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아침드라마가 깨운 일본 '대법관 국민심사제'

김인권 J트렌드 칼럼니스트 2024. 11. 13. 02: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인권 J트렌드 칼럼니스트


일본의 집권 자민당이 지난달 27일 치러진 중의원선거에서 전체 465석의 과반인 233석 확보에 실패했다. 지난 2012년 이후 사실상 자민당 독주 체제를 유지해온 일본 정계가 격랑에 빠져들 것으로 보인다.

이번 선거에서 자민당은 '비자금 스캔들'을 희석하기 위해 이시바 총리로 '당의 얼굴'까지 바꿨지만 제대로 된 정치 개혁안을 내놓지 못한 게 결정타가 됐으며 그 결과 참패로 이어졌다.

한편 중의원선거와 같은 날 동시에 전국민이 선거권을 갖고 투표하는 제도가 있는데 이름하여 '최고재판소 재판관 국민심사'제도다. 일본인들에게는 익숙한 제도이겠지만 외국인들 특히 한국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제도는 최고재판소 재판관(한국 대법원 대법관과 헌법재판소 판사를 합친 존재)들의 운명을 결정한다. 이들 대법관이 적합한 인사인지 아닌지 국민이 직접 평가하는 '국민 심사 제도'로 반대표가 유효표의 과반이면 대법관에서 바로 해임된다. 단 1949년 제도 시행 이래 이 심사로 해임된 대법관은 없다.

총선 투표일이었던 지난달 27일에도 어김없이 일본 대법관 국민 심사가 함께 실시됐으며 이번 투표 대상은 대법관 전체 15명 중 2021년 10월 총선 이후 취임한 대법관 6명이었다. 물론 이번에도 반대표가 과반수가 넘어서 해임된 판사는 없었지만 다소 의외의 결과가 도출돼 관심을 끌고 있다.

10월27일 투표 대상의 재판관 6명 중 4명에 대해 파면을 요구하는 'X'표의 비율(파면율)이 10%를 넘었으며 전체 평균도 10%를 초과했다. '10% 초과'는 2003년부터 전회차까지 총 7회동안 1명도 없었으나 이번에 4명이 넘는 이례적인 결과가 나와서 다들 놀라고 있는 상황이다.

결과 수치를 보면 파면까지 아직 먼 결과이지만 그동안 일반 시민들이 재판이나 재판관에 대해 그다지 관계없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편견을 없애는 수치임에는 충분하다.

그런데 이번에 왜 이렇게 수치가 올라갔을까 의견들이 분분한 가운데 올해 4월에서 9월까지 NHK에서 방영된 일일 연속 드라마 '호랑이에 날개'의 인기를 그 원인으로 꼽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한국 여배우인 하연수씨가 출연해 조선인 차별화 문제도 같이 다뤄져 화제가 됐던 이 드라마는 일본 최초의 여성 변호사로 이후에 재판관이 된 미후치 가코씨의 실제 모델로 한 작품으로서 법률가들이 법의 이념을 가슴에 품고 사회의 불평등에 맞서는 모습이 그려졌는데 대법원 재판관도 주요 등장인물이었다.

일본의 한 매체가 드라마 시청자들 가운데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 그 영향력이 여실히 드러난다. 한 여성은 "법률이 있는 이상, 재판의 결론은 항상 흑백이 확실히 정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드라마를 보고 재판관도 법을 어떻게 해석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알았다"며 이후 미디어들이 만든 국민심사 특설사이트에서 각각 면면을 확인한 후 심사에 임했으며 "이번은 나름대로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었다"고 할 정도로 관심이 높아진 것이다.

또 하나의 원인으로 꼽는 게 정보량 증가다. 이번 국민심사에서는 아사히신문, 요미우리신문, 마이니치신문, NHK 등이 뉴스 사이트 내에 특설 페이지를 공개해 대상 재판관의 앙케이트 응답 등을 소개했다. 이로 인해 국민심사를 상세히 알게 되고 나아가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도 정보를 접할 기회가 늘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또한 지난 2021년 국민심사에서는 부부별 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을 '합헌'이라고 하는 결론을 대법원이 심사 약 4개월 전에 내리면서 국민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었던 와중에 아침드라마가 관심을 높이는데 한몫을 했다고도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한 일본은 연합군 최고사령부의 통치를 받게 된다. 그들은 비민주적이었던 '일본 제국 헌법'을 대신한 새로운 민주적 헌법의 초안을 바탕으로 현행 '일본국 헌법'을 탄생시켰고 그 헌법초안에 있던 국민심사 제도가 실시된 것이다. 그동안 거의 잠자고 있던 유명무실한 '무시무시'한 제도가 한 아침드라마의 인기로 인해 꿈틀거리며 깨어난 사실이 단순히 흥미롭지만은 않다.

김인권 J트렌드 칼럼니스트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