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대의 귀농직설] 은퇴하고 시골 농부로 살아가는 법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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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하고 시골에서 살아가자면 사람과 일의 문제가 가장 크게 걸린다.
농부들이 먹고살기 어려워 일용직 노동에 나서지 않을 수 없다는 지적이 있다.
하지만 '작은 일자리'가 널려 있다는 점은 은퇴 귀농자들에게 다행이기도 하다.
그러나 도시에서 하던 일을 그대로 이어갈 수 있는 기회를 시골에서 찾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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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위 분류·포장 일용직으로 근무
농촌, 작은 일자리 많고 접근 쉬워
농사 하나만 하는 사람 거의 없어
건축·경비·놀이공원 등 각양각색
‘멀티 잡’ 뛰며 평범한 이웃촌부로
은퇴하고 시골에서 살아가자면 사람과 일의 문제가 가장 크게 걸린다. 낯선 시골로 가서, 뭐해서 먹고살고, 누구와 어울려 살아갈 것인가. 이 두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일 이야기부터 해보자.
마을농가의 추천으로 일용직 일자리를 얻었다. 키위를 등급별로 분류하고 포장하는 작업장 일이다. 수확철인 10월초부터 두달 동안 작업장이 바쁘게 돌아가는데, 오전 7시30분에 출근해 깜깜한 밤까지 주 6일 노동을 한다. 최저시급 수준의 장시간 근무로 월 300만원 남짓 급여를 받는다.
몸은 키위 작업장에 있지만 내 마음은 벌써 감귤밭에 가 있다. 지난주 하루 쉬는 날에는 미리 점찍어뒀던 이웃 마을의 자투리 감귤밭을 둘러보러 갔다. 감귤 상태가 아주 좋아 즉석에서 ‘계약’을 했다. 잘 아는 사이여서 “덜 받는다” “더 받아라” 밀고 당기다가 조금 넉넉하게 금액을 지불했다.
올여름 귀농 자금을 융자받아 밭을 장만했다. 하지만 감귤나무를 심으려면 이번 겨울이 지나야 한다. 얼마간 소출이라도 기대하자면 또 5년을 키우고 기다려야 한다. 그때까지는 ‘농부 상인’의 길에 나서보려 한다. 직접 지은 농사는 아니지만 이웃의 감귤밭을 확보해 아내와 둘이 감귤을 따서 택배 판매에 나서자는 생각이다. 다행히 4000㎡(1210평) 넘는 두곳의 감귤밭을 더 확보해뒀으니, 지인들에게 택배를 보내기에 넉넉한 양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내년에는 일찌감치 이웃의 밭을 빌려 임차농으로 내가 직접 농사를 짓고 수확한 감귤을 판매하려 한다.
농부들이 먹고살기 어려워 일용직 노동에 나서지 않을 수 없다는 지적이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작은 일자리’가 널려 있다는 점은 은퇴 귀농자들에게 다행이기도 하다. 지난해 수확철에는 이웃 감귤밭에서 제법 일을 많이 했다. 처음엔 자원봉사로 일을 거들다가 차츰 일당을 받는 일꾼이 됐다. 감귤을 담은 20㎏들이 컨테이너 상자를 날라 15만원 일당을 받았다. 마을마다 사업이 있어 또 일자리가 나오고, 노인 일자리도 도시보다 다양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다.
가까운 이웃들을 봐도 농사 한가지만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농사는 기본이고, 건축이나 경비 일을 하거나 놀이공원 직원으로 근무한다. 형편이 나은 이들은 농가 민박이나 식당·카페를 운영한다.
은퇴하고 농부가 되기 위해 가시리마을에서 산 지 2년이 다 돼간다. 여전히 ‘다른 세상에서 사는 사람’이라고 나를 생각하는 이웃들이 많을 것이다. 그래도 감귤농부로, 키위 작업장의 최저시급 노동자로, 이웃들과 같이 ‘멀티 잡’을 뛰면서 나 스스로 평범한 이웃 촌부가 돼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서울에 올라가서 지인들을 만날 때마다 “은퇴해서 시골에 내려가면 뭘 해 먹고살 수 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내가 일하는 이야기를 그대로 해주면, 잘 믿기지 않는 눈치들이다. 잠시 해보는 비현실적인 치기 정도로 치부해버리는 것 같다. 그러나 도시에서 하던 일을 그대로 이어갈 수 있는 기회를 시골에서 찾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먼저 계급장을 버려야 한다.
자신의 경험과 재능을 버리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마을의 고정관념을 무조건 따라가라는 이야기도 아니다. 나 또한 평생의 경험을 살려 마을에 도움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 ‘다른 세상에서 사는 사람’을 스스로 넘어서는 것이 출발점이다.
김현대 농사저널리스트·전 한겨레신문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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