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 구토·어지럼증에 시동도 못 켜… '약물운전' 15초 만에 '쾅'
복시 현상에… 만취 상태보다 운전 어려워
"약물 운전, 음주 단속처럼 강제력 갖춰야"
"앞이 보이지가 않네… 이거 맞아? 어… 어?"
'끼익!'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안전운전하십시오.'
8일 서울 서초구 한국도로교통공단 서울지부 운전 시뮬레이터 앞. 약물운전의 위험도를 측정하기 위해 미국에서 약물 오남용 교육에 사용되는 특수 고글을 끼고 운전대를 잡았다. 이 고글은 운전자가 실제 약물을 먹었을 때 상태를 구현한 것으로, 눈 초점을 기준으로 여러 크기의 점들이 사방에 그려져 있어 하나의 물체가 두 개로 보이는 복시 현상을 겪게 된다. 차가 움직이기 시작한 지 15초 정도 지났을까. 멈춰 서 있는 앞 차량을 별안간 들이받았다. 무사고 경력의 6년 차 운전자지만, 눈앞이 흐리고 원근감이 사라져 차창 너머 상황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다.
서울 도심에서 약물운전 사고가 끊이지 않아 시민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2일 강남에서 8중 추돌 사고를 낸 20대 여성은 사고 당일 '신경안정제'를 복용한 것으로 드러났고, 앞서 지난해 8월 프로포폴을 투약한 롤스로이스 운전자가 행인을 치어 숨지게 한 사건도 있었다. 현행법상 약물 투약 후 정상 운전이 불가능할 우려가 있는데도 운전대를 잡는 건 불법이다.
약물운전이 얼마나 위험한지 직접 느껴보기 위해 체험을 했다. 정확한 비교 분석을 위해 △일반 주행 △음주 주행 △약물 주행 세 가지를 차례로 진행했다. 변속기와 사이드 브레이크 등 차량 기능을 실제처럼 조작하게 설계된 시뮬레이터를 운전해 각 상황 시의 차선 접촉률 등도 점검했다.
약물 체험 고글 쓰니 15초 만에 '쾅'
먼저 ①일반 주행은 별도 설정이나 특별한 착용 기구 없이 시뮬레이터를 작동하는 방식이다. 평소 운전 습관대로 시속 60~80㎞로 운행하니, 코스 종점에 6분 15초 만에 도착했다. 옆차선에서 버스가 갑자기 차선을 변경하는 등 돌발상황이 있었지만, 사고 없이 마무리했다.
②음주 주행은 시뮬레이터 자체에서 면허 취소 수준(혈중알코올농도 0.08%)을 뛰어넘는 만취 상태(0.15~0.2%)를 설정하는 형태로 이뤄졌다. 일반 주행 때처럼 똑같이 페달을 밟으려 해도 예상보다 속도가 빠르게 오르고, 운전대를 조금만 틀어도 방향이 크게 바뀌는 등 차를 제어하기 힘들었다. 차선을 이탈하며 '갈지(之)자' 운행을 하다가 속도를 시속 30㎞ 정도로 줄이고 나서야 그나마 정상적인 운전이 가능했다. 그러나 흐릿하고 흔들리는 화면에, 갑자기 튀어나온 보행자를 치는 사고를 냈다. 운전 종료까지는 7분이 걸렸다.
마지막으로 ③약물 주행은 시뮬레이터 설정은 기본으로 두고 특수 고글을 착용한 주행이다. 고글을 끼자 바로 앞 사물도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운전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핸들 바로 옆 시동 키를 찾는 것마저 어려웠고, 변속기도 손을 여러 번 휘저은 후에야 잡혔다. 겨우 시동을 걸고 출발했으나 15초 만에 앞에 정차한 차량을 들이받았고, 어지러움 증세와 사물이 겹쳐 보이는 현상이 심해졌다. 어느새 핸들에 몸을 바싹 붙어대고 머리는 화면에 최대한 가까이 밀착시키는 불안정한 자세가 됐다. 고글 안 세상은 이전까지 잘 보이던 차량 신호등도 빨간불인지 녹색등인지 헷갈리는 상태로 변했다.
위험 운전은 계속됐다. 시속 20㎞로 서행을 하면서도 가다 서다를 반복했고, 어느 순간 중앙선을 침범해 반대편 차선으로도 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무단 횡단을 하러 뛰어드는 아이들을 인지하지 못하고 두 번째 사고를 냈다. 그렇게 9분 만에 주행은 마무리됐다. 운전이 끝나고도 헛트림과 두통 등 멀미 증세가 한동안 이어졌다.
약물운전의 위험성은 시뮬레이터 수치로도 나타났다. 운행 중 차선과 접촉한 비율을 확인한 결과, 일반 주행 시 왼쪽 차선 접촉 비율은 2.46%, 오른쪽 차선 접촉 비율은 3.54%에 불과했으나 약물 주행 때는 각각 3.48%, 6.44%로 증가했다. 한국도로교통공단 관계자는 "운전 중 접촉 상황을 계속 기록한 그래프를 봐도 약물 주행의 불안정성이 뚜렷하다"고 설명했다.
약물운전 늘고 있지만...강제력 한계
약물운전 사고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약물운전에 의한 면허 취소 사례는 2019년 57명에서 지난해 113명으로 두 배 가까이 뛰었다. 문제는 예방이 어렵다는 점이다. 음주운전은 도로교통법에 따라 운전자를 상대로 강제 측정이 가능하지만, 마약·약물운전에는 강제력을 동원할 법적 근거가 없어서다. 정식 검사를 하려면 법원으로부터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야 하는데, 그사이 운전자는 시간을 벌어 법망을 빠져나갈 가능성이 생긴다. 최윤정 한국도로교통공단 서울지부 교수는 "약물운전은 운전에 필요한 판단력, 반응시간 등을 저하시키는데, 음주운전보다 더 범위와 영향이 다양하다"면서 "약물운전 단속을 강화하고, 관련 법과 규제를 적극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세운 기자 cloud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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