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일보가 바라본 '함박마을' 고려인은 어떻게 달랐나
[2024 지역신문 컨퍼런스] "다문화인들 다루는 표면적, 자극적 기사에서 탈피해 새로운 시각 제시"
'노천박물관' 경주, 훼손 위기의 '비지정 문화유산' 실태 추적한 경주신문
[미디어오늘 윤유경 기자]
인천 연수구 문학산 자락에는 14개국 사람들이 모여 사는 '함박마을'이 있다. 함씨와 박씨가 많이 살아서 '함박마을'이라는 이름이 만들어졌는데, 최근엔 고려인이 함박마을 인구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그 숫자가 증가했다. 인천 남동국가산업단지와 가까운 지리적 접근성, 다가구 주택이 많은 지역적 특성이 고려인들을 함박마을로 모이게 했다. 함박마을 동네 곳곳의 이야기를 담아낸 인천일보 특별취재팀 기자들은 이번 기획을 “함박마을을 아직 잘 모르는, 함박마을 밖 사람들을 위한 마을 설명서를 적어내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다문화인들 다루는 표면적, 자극적 기사에서 탈피해 새로운 시각 제시”
인천일보 기자들은 지난 8월 <함박마을 사람들의 일상으로 초대합니다> 프롤로그로 '함박스탄' 기획의 포문을 열었다. 함박스탄은 함박마을의 앞 글자와 중앙아시아, 서남아시아 일대 지명에 자주 붙는 접미사인 '스탄'을 붙인 기획명이다. 프롤로그에는 독자들에게 보내는 초대장을 그렸다. 함박마을 지도를 기반으로 한 초대장에는 '함박스탄' 프롤로그부터 에필로그까지 기획기사 총 10편의 주요 장소들이 담겨있다.
지난 8일 '2024 지역신문 컨퍼런스' 발표에 나선 김원진 인천일보 기자는 “기획기사는 길다. 기사마다 꼭지마다 내용도 달라서 찾아보기가 힘들다. 언론 중심적 기획 전개라고 생각했다”며 “읽히기 위한 기획을 하려면 한 장면을 봤을 때 기획이 설명돼야 한다는 생각에 초대장을 만들었다. (기획 참여) 팀원이 총 7명인데 이를 위해 그 중 2명을 편집기자들로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함박마을이 위치한 연수1동 인구 1만6000여 명 중 고려인 인구는 1만 여 명으로 추정된다. 함박마을 고려인 주민 수는 2016년과 2022년 두 차례 급증했는데, 구소련 국가의 경제 상황 악화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이유로 한 현지 사정 때문이었다.
국내 최대 고려인 마을인 함박마을을 보도하는 언론의 시각은 단편적이었다. <인천지법, 함박마을서 외국인에게 칼부림 한 30대 男 징역형>, <외국인 대상 흉기 사건에 인천 함박마을 주민들 '조마조마'> 등 외국인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담긴 사건 보도가 대부분이었다. 김원진 기자는 “다문화인들을 다루는 기사들은 표면적이고 자극적이다. 다큐멘터리적 구성으로 접근해 개인에 치중하거나 갈등적이고 자극적인 기사들이 많다”며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려 했다”고 말했다.
옴니버스식 구성의 기획 보도는 각 편마다 어린이, 노년 세대, 골목 경제 등 사회 현안을 담아냈다. 정치부, 경제부, 문화부, 편집부 등에서 모인 5년차 이상 15년차 이하 기자들이 각자 자신 있는 분야를 맡아 기사를 썼다.
1편의 제목은 '함박마을의 여름방학'이다. 여름방학 기간 함박마을의 유일한 놀이터인 마리어린이공원에서 만난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함박마을에 초등학교 두 곳이 있는데, 1학년의 약 70%가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다. 김 기자는 “함박마을의 온 동네 아이들이 어른 보호자 없이 마리어린이공원에서 뛰어 논다. 피터팬에 나오는 네버랜드 같았다”며 “어린 아이들끼리 아침부터 저녁까지 공원에서 뛰어 놀고 있다는 건 그 시간에 부모님들은 다른 걸 해야 한다는 뜻이다. 맞벌이 부부들이 많아 아이들의 보육이 방치되고 있는 점을 담았다”고 말했다.
2편에서는 장애를 가진 자녀를 홀로 키우는 이혼 여성의 이야기를 담았다. 지난해 인천에 사는 신혼들 이야기를 인스타툰 작가들과 협업해 보도한 '신혼N컷' 기획을 차용해 이번에도 인스타툰 작가와 협업했다. 기사는 인터뷰 형식이 아닌 단편소설 형식을 택했다. 이밖에도 선주민들과 고려인들이 함께 고려인식 만두 '만띄'를 만드는 함박종합사회복지관 요리 나눔 프로그램 현장을 방문해 이들의 관계성과 커뮤니티의 중요성을 주목했다. 고려인들 반찬을 판매하는 함박마을 반찬가게를 통해서는 함박마을의 골목경제를, 한국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17살 고려인 '크리스티나'를 통해서는 함박마을의 미래를 담았다.
김 기자는 “인천일보는 지역신문이니까 함박마을에 대한 시선을 집중시킬 수 있는 힘이 있었고, 기존과 다른 시도를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 기자는 “올해는 한인 러시아 이주 160주년을 맞는 해이다. 인천 함박마을에 사시는 분들의 조상들도 다 한국 분들이었는데, 에필로그에서는 인터뷰했던 고려인들의 가족사진을 엮어 사진첩을 만들었다”며 “고려인과 한국인은 결국 돌아 돌아 원이라는 뜻을 담아 사진첩으로 기획을 마쳤다”고 말했다.
김 기자는 “다문화에 대한 찬반 논리는 지난 시점인 것 같다. 서울과 경기의 주요 도시뿐만 아니라 인천을 포함해 부산, 대구 등에서 (다문화라는) 변화가 10년이 넘었는데, 내가 본 다문화 기사들 중에서는 지역성을 담은 기획은 많지 않았다”며 “함박스탄 같은 기획이 있다면 기존 언론이 사용하는 언어에 더 많은 스펙트럼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천박물관' 경주, 훼손 위기 놓인 비지정 문화유산 실태 추적한 경주신문
경북 경주는 전역에 국가나 도에서 지정한 문화유산이 많아 '노천박물관 경주'라고도 불린다. 올해 1월 기준 국가 지정 문화유산 현황을 살펴보면, 국가 지정 문화유산 총 5210개 중 경주시가 245개(약 4.7%)를 보유하고 있다. 아울러 유네스코에 등재된 국내 세계유산 총 16건 중 경주에 위치한 게 4건이다.
국가·도 지정 문화유산과 세계유산은 국가유산청과 경주시 관리로 잘 보존되고 있지만, 비지정 문화유산 중 일부는 훼손 위기에 놓여있다. 같은 날 '2024 지역신문 컨퍼런스' 발표에 나선 지역 주간지 경주신문 이상욱 편집국장은 비지정 문화유산을 관리할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 편집국장은 “문화유산을 관리하는 문화유산과 직원은 경주시 공무원 1800여 명 중 22명에 불과하다. 경주시의 국가 및 도지정문화재는 368건인데, 직원 한 명당 16.7건의 지정 문화유산을 관리하는 셈”이라며 “문화 유산을 정비하는 정비팀원은 고작 5명”이라고 지적했다.
비지정 문화유산을 관리하기 위한 예산은 없다. 올해 경주시 기준 국가 지정 문화유산의 보수 예산은 251억 원, 도 지정 문화유산 보수 예산은 6억8500만 원인데, 비저정 문화유산은 0원이다. 예산을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인 조례가 제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경주신문은 경주의 비지정 문화유산 실태를 기획 보도했다. 조선 순조 2년(1802년)에 세워진 '효부손씨·효부최씨 양세정려각'과 서예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사용되고 있는 '효자 최치백 정려비'는 지붕 기와가 떨어지거나 나무 살대가 파손되고, 담장이 기울어지는 등 관리되지 못한 채 수년째 방치되고 있다.
이 국장은 “보도를 통해 지역 내에선 비지정 문화유산 관리의 심각성이 널리 알려졌다”며 “지난 6월 경주시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는 경주신문 보도를 바탕으로 경주시의 부실한 관리 실태를 지적했다”고 말했다. 또 “경주시의회 의원 발의로 '경주시 향토문화유산 보호·관리 조례'를 제정하자는 움직임이 있었다”며 “9월에는 경주시의회 문화도시위원회 위원장이 경주신문과의 영상 인터뷰로 조례안 제정을 약속했고, 현재 조례안을 만들고 의원 찬성 서명을 받아 조례 제정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경주신문은 조례가 제정된 후에도 훼손된 비지정 문화유산을 보수·정비할 수 있도록 감시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이 국장은 지역신문발전위원회(지발위) 지원사업을 통해 기획보도를 이어갈 수 있었다며 “과거에 수행한 지원사업을 어떻게 재활용해서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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