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도설] 농단과 도움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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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단(壟斷)이라는 말은 '맹자-공손추장구'에 처음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일 '대국민 담화 및 기자회견'에서 김건희 여사가 대통령을 도운 것을 국정농단이라고 한다면 국어사전을 다시 써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해 이 말이 다시 입길에 오르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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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단(壟斷)이라는 말은 ‘맹자-공손추장구’에 처음 나왔다. 맹자가 제나라 선왕을 돕기로 하고 여러 가지 국정 개혁 방안을 건의했다. 하지만 그가 이를 듣지 않자 맹자는 제나라를 떠나려고 했다. 그러자 선왕이 높은 자리를 줄 테니 떠나지 말라고 달랬다. 그럼에도 맹자는 “제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데 재물을 독차지(농단)할 수 없다”고 거절했다. 그러면서 깎아 세운 듯이 높은 언덕(농단)에 올라 시장의 이익을 독차지한 한 상인의 얘기를 전했다. 이런 천한 상인처럼 자신을 욕보이려고 하느냐며 돌려 비판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일 ‘대국민 담화 및 기자회견’에서 김건희 여사가 대통령을 도운 것을 국정농단이라고 한다면 국어사전을 다시 써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해 이 말이 다시 입길에 오르내리고 있다. 윤 대통령은 김 여사의 국정 관여 의혹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대통령 부인이 대통령을 도와 선거 좀 잘 치르고 국정도 남들한테 욕 안 얻어먹고 원만하게 잘하길 바라는 그런 일을 국정농단이라고 한다면 그건 국어사전을 다시 정리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국정농단이 표준국어대사전에 한 단어로 나오지는 않는다. 합성어여서 국정과 농단으로 나눠 설명하고 있다. 국정은 ‘나라의 정치’를 의미한다. 이건 쉽다. 문제는 농단이다. 농단은 원래 ‘깎아 세운 듯한 높은 언덕’을 말한다. 하지만 ‘맹자’에서 알 수 있듯이 ‘높은 자리에 올라 이익이나 권리를 독차지함’을 뜻한다. 결국 국정농단의 사전적 의미는 ‘권리를 독점해 나라의 정치를 좌지우지한다’는 것이다.
어떤 국민이 대통령의 이런 발언을 두고 국립국어원에 공식 질의했다. 지난 7일 온라인게시판에 ‘김 여사의 행위를 국정농단이라고 칭할 수 있는지 국어원의 공식 입장을 요청합니다’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국민’이라고 밝힌 이 게시자는 대통령의 부인은 헌법상 어떠한 직위도 없는데 선거와 국정에 개입하려 했다면 이 같은 행위를 국정농단이라고 칭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국어원은 답글 형태로 “온라인게시판은 어문 규범, 사전 내용, 어법에 대해 묻고 답하는 공간으로 어떤 특정 행위가 국정농단에 해당하는지를 답변하기 어렵다”고 했다.
김 여사와 관련된 의혹은 국회의원 공천 개입 등을 언급할 필요도 없이 많다. 국어사전을 다시 써야 할지의 여부는 그렇게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최현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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