 훌륭한 당협위원장들과 청년들이 생활 정치를 할 수 있도록 길도 열어드리겠다. 우리나라가 우상향할 수 있도록 저출산, 저성장, 고물가, 인공지능(AI) 첨단산업 등의 문제를 해결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정당을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실제 한 대표는 취임 직후 당 싱크탱크인 여연 개편에 착수했다. 유의동 여연원장은 지난 4일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이사회 중심의 안정적 거버넌스 확립 △연구원 산하 센터 재정비 △당 교육체계의 종합적 정비 등을 통해 여연을 변화시키겠다고 강조했다.
한 대표는 10·16 부산 금정구·인천 강화군 보궐선거 승리를 이끌며 후보 시절 공언한 '이기는 정당'의 선례도 만들었다. 그러나 윤 대통령과 친윤계와의 갈등 속, '중‧수‧청 외연 확장' 숙제는 쉽게 풀지 못하는 모습이다. 최근 다수의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이 동반 최저치를 기록한 가운데, 중‧수‧청은 물론 TK(대구‧경북) 지지율도 하락한 것으로 발표됐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한 대표가 변화에 시동은 걸었지만 대통령의 변화를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며 "의원들에게 '제3자 특검법' 조차 설득하지 못할 만큼 당내 세가 부족하다. 이 상황에서 한 대표가 대통령과 각을 세우기는 더 어려울 것이다. '딜레마'에 빠진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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