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혔던 영화 연말 대방출… 어쩔 수 없이 맞붙었네
올겨울 극장가는 한국 영화 4파전이다. ‘글래디에이터2′(13일), ‘위키드’(20일), ‘모아나2′(27일) 등 외국 영화 3편이 장악한 11월을 피해 겨울 성수기에 몰렸다. 코로나 이후 극장가에 ‘동시 개봉’은 금기어다. 영화 시장 관객이 줄어 동시 개봉은 동반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 어쩔 수 없는 대결에 나선 것은 만든 지 오래된 이른바 ‘창고 영화’들이 더 이상 개봉을 미룰 수 없는 시점까지 왔기 때문이다. 영화계에서는 “12월 잇따라 개봉하는 4편의 장르가 코미디, 드라마, 역사물 등으로 달라 흥행을 기대해볼 만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화의 힘 통할까, 홍제동 화재 다룬 ‘소방관’
4년 전 촬영을 마친 영화 ‘소방관’(4일 개봉)은 천신만고 끝에 관객을 만난다. 코로나로 미뤄진 개봉이 주연배우 곽도원의 음주 운전과 스태프 폭행 논란으로 아예 불투명해지면서 한때 OTT 공개설까지 나왔다. 마음 고생이 심했던 곽경택 감독(영화 ‘친구’)은 최근 제작발표회에서 “곽도원이 아주 밉고 원망스럽다”며 “본인이 저지른 일에 큰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원래 배급사가 영화 사업을 접으면서 다른 배급사로 넘겨지는 우여곡절까지 겪으며 어렵게 개봉일을 잡았다.
‘소방관’의 무기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실화의 힘이다. 2001년 3월 서울 홍제동 화재 때 주민을 구하려 불길에 뛰어들었다가 순직한 소방관 실화가 소재다. 우리 소방 역사상 소방관 6명이 한꺼번에 숨진 것은 홍제동 화재가 처음이었다. 곽 감독은 “화재 현장이 얼마나 무섭고, 소방관들의 용기가 필요한 현장인지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밝혔다.
◇최초의 배구 영화 통할까, ‘1승’
영화로는 좀체 다뤄지지 않는 스포츠인 배구를 소재로 한 ‘1승’(4일 개봉)은 3년 만에 개봉한다. 영화 ‘동주’(2016)와 ‘거미집’(2023)의 각본을 쓴 신연식 감독이 연출하고, 연기로 손꼽히는 송강호와 박정민이 출연했다. 최약체 배구단을 인수한 재벌 2세 구단주(박정민)가 한 번도 이겨본 적 없는 감독(송강호)에게 1승만 올리면 20억을 준다고 제안하면서 승부가 시작된다. 영상으로 드라마를 펼치기 쉽지 않은 배구를 얼마나 흥미롭게 연출했느냐가 관건이다. 신 감독은 “저도 해보니까 왜 배구 영화를 안 만드는지 알겠더라”라며 고충을 토로했다. 배구연맹에선 적극적으로 지원에 나섰다는 후문이다. 김연경과 김세진 등 여러 선수가 카메오로 출연한다.
◇‘데뷔작으로 천만’ 양우석, 코미디도 잘할까
배우 김윤석이 이북 출신의 30년 만두 맛집 사장으로 나오는 영화 ‘대가족’(11일 개봉)은 첫 영화인 ‘변호인’(2013)으로 천만감독이 됐던 양우석 감독의 신작이다. 외아들이 스님이 되자 대가 끊길 위기의 사장에게 손자를 자처하는 두 아이가 찾아오면서 코미디가 이어진다. 양 감독은 본지 통화에서 “제목의 대가족은 ‘가족에 대하여’라는 뜻의 ‘대(對)가족’”이라며 “과거에 비해 많이 변한 가족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묻고 싶어서 만들었다”고 말했다.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에서 영웅 이순신을 연기했던 김윤석의 코미디 변신이 주목된다.
◇현빈의 안중근, 관객 사로잡을까
한때 영화 사업 철수설까지 나왔던 CJ ENM은 추석 배급작인 영화 ‘베테랑2′가 손익분기점을 가뿐히 넘기며 한숨을 돌렸다. 아직 안심은 이르다. 연말 ‘하얼빈’(감독 우민호) 흥행이 올해 마지막 허들이다. 지난 9월 제49회 토론토국제영화제 상영 당시 평가가 엇갈렸다. 홍경표 촬영감독이 뽑아낸 영상은 비교적 호평을 받았으나 안중근(현빈)과 일본군 모리 다쓰오(박훈)는 지나치게 평면적이라는 혹평도 있었다. 배우의 연기력으로 메울 수 없는 각본상의 구멍이 있느냐가 흥행을 가를 것으로 보인다. 김훈의 소설 ‘하얼빈’과는 무관한 별개 각본이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