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맛과 섬] [215] 진도군 조도 고둥무침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소 먹일 풀을 베어 망태에 가득 담아 놓고 물놀이를 즐겼다. 그러다 지치면 ‘갱번’에 있는 돌 밑에 손을 넣어 ‘대사리’를 주웠다. 어릴 때 살았던 산골 마을에서 냇가를 갱번이라, 다슬기를 대사리라 불렀다. 다슬기는 지역에 따라 고디, 고둥, 올갱이라 부르기도 한다. 시원한 다슬기 된장국을 먹고 난 후 바닥에 가라앉은 다슬기는 탱자나무 가시로 속살을 꺼내 먹었다. 진도군 조도면에 있는 작은 섬에서 그동안 잊고 지낸 어린 시절 기억이 소환되었다.
조도면은 150여 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조도는 옹기종기 새 떼처럼 섬이 모여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하조도에는 아름다운 등대가 있고, 상조도에는 많은 섬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다리로 연결된 두 섬은 조도면 중심이다. 고둥 무침을 만난 섬은 조도면에서도 아주 작은 소마도, 독거도, 맹골도 등이다. 인기척이 드문 소마도 골목을 거닐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집 앞에 멈췄다. 그리고 까치발로 안을 기웃거리다 고둥을 삶는 어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커다란 솥을 걸고 한 말쯤 되는 고둥을 삶는 중이었다. 당신 밥상에만 올리기에 너무 많다. 내친김에 집 안으로 들어서서 고둥을 시장에 팔 것이냐고 묻자, ‘속살만 꺼내 반찬도 하고, 냉동 보관해 명절에 자식들 오면 주기도 할 것’이라고 했다. 저 많은 고둥을 줍느라 얼마나 허리가 아팠을까.
조도면의 많은 섬에서는 고둥이 자라는 해안을 ‘갱번’이라고 부른다. 바닷물이 들고 나는 조간대로 돌이나 갯바위가 많다. 이곳에서 돌미역, 우뭇가사리, 돌김, 톳이 자란다. 봄부터 여름까지는 해조류를 뜯고, 가을에는 고둥을 줍는다. 해조류는 말려 시장에 팔았고, 고둥은 삶아 반찬을 했다. 이들에게 갱번은 텃밭이었다. 바쁠 때 텃밭에서 채소를 뜯어 얼버무려 상에 올리듯, 섬에서는 해조류를 뜯고 고둥을 주워 반찬을 만들었다. 일 년 농사나 다름없는 돌미역을 채취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부추를 송송 썰어 고둥 무침을 만들어 냈다. 마을에 크고 작은 일을 치를 때도 고둥 무침은 단골이다. 이렇게 이용하는 고둥은 대수리, 갯고둥, 창고둥, 팽이고둥, 눈알고둥 등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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