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영재교육 갈림길]④ 김성근 포스텍 총장 “문제풀이 숙련공 거부…370명 원석 뽑겠다”
성적 줄 세우기 지양…자기 생각 가진 인재가 필요
포항공대(포스텍)가 과학영재교육의 틀을 바꿀 만한 새로운 실험에 나선다. 기존의 내신과 수능 성적 위주의 학생 선발 제도 대신 학생의 창의성과 사고력, 논리력, 리더십을 위주로 학생을 선발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수험생 1인당 30분 정도 개별 면접을 보던 방식 대신 10시간 넘게 그룹 토론과 프로젝트 수행, 관찰 면접까지 다양한 방식의 심층다면 면접을 진행한다. 포스텍의 새로운 입시 제도는 2026학년도부터 적용된다.
김성근 포스텍 총장은 지난 7일 대학 집무실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갖고 “우리나라 과학영재교육 시스템은 세계적으로도 손색이 없지만, 점수로 서열화된 기준만이 공정하다고 보는 지금의 대학 입시제도가 문제”라며 “세계적 명문대학으로서 입시제도도 글로벌 표준에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해 포스텍이 도전해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서울대 자연대 학장과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 이사장을 지낸 김 총장은 작년 9월부터 포스텍 총장을 맡았다. 포스텍이 이공계 특성화대학의 학생 선발 방식을 바꾸는 건 그의 문제 의식에서 시작됐다. 김 총장은 성적 순으로 학생들을 줄 세워서 뽑는 지금의 대학 입시 제도는 학생들을 ‘문제풀이 숙련공’이나 ‘교과서 대변인’으로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대학의 특성과 시대에 따라 좋은 인재에 대한 정의는 달라질 수 있고, 또 달라져야 한다”며 “우리 사회는 공정이라는 가치에만 지나치게 매몰돼 점수화, 획일화, 서열화하고 있는데, 입시와 교육은 여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김 총장과의 일문일답.
–2026학년도부터 입시 제도가 어떻게 달라지나.
“2026학년도 우리 대학의 입학전형에서 주요 모집 단위인 단일계열 일반전형 220명(전체 모집인원 370명의 60%)의 면접 반영 비율을 33%에서 50%로 강화하는 방안은 이미 교육부에 제출했다. 올해 진행되고 있는 2025학년도 입학전형까지는 수험생 1인당 30분의 면접이 이루어지지만, 2026학년도부터는 면접 시간을 대폭 늘려 심층다면 면접을 시행하려고 한다. 기존의 개별 면접 외에도 그룹 토론, 프로젝트 수행, 관찰 면접 등 다양하고 혁신적인 방법을 도입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입시개혁소위원회를 가동했고, 내년 3월까지 전체적인 방향성과 세부 실행 방안을 확정하겠다. 일단은 220명으로 시작하지만, 결국에는 전체로 확대하려고 한다.”
–개별 면접을 심층다면 면접으로 바꾼 이유는.
“12년 이상 걸린 교육과정의 열매를 단 30분의 면접으로 판정한다는 것은 수험생에게는 너무 가혹한 일이다. 대학 입장에서도 사교육으로 가공되지 않은 인재를 선별하는 데 부족하다. 입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사이 젊은이들이 문제풀이 숙련공으로만 컸다. 조립가구 숙련공이 정해진 순서에 따라 책상과 의자를 척척 조립하듯 수험생들이 주어진 시간 안에 문제 유형에 따라 답을 얼마나 숙달되게 구하는지로 당락을 결정했다. 외국에서는 없는 가구를 상상하는데 반해, 우리는 남이 디자인한 가구를 조립하는 것만 반복학습한 셈이다. 창의성은 단시간에 판단하기 힘들지만 숙련도는 즉각 측정할 수 있고 그 결과를 객관적인 점수로 낼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제도를 유지했다. 포스텍은 숫자 위주의 평가 방식에서 과감히 벗어나 창의성과 독창성, 사고력과 추론 능력, 소통 능력과 리더십, 성실성과 인성 등 모든 면에서 인재로서의 역량을 판단하고자 한다.”
–지금도 학생부종합전형을 운영하고 있다.
“맞는다. 학생부종합전형을 고수했는데, 교사추천서와 자기소개서가 폐지되고, 학교생활기록부의 기록영역이 축소되면서 학생부종합전형은 점점 기능을 상실하고 있는 실정이다. 새로운 입시제도를 통해 사교육으로 가공되지 않은 숨은 인재를 발굴하려고 한다.”
–성적 위주의 입시 제도는 객관적인 평가여서 공정성 시비에서 자유롭다. 바뀌는 입시 제도에서 공정성 논란을 줄일 방법이 있나.
“입시 제도에서 공정성이 그 무엇보다도 강조돼야 한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면접전형안을 어떻게 마련하더라도 공정성 확보는 선결조건이다. 2026년 입시부터는 인근 대학의 교수 같은 외부인사들도 면접위원으로 위촉해 우리 대학의 입시를 제3의 눈으로 보고 공정성을 검증하는 역할을 맡기려고 한다.”
–포스텍이 앞장서서 대입 제도를 바꾸기로 한 이유는.
“개인적인 경험도 있다. 유학 간 첫 학기에 만난 동급생들은 나와 달리 교수들과도 자연스럽게 대화를 했다. 단지 언어의 차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친구들은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는데 반해 나는 내 생각 자체가 없는 그냥 ‘교과서 대변인’이었다. 문제풀이 숙련공 방식의 교육으로는 자신만의 생각을 키우기 어렵다.
누군가는 바꿔야 하는데 포스텍이 거기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우리는 과학기술특성화 대학으로서 학생들의 관심과 수준이 비교적 균질하고, 소규모 대학이라 제도의 수용과 실행도 용이하다고 봤다. 세계적 명문대학으로서 입시제도도 글로벌 표준에 다가가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부담이 없는 건 아니다. 장시간 심층다면 면접을 수도권에서 2시간 이상 떨어진 지방에서 하는 데 따르는 심적, 시간적 부담 때문에 우리 학교를 기피하는 학생이 생길 수도 있다. 220명의 3배수만 잡아도 660명이 종일 면접을 치르는데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그래도 우리의 시험이 성공해야 학생들과 수험생 가정이 입시의 질곡에서 조금이라도 숨통이 트이지 않을까 기대한다.”
–바뀐 입시 제도에서는 어떤 학생들이 들어오길 기대하나.
“사고력, 논리력, 인성, 발표력, 리더십. 모두 사회에서 인재를 평가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대학만 이런 기준을 무시하고 성적으로만 학생을 뽑는다. 우리는 반복 훈련으로 길러진 인재는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덜 다듬어졌더라도 원석을 발견하려고 한다. 이공계는 특히나 자기 목소리를 내고, 당당하게 질문하는 인재가 필요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교과서 대변인이 아니라 370명의 괴짜다. 타고나기를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을 발굴하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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