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사가 “불매 운동하자”… 성과급에 분열된 현대차그룹
현대차 직원 “부품사 영업이익률 저조” 지적
계열사는 “불평등한 납품 단가가 문제” 반발
현대차그룹이 계열 부품사의 잇따른 파업과 임금 인상 요구로 몸살을 앓고 있다. 현대트랜시스와 현대위아, 현대제철 등 계열사 직원들은 현대차, 기아와의 임금 격차가 최근 몇 년간 크게 벌어졌다고 주장한다. 일부 부품사 직원은 현대차 불매 운동을 제안하는 등 임금 구조에 대한 불만이 계열사 간 갈등으로 번지는 분위기다.
현대트랜시스 노동조합은 최근 한 달간 진행했던 파업을 중단했다. 그러나 사측에 임금 격차를 줄여 달라고 요구하고 있어 재차 파업에 나설 가능성이 남아있다. 만약 현대위아와 현대제철 등이 파업에 가세하면 현대차·기아는 심각한 생산 차질을 겪게 된다.
◇ 완성차 vs 부품사… 임금 앞에서 갈라진 현대차그룹
13일 현대차그룹 관계자에 따르면 국내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애플리케이션(앱)인 ‘블라인드’에서는 최근 임금 구조를 두고 현대차·기아 직원과 부품 계열사 직원 사이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한 현대차 직원은 “부품사의 설립 목적은 고품질의 부품을 적시적기에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최근 임금 인상을 요구 중인 부품사 직원들을 겨냥해 “설립 목적과 취지를 망각하고 마치 (현대차와) 동등한 선상에 있는 것처럼 착각하지 말라”며 “아무리 발버둥치더라도 불편하지만 이것이 진실이다”라고 했다.
이 글에 현대트랜시스, 현대위아, 현대케피코 등의 직원들이 연이어 반박하는 댓글을 달고, 또 현대차·기아 직원들은 옹호하는 댓글을 올리면서 해당 게시물은 완성차와 부품사 간 격전의 장(場)이 됐다.
현대트랜시스 직원은 “그룹사 납품 물량은 몇 백만대 규모이고 스텔란티스 물량은 고작 20~30만대 수준이지만, 영업이익은 그룹사 전체에 판 것보다 훨씬 많다”고 했다. 현대차·기아가 인색한 조건으로 부품을 납품받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이에 대해 다른 현대차 직원이 “그럼 스텔란티스에 납품해 먹고 살라”며 조롱하는 듯한 댓글을 달자, 그는 “현대차그룹에서 나갈테니 제발 놓아달라”고 했다. 한 현대위아 소속 직원은 “현대차·기아 불매 운동에 들어가자. 모든 계열사는 현대차와 기아를 절대 사지 말자”며 날을 세우기도 했다.
◇ 현대차 90~95% 수준이던 계열사 임금, 2022년부터 벌어져
현대차 노사는 지난 7월 임금 협상을 타결하면서 기본급 500%에 1800만원을 더한 성과급, 자사주 57주를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기아 역시 현대차와 동일한 조건으로 9월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을 마무리했다. 반면 현대트랜시스의 경우 사측이 제시한 조건은 기본급 400%에 1200만원을 더한 성과급이다. 주식 지급은 제시안에 포함되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현대차그룹 부품 계열사 관계자는 “과거 현대차의 90~95% 수준이었던 임금 격차가 2022년 이후 벌어지기 시작했다. 현재는 성과급을 포함한 총 임금이 80%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2022년 현대차·기아 전 직원들에게 400만원의 특별성과급을 줬다. 2017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이후 중국 판매량 감소로 몇 년 간 부진했던 실적이 개선되자 보상을 준 것이다.
당시 부품사 직원들은 지급 대상에서 제외됐다. 현대모비스는 노조가 사장실을 점거하는 등 강하게 반발하면서 지급 대상에 포함됐지만, 현대위아와 현대트랜시스 등 다른 부품사 직원들은 이 특별성과급을 받지 못했다. 지난해의 경우 현대차·기아 직원들에게는 600만원의 특별성과급을 줬지만, 부품사 직원들은 300만원을 받았다.
부품사 사측은 영업이익률이 낮아 현대차·기아만큼 보상을 해주기 어렵다고 선을 긋고 있다. 현대차·기아는 영업이익률이 10%대지만, 부품사의 영업이익률은 2~3% 수준이다. 그러나 부품사 직원들은 현대차·기아가 납품 단가를 결정하기 때문에 영업이익률은 오를 수가 없는 구조라며 반발하고 있다.
◇ ‘트럼프 리스크’ 이어 생산 위기 번질 수도
현대트랜시스 노조는 지난 11일 파업을 중단하고 생산 현장에 복귀했다. 그러나 특근과 잔업은 계속 거부하기로 했다. 12일에도 서울 용산구에 있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자택 주변에서 시위를 벌이면서 임금 인상 요구를 계속하고 있다.
현대제철과 현대위아 역시 임단협에서 사측과의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두 회사 역시 현대차·기아와의 임금 격차에 대한 직원들의 불만이 고조돼 있어 파업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최악의 경우 현대트랜시스, 현대제철, 현대위아 등이 비슷한 시기에 파업에 나서면 현대차·기아는 생산에 큰 타격을 받게 된다.
현대차는 지난 5일(현지 시각)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대외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이다. 미국에 10조원 이상의 자금을 투입해 대규모 전기차 공장인 ‘메타플랜트’를 조성했지만, 전기차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비판적인 입장을 가진 트럼프 당선인의 집권으로 당초 세웠던 전략이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커졌다. 이 같은 상황에서 계열사들의 잇따른 파업으로 주력 차량의 생산이 중단될 경우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부품사 노조의 요구가 지나치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현대모비스는 노조가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모비스위원회’로 현대차에 속해 있기 때문에 동일한 수준의 임금을 요구하는 게 타당한 측면이 있다”며 “반면 부품사의 경우 완전히 다른 회사로 분류돼 비슷하게 임금을 맞춰 달라는 주장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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