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알짜 사업장에만 PF자금 몰려… 지방은 아직도 ‘부실 늪’
서울 강남서도 미분양 리스크땐… 자금 조달 못해 공매 넘어가기도
지방-수도권 물류센터는 더 열악
건설사 14곳중 11곳 부채비율 악화… “PF재무정보 공적DB 구축 필요”
반면 인근 서울 서초구 반포동 옛 반포쉐라톤팔레스호텔 부지를 고급 주거단지 ‘더팰리스 73’으로 개발하는 현장에는 철거하다가 만 호텔 건물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시행사 더랜드그룹이 2년 전 부지 매입비 등으로 쓴 4050억 원 규모 브리지론(시공 전 단기 자금 조달)의 만기 연장에 실패하면서 사업이 좌초 위기를 맞았다.
부동산 PF 위기를 촉발한 ‘레고랜드 사태’가 일단락된 지 2년이 지난 현재 PF 시장은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금리 인하기와 맞물려 서울 중심으로 대형 건설사가 참여한 우량 사업장에는 자금이 돌고 있다. 반면 지방은 물론이고 서울에서도 미분양 리스크를 해소하지 못한 사업장은 여전히 부실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 입지·사업성·대형 건설사 갖춘 곳만 자금 몰려
최근 자금이 몰리는 곳은 대부분 서울 노른자위에서 추진되는 알짜 사업장이다. 한화그룹 컨소시엄이 추진하는 ‘서울역 북부 역세권 개발 사업’이 대표적이다. 서울역 인근 유휴 철도 용지 2만9093㎡에 오피스, 호텔, 오피스텔 등과 마이스(MICE) 시설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한화그룹 컨소시엄은 지난달 대주단과 2조1050억 원 규모의 본PF(시공 결정 이후 자금 조달) 대출 약정을 체결하고 이달 착공할 예정이다.
자금 조달에 성공한 사업장은 일부일 뿐이다. 서울 도심에서도 미분양 리스크를 해소하지 못한 사업장은 자금 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서울 강남구 고급 오피스텔 ‘청담501’ 개발 사업은 본PF 전환에 실패해 지난해 공매에 넘어간 상태다.
지방의 사정은 더욱 열악하다. 사업비 6조 원이 넘는 전북 전주시 ‘대한방직 개발 사업’은 시행사가 지난달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해 기한이익상실(EOD)이 발생했다. 지급 보증을 선 시공사 롯데건설이 일부 채무를 갚았지만 공사 재개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수도권 외곽 물류센터 사업장들도 위태로운 상황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신선식품 배달 수요가 급증하면서 너도나도 물류센터 개발에 뛰어들면서 빚어진 공급 과잉 상태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상업용 부동산 서비스 기업 ‘젠스타메이트’에 따르면 올해 3분기(7∼9월) 기준 2022년 이후 건축 인허가를 받은 전국 물류센터 사업장 10곳 중 3곳(28.7%)만 착공에 들어갔다.
● 개발사업 주체의 자기자본 비율 3.2%에 그쳐
2년이 지나 세계 중앙은행들이 기준금리 인하에 들어갔지만 PF 부실 리스크는 여전하다. 한국신용평가가 올해 6월 기준 집계한 건설사 PF 보증 규모는 27조1000억 원이다. 이 중 착공 여부, 입지, 분양률 등을 기준으로 위험도를 4단계로 평가한 결과 12조 원(44.3%)이 ‘위험’ 이상 등급이었다.
건설사의 재무구조도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NH투자증권이 국내 코스피 상장 건설사 14곳의 재무구조를 분석한 결과, 올해 상반기(1∼6월) 11곳의 부채비율과 영업이익이 레고랜드 사태 이전인 2022년 상반기보다 악화됐다. 시행사의 지급보증을 선 건설사들이 빚을 대신 떠안다 보니 재무구조가 나빠지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시행사가 과도하게 부채에 의존해 사업을 진행하는 구조에 따라 리스크가 확대되고, 건설사와 금융권에 부실이 전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2021∼2023년 추진된 부동산 PF 사업장 300곳의 경우 시행사가 자기자본을 댄 비중은 총사업비의 3.2%에 그쳤다. 나머지 96.8%는 건설사 등 제3자 보증에 의존한 대출로 충당했다. 황순주 KDI 연구위원은 “사업 주체의 자기자본 비율을 높이고 과도한 건설사 보증 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유인책과 규제가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서는 가장 먼저 부동산 PF 재무 정보를 외부에서 알 수 있도록 공적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이축복 기자 bless@donga.com
오승준 기자 ohmygo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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