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화이부동]왜 윤석열은 자신을 비하할까

기자 2024. 11. 1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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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되기 전 윤석열은 반대 진영에서 ‘오만방자’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대통령이 된 후엔 대통령을 향해 오만방자하다고 말하는 게 방자하게 여겨지는 걸 의식해서인지 ‘오만방자’는 많이 사라졌지만, ‘오만’하다는 비판은 여전히 건재했다. 좋게 말하자면, 오만하다는 건 자신감이 흘러 넘친다는 뜻이다. 대통령이 되기 전 그의 그런 모습에 반한 유권자들도 적잖이 있었으리라.

윤석열이 자신의 캐치프레이즈가 된 ‘공정과 상식’의 실천을 위해 오만했더라면 어땠을까? 그의 인기는 치솟았겠지만, 불행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집권 후 ‘공정과 상식’을 훼손하는 일을 많이 저질렀으며, 특히 부인 김건희와 관련된 일에선 더욱 그랬다. 그런 의미에서 이른바 ‘명태균 게이트’는 오래전부터 예고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몇 가지 주요 사건을 복기해보자.

윤석열은 2021년 11월5일 국민의힘 대선 후보 수락연설에서 “윤석열 사전에 ‘내로남불’은 없다”고 선언했다. 나는 한 달 후 쓴 칼럼에 “윤석열의 사전은 ‘ㄴ’ 항목이 통째로 찢겨져 나간 사전이었던가 보다. 그가 김건희 의혹 사건에 대해 그간 보인 반응은 의심할 바 없는 내로남불이었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김건희 문제가 나오기만 하면 이성이 마비되곤 하는 윤석열의 ‘김건희병’은 대통령이 된 후 더 심해졌다. 나는 2022년 7월에 쓴 칼럼에서 “윤석열에겐 아내의 문제에 관한 한 공사 구분을 할 뜻도, 능력도 없는 것 같다”며 “윤석열은 오직 ‘건희의 남자’로만 만족하겠다는 건가?”라고 물었다. 김건희가 스스로 만들어낸 이런저런 ‘사고’는 끊임없이 터졌다. 나는 2022년 9월 칼럼에서 윤석열을 향해 이렇게 따져 물었다.

“아무리 영세한 자영업에 뛰어든 사람이라도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가족을 떠올리며 목숨을 걸다시피 하면서 성공하려고 발버둥을 친다. 그런데 일국의 대통령이 된 사람이 최선을 다하느냐의 문제 이전에 자신에게 큰 정치적 타격이 될 수 있는 일들이 벌어져도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무신경하게 방치한다. 워낙 둔감과 무신경의 극치를 치닫는지라 엽기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이다. 그는 도대체 왜 대통령이 되려고 했던 건지 궁금해진다.”

2023년 7월 ‘서울~양평고속국도’ 특혜 의혹 사건이 터지자, 나는 “도대체 특별감찰관은 어디로 갔는가?”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윤석열은 대선에서 승리한 직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특별감찰관제 재가동을 지시했지만, 이건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누군가의 입김이 작용했을까? 나는 칼럼에 이렇게 썼다. “윤석열은 김건희와 처가에 대한 감시와 통제는 패륜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 사람이 왜 무서운 공적 엄중함을 요구하는 대통령을 해보겠다고 나섰는지 모르겠다. 그는 손 흔드는 의전에만 만족할 뿐 대통령을 잘해볼 뜻은 없는 걸까?”

2023년 11월27일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다. 김건희의 사무실에서 명품백이 전달되는 장면을 찍은 ‘몰카’ 영상이 한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된 것이다. 1년2개월 전인 2022년 9월13일에 촬영된 것인데, 그날은 ‘김건희 특검’ 찬성 여론이 높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된 날이었다. 엽기적인 ‘정치공작’이었지만, 국민이 더 놀란 건 71억원의 자산가이자 대통령 부인이라는 사람이 크게 화를 내면서 명품백을 돌려준 게 아니라 받았다는 사실이다.

윤석열의 ‘김건희 병’은 중증

2023년 12월8일 한겨레 논설위원 강희철은 칼럼에서 윤석열의 옛 동료들이 토로한 걱정과 우려의 말을 전했다. “ㄱ 전 검사장을 비롯해 그간 여사 문제를 거론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대통령에게 손절을 당했다. 누가 감히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겠나.” “대통령이 이혼할 각오를 하지 않는 한 여사 문제는 정리 못할 것이다.”

사흘 후 새로운선택 창당준비위원장 금태섭도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윤석열의 ‘김건희병’이 중증임을 증언했다. “제가 (대선) 캠프에서부터 보면 그건(김 여사 이야기는) 정말 금기고, (당시) 제가 몇번 얘기했는데 (윤석열이) 말씀을 안 들으셨다.” ‘캠프 때도 김 여사 문제를 지적했다는 말인가’라고 사회자가 다시 묻자, 금태섭은 “그렇다”며 “그렇게 얘기를 했는데 전혀, 화를 내면서 그냥 넘어가 버리는데, 정말 이걸 깨지 않으면 선거를 치를 수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아일보 대기자 이기홍의 칼럼(2024년 10월4일)에 따르면, “김 여사는 자신이 윤석열 정권 탄생에 상당한 지분이 있다고 여긴다고 한다. 예를 들어 남편이 검사 시절 정치적 탄압에 의해 좌천됐을 때 로펌에서 고액 보수를 제시하며 영입하려 했는데 자신이 검사의 길을 계속 가도록 설득하는 등 고비마다 자신의 조언이 남편을 오늘로 이끄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김건희에 꽉 잡힌 윤석열”을 다룬 시사저널 기사(2024년 10월11일)에 따르면, 최근 윤석열이 ‘여사 리스크’를 해소하라는 검사 선배들의 조언에 “제가 집사람한테 그런 말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라며 손사래를 쳤다고 한다. ‘처지’라는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그의 처지는 어떤가. 한겨레 뉴스총괄부국장 신승근의 칼럼(2024년 10월22일)에 따르면, “정치 경험이 일천하고, 통장 잔고 2000만원인 윤 대통령을 결혼 상대로 점찍고, 가족은 물론 자신의 인맥을 총동원해 대통령을 만들어준 여사에게 윤 대통령이 의존적이라는 설명이다”.

자존감과 자기애 회복하길 기대

크게 성공하고 나면 부인의 공을 잊고 배신하는 남자들이 많은 세상에서 윤석열의 그런 일편단심은 긍정 평가할 점이 있지만, 이는 그가 내내 사적 영역에 머물렀을 때에만 그럴 뿐이다. 공적 마인드가 전혀 없는 부인이 불법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국정농단의 소지가 큰 일을 해도 그걸 방관하거나 고무 찬양하는 게 의리를 지키는 일인가? 도대체 대통령직을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그런 어리석고 위험한 생각을 했을까?

오만한 사람은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까지 오만할까? 그렇진 않다. 오히려 정반대의 모습이 감춰져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가능성이 높다. 일부 전문가들은 “오만한 겉모습 배후에는 과시와 신경증적인 자만으로 연약한 모습을 가려 보려는 유약한 자아, 불안정한 자아가 자리하고 있다”(미국 심리학자 테리 쿠퍼)거나 “교만과 자기 경멸은 동전의 양면이다”(독일 정신분석가 카렌 호나이)라고 말한다. 윤석열도 ‘유약한 자아’로 인한 ‘자기 경멸’ ‘자기 비하’가 심했던 건 아닐까?

윤석열이 자신의 성공 이유를 김건희에게 돌리면서 그의 뜻에 복종한 것도 바로 그런 자기 비하 때문이었을 게다. 그가 사법시험 9수를 하면서 어떤 상처나 트라우마를 갖게 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김건희를 자신의 구원자처럼 여긴 건 자신에게는 물론 김건희에게도 큰 불행이다. 그건 결코 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선에서 김건희는 윤석열에게 호재가 아니라 악재였다. 그것도 매우 큰 악재였다. 그는 김건희 때문에 이긴 게 아니라 김건희에도 불구하고 이긴 것이다. 여유 있게 이길 거라는 전망이 아슬아슬하게 이긴 결과로 나타난 것은 그만큼 ‘김건희 리스크’가 심각했기 때문이다. 그가 높이 평가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김건희의 정치적 감각과 전략은 수준 이하이며 매우 위험하다는 게 입증되었음에도, 그는 자신을 믿지 못한 채 극단적인 자기 비하를 하면서 김건희를 자신의 우상으로 섬기고 말았다. TV토론에 나가기 전 손바닥에 왕(王) 자를 쓸 것을 요구한 사람이 김건희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설마 그것마저 자신의 승리에 기여했다고 믿는 걸까?

김건희가 윤석열을 함부로 대한다는 건 수많은 녹취를 통해서도 드러난 사실이다. 그런 구박을 받으면서 길들여진 것인지는 전문가들이 살펴볼 문제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윤석열은 자신을 비하하며, 그런 자기 비하는 자학의 수준에 이를 정도로 심하다는 사실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가 대통령이 되기 전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발언들을 대선 후에 아무런 설명도 없이 다 쓰레기통에 내던지면서 오히려 역행하는 길로 치달은 걸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 그가 불통의 아이콘이 된 것이나 자주 자화자찬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경청과 성찰도 자존감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가 자신의 개인적인 삶을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자존감과 더불어 자기애를 회복하길 바랄 뿐이다.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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