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술-쇼핑 등 중독은 뇌회로 바꾸는 질환… 뇌자극 통한 치료 연구중[이진형의 뇌, 우리 속의 우주]

이진형 미국 스탠퍼드대 생명공학과 교수 2024. 11. 12.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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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물질 중독 넘치는 시대… 중독됐다는 사실 인식 어렵고
혼자서 극복하기도 쉽지 않아… 뇌 변해 다시 중독되는 경우 많아
치료법도 몸 안의 약물 해독 등… 스스로 극복하도록 도와주는 식
이진형 미국 스탠퍼드대 생명공학과 교수
《최근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일이다. 식당에서 지인을 만나고 온 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줌 강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찍 일어나서 강연을 준비하려 했는데, 생각하지 못한 사태가 발생했다. 휴대전화가 보이지 않았다. 늘 이런 일이 있기 때문에 오늘도 그런 날 중 하나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일상적인 수색을 모두 마쳤는데도 휴대전화는 나타나지 않았다. “화장실에 있나? 핸드백에 있나? 책상에는 없는데, 침대 속에 있나?”》
패닉이 시작되었다. 당황스럽고, 아무 일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모든 가능성을 타진하기 시작했다. “택시에 두었나?” 다행히 택시 영수증에 전화번호가 있었다. 기사님께서 친절히 받아주셨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휴대전화가 없다”고 하셨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강연 시간이 되어 시작했지만, 강연도 집중할 수 없었다. 솔직히 고백했다. “어제 휴대전화를 잃어버려서 잠도 못 자고 패닉에 빠져 있다”라고. 다행히 많은 분이 이해해 주셨다. 그래도 이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강연 후 전날 다녀온 식당이 문을 열었을 때 전화해 보니 다행히 휴대전화는 식당에 있었다.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고, 마음은 한결 안정을 찾았다.

이런 경험에 공감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다. 지하철에 가보면 모든 사람이 서서도, 앉아서도 휴대전화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만원 지하철에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도 소셜미디어의 여러 콘텐츠를 돌려보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식당에서 함께 마주 앉아 있는 사람들조차 각자 휴대전화를 보기에 여념이 없다. 휴대전화 중독 현상이 아닐까 한다.

중독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하나는 휴대전화, 도박, 게임, 쇼핑 중독 등과 같은 행동 중독이고 다른 하나는 알코올, 카페인, 니코틴, 마약과 같은 것에 중독되는 물질 중독이다. 중독의 증상은 다음과 같다.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 없고, 갈수록 더 많은 행동이나 물질을 필요로 하고, 중독된 행동이나 물질에만 집중적인 관심을 가지고 정신적·신체적 건강상의 문제가 생김은 물론이고 금단 현상을 경험하기도 한다.

인간의 뇌는 긍정적인 행동에 대한 보상을 해주도록 만들어져 있다. 보통은 건강한 행위, 즉, 좋은 음식을 먹거나 좋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면 ‘도파민’이라는 신경 전달 물질이 뇌에서 나오고 그것이 우리의 기분을 좋게 함으로써 좋은 행동을 보상한다. 그런데, 자극적인 행동이나 물질은 과도한 도파민을 만들기 때문에 그로 인한 쾌락은 그 행동이나 물질의 지배를 받게 하는 중독 현상으로 이어진다.

아주 흥미로운 실험 중에 이런 것이 있다. 쥐에게 자신의 뇌에 도파민을 직접 분비하게 할 수 있는 버튼을 누를 수 있도록 해주었더니, 그 쥐는 그 도파민 버튼을 누르느라 정신이 팔려서 밥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는다. 이 쥐는 행동이나 약물 없이도 뇌에 쾌락을 주는 버튼을 직접 조절할 방법을 갖게 된 것이고, 결국 중독에 빠져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 쥐를 이 상태로 계속 두면 죽게 될 것이다.

우리는 흔히 중독자들을 의지가 박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중독은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데, 의지가 약해서 극복하지 못하는 것이라 하며 중독자를 나약한 사람으로 치부한다. 중독은 의지로 극복할 수 있고 성공 사례들도 있다. 하지만 “담배를 끊은 사람과는 친구 하지 말라”라는 말이 있을 만큼 중독을 스스로 극복하는 것은 여간 독하지 않고선 어려운 일이다. 중독은 뇌 질환이다. 중독에 빠지면 뇌의 회로가 변한다. 이를 스스로 극복한다는 것은 뇌가 “담배를 피우라”라고 명령하는 것을 스스로 막아야 한다는 뜻인데, 이는 뼈를 깎는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수반한다. 따라서 대부분 중독 환자는 이를 스스로 극복하기 어렵다.

또한, 많은 경우에 내가 중독돼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다. “나는 휴대전화를 손에서 뗄 수 없지만, 내가 선택하면 언제든지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과연 그럴까? 중독을 측정할 수 있는 명확한 방법은 다른 뇌 질환과 마찬가지로 현존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중독인지 명확히 진단할 수가 없고, 많은 경우에 인정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게다가 치료 방법도 스스로 극복하는 것을 도와주는 식뿐이다. 약물의 경우 해독 치료를 통해 몸 안의 약물을 제거하고, 우울증이나 조울증 같은 증세가 있으면 이를 완화하는 약물 치료를 하고, 재활치료소에서 약물의 유혹 없이 의료진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장기간 생활하게 하는 방법이 있다. 영화에서 흔히 보는 중독 극복 모임을 통해 노력하는 사람끼리 서로를 격려하고 도와주는 방법도 쓰인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회복이 되더라도 다시 중독되는 경우가 많다. 중독으로 이미 뇌의 변화가 일어난 경우, 다시 유혹에 노출되었을 때 다시 중독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극복을 위한 최선책은 중독으로 생긴 뇌 회로의 변화를 알아내고 빨리 그 변화를 되돌려 놓는 것이다. 중독이 어떻게 뇌 회로의 기능을 바꾸는지에 대한 연구는 현재 활발히 진행 중이고, 많은 부분이 규명되고 있다. 이러한 연구는 뇌 회로의 변화를 직접, 정확하게 측정해서 진단할 수 있게 할 것이다. 더불어 뇌 자극술 같은 치료를 통해 뇌를 원래대로 복구하는 방법도 가능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중독의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 모두 무언가에 중독된 환자일 수도 있다. 중독에 대한 명확한 이해는 앞으로도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이진형 미국 스탠퍼드대 생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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