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의 오마이갓] 43만 장에서 고른 360점... 마음이 편안해지는 사진들
오른쪽엔 바위가 우뚝 솟아있고 뒤로는 구름이 얕게 깔린 봉우리들이 물결처럼 펼쳐집니다. 화면의 왼쪽으로는 석탑이 서있고 그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곳에만 햇빛이 환히 비치는 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 설악산 봉정암입니다.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5층 석탑 주변의 참배객들은 카메라를 향해 합장(合掌)을 한 것 같아 보입니다.
이 사진은 월간 ‘불광’ 50주년 기념으로 출간된 사진집 ‘찰나의 빛, 영겁의 시간’에 수록된 하지권 작가의 ‘설악산 봉정암 기도객들’이란 작품입니다. ‘불광’ 2008년 9월호에 수록된 사진입니다. ‘찰나의 빛, 영겁의 시간’은 독특한 책입니다. 출판사나 잡지사가 50주년, 60주년을 맞을 때 기념하는 방식은 다양합니다. 월간 ‘불광’을 출간하는 불광미디어는 그동안 잡지에 실린 사진 가운데 골라서 책으로 엮어냈습니다.
불교 종합 교양잡지인 월간 ‘불광’은 1974년 11월호로 창간됐습니다. 산파는 광덕(1927~1999) 스님. 동산 스님을 은사로 범어사로 출가한 광덕 스님은 새로운 불교 문화 운동을 위해 월간 교양잡지를 창간했습니다. 미신(迷信)·기복(祈福) 요소를 배제하고 불교의 본질로 돌아가자는 뜻이었죠. 당시로서는 드물게 불자들에게 불교 공부의 기회를 제공한 잡지였지요. 당시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이라는 중책을 맡고 있던 바쁜 가운데에도 광덕 스님은 직접 원고 청탁·교열까지 다 하고 자신의 원고도 썼습니다. 그렇게 창간한 잡지는 올해 11월, 601호를 발간할 때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매월 발간됐습니다. 잡지를 발간해본 분들은 50년 동안 결호(缺號) 없이 월간지를 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지요.
이렇게 창간된 월간 ‘불광’은 ‘절(사찰)을 세운 잡지’라는 진귀한 기록도 세웠지요. 월간지 독자들이 모여 배움을 나누는 불광법회가 생겼고, 이 모임을 중심으로 법당 건립 운동이 벌어져 1982년 서울 송파에 불광사가 지어진 것입니다.
509쪽짜리 두툼한 분량으로 출간된 ‘찰나의 빛, 영겁의 시간’은 시각 이미지의 시대, 명상과 힐링의 시대에 한국 불교와 문화를 알리는 좋은 안내서가 될 것 같습니다. 50년 동안 잡지에 실린 43만 8000장 가운데 엄선한 360여점이 사진집에 수록됐습니다. 오늘은 독자 여러분의 눈을 시원하게 하고 마음을 맑게 해드릴 사진 몇 장을 위주로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이 사진은 관조 스님이 촬영한 ‘범어사 대중공양’이란 작품입니다. 1992년 12월호에 수록된 사진입니다. 얼핏 헤아려보아도 50명은 넘는 스님들이 큰 방에 모여서 스님들의 식기인 발우를 앞에 두고 합장한 모습입니다. 요즘은 스님들의 숫자도 줄어서 웬만한 사찰에선 이만한 인원이 모여서 공양(식사)을 하는 모습은 보기 힘들다고 합니다. 관조(1943~2006) 스님은 ‘사진으로 사리를 남긴 스님’입니다. 촉망 받은 학승이었던 관조 스님은 1970년대 초반부터 ‘영상 포교’에 나서 평생 20만장의 ‘사리’를 남겼습니다. 스님이었던 만큼 속인(俗人)들이 드나들기 어려운 사찰의 내밀한 공간까지 들어가 렌즈에 담았지요. 이 밖에도 관조 스님은 ‘찰나의 빛, 영겁의 시간’ 표지에 쓰인 범어사의 옛 모습을 촬영한 사진 등 다양한 작품을 ‘불광’에 수록하셨지요.
이 사진들은 윤명숙 작가가 촬영해 각각 2000년 1월호와 6월호에 수록한 작품들입니다. 왼쪽은 직지사에서 촬영한 ‘조계종 행자교육’, 오른쪽은 ‘송광사 방아를 찧은 스님들’입니다. 파르라니 삭발한 행자들의 뒷모습에선 수행에 대한 결기가, 방아를 찧는 스님의 힘찬 모습에선 스스로 생활을 꾸려가는 스님들의 자세가 보입니다. 윤명숙 작가는 송광사 사진에 대해 “점심 공양을 하러 갔는데, 공양간에서 내다보니 스님들이 절구를 찧고 있었어요. 허락도 받지 않고 스님 구역에 들어와서 막 사진을 찍었다고 해서 혼났죠. 하지만 이 장면을 찍을 당시 기분이 정말 좋았어요. 머리를 깎지 않는 이상 볼 수 없는 스님들의 실생활 모습이니까요”라고 말했습니다.
이 작품은 하지권 작가가 촬영한 ‘화엄사 종각’입니다. 2010년 6월호에 실린, 실루엣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이 평안해지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최배문 작가가 촬영한 ‘승복 만들기’입니다. 2018년 9월호에 실렸습니다. 경북 김천 청암사 학인 스님들이 승복을 만드는 과정을 촬영한 작품이지요. 이 사진에는 이런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청암사 학장 지형 스님은 며칠 동안 여름용 적삼과 삼베 바지, 조끼를 재단하고 있다. 옆에서는 상좌스님들이 모여 은사스님의 가위질에 시선이 따라간다. 창호지로 만든 조끼 견본은 큰 것, 중간 것, 작은 것 세 종류다. ‘드르륵 드르륵’ 저 건너편에서는 주지 상덕 스님이 재단된 조끼를 재봉틀로 박음질한다.”
“옛날에는 승복집이 없었어요. 은사가 상좌들 승복을 만들어 줬지요. 대부분의 절집에서는 승복을 만들어 입었어요. 두루마기, 동방, 삼베 바지, 적삼, 조끼 모두 만들었지요.”
자급자족하던 시절의 흔적입니다.
이 사진은 유동영 작가가 촬영해 2024년 8월호에 실린 ‘송광사 선방 수선사의 거울’입니다. 사찰의 선방(禪房)은 내밀한 공간입니다. 선승들이 수행하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수선사에는 둥근 거울이 걸려 있습니다. 수행자들은 이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 봅니다. 이 사진엔 이런 설명이 있습니다.
“수선사 거울은 1969년 구산 방장 스님이 조계총림을 설립하며 걸었다. 테두리는 자전으로 만(卍)자를 넣었다. 수선사 현판과 주련의 통도사 극락암 경봉 스님이 썼다. 수선사는 새벽 3시 도량석보다 이른 2시 30분 행선(行禪)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수선사 선방에는 1년 중 하루도 좌복(수행 방석)이 놓이지 않는 날이 없다. 수선사를 중심으로 동편에 국사전, 서편에 금강계단과 삼일암이 있다. 이들 선방 영역엔 스님들도 함부로 드나들지 않는다.”
‘찰나의 빛, 영겁의 시간’에는 이밖에도 한국 현대 불교사에 큰 족적을 남긴 스님들과 다양한 사찰의 사계와 이모저모가 수록돼 있습니다. 책장을 넘기면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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