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가 무너진 곳에서는 싸우는 것이 정의다

고명섭 기자 2024. 11. 12.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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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섭의 카이로스
플라톤은 혁명이 일어나는 원인을 ‘불균형’에서 찾았는데, 이때의 불균형은 통치자의 ‘능력’과 ‘지위’ 사이의 불균형이다. 작은 배가 큰 돛을 달면 뒤집히고 말듯이, 작은 인물이 큰 공직을 맡으면 모든 것이 뒤집히고 만다. 지금 이 나라를 두고 하는 말 같다. 알크마이온식으로 말하면 참주가 멋대로 헤집고 다닌 탓에 몸에 큰 병이 든 꼴이다.
고대 그리스 자연철학자 아낙시만드로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에 관하여’라는 저작에서 고대 그리스판 ‘대홍수 신화’를 이야기한다. 세상이 사악한 인간으로 넘쳐나자 제우스가 홍수를 일으켜 인간 세상을 쓸어버리려 마음먹었다. 제우스의 뜻을 안 프로메테우스가 심성 바른 아들 데우칼리온에게 커다란 배를 만들라고 일렀다. 데우칼리온은 방주를 지어 아내 피라와 함께 탔다. 아흐레 밤낮을 홍수에 떠밀려 다니던 데우칼리온 부부는 파르나소스산에 다다랐고 이곳에 내려 살아남은 데 감사하는 제사를 지냈다.

거기서 두 사람은 ‘어머니의 뼈를 어깨 너머로 던지라’는 신탁을 받았다. 데우칼리온은 신탁을 옳게 해석해 ‘어머니 대지의 돌’을 집어 던졌다. 그 돌(laas)에서 사람들(laos)이 나왔다. 새 인류의 조상이 된 사람들은 먼저 생활에 도움이 되는 기술을 재발명하고 이어 나라(폴리스)를 이끄는 데 필요한 법을 만들어냈다. 사람들은 이 법의 창안을 ‘지혜’라고 불렀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 일곱 현인’이 시민에게 나누어준 지혜가 바로 그 지혜라고 말한다.

그 일곱 현인 중 한 사람이 그리스 최초의 자연철학자로 불리는 탈레스(기원전 624~546)다. 탈레스는 소아시아 이오니아 지방 밀레토스 사람이었다. 밀레토스는 그리스 본토 사람들이 기원전 10~8세기에 이주해 세운 자유도시의 하나였다. 탈레스가 나라의 법을 창안한 현인에 속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생각하면, 탈레스를 시조로 하는 자연철학이 자연에 관한 철학만은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자연철학의 ‘자연’은 인간과 사회를 포함한 모든 것의 ‘본성’을 뜻한다. 그 탈레스 밑에서 밀레토스 학파가 나왔는데, 이 학파 사람들 중에 가장 주목받는 이가 탈레스의 제자 아낙시만드로스(기원전 610~546)다. 아낙시만드로스는 그리스인 가운데 처음으로 책을 써서 자신의 생각을 대중에게 알렸는데, ‘자연에 관하여’라는 책도 그중 하나다.

탈레스는 우주의 바탕이 되는 시원 물질을 ‘물’이라고 생각했고 아낙시만드로스의 제자 아낙시메네스는 시원 물질을 ‘공기’라고 생각했다. 스승과 제자의 생각에 반대해 아낙시만드로스는 만물의 기원이 되는 것을 ‘아페이론’(apeiron)이라고 주장했다. 아페이론이란 ‘규정되지 않은 것, 한정되지 않은 것’이라는 뜻이다. 시원 물질은 물이라든가 공기라든가 하는 특정하게 규정된 물질이 아니라, 그렇게 규정되고 한정되기 이전의 어떤 무규정적인 것이다. 이 규정할 수 없는 물질이 소용돌이치면 거기서 축축한 것(물)과 메마른 것(흙), 뜨거운 것(불)과 차가운 것(공기)이 나온다. 이 네가지 원소가 얽히고설켜 우주 만상이 펼쳐진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이렇게 펼쳐지는 만상을 다음과 같은 은유로 묘사했다.

“사물은 자신이 생겨났던 곳으로 돌아가 소멸해야 한다. 왜냐하면 사물은 자신이 저지른 불의(adikia)에 대해 시간의 질서에 따라 처벌(정의, dike)을 받고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만물은 아페이론에서 태어난 원소들, 곧 물·불·공기·흙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원소들 가운데 어느 하나가 헤게모니를 장악해 다른 것을 제압할 때 사물이 생겨난다. 그렇게 생겨난 사물은 시간이 지나면 해체될 수밖에 없다. 이런 자연의 과정을 아낙시만드로스는 ‘불의’와 ‘정의’라는 윤리적 언어로 설명한다. 특정한 원소가 다른 원소들을 일방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한 일이기에 마침내 해체됨으로써 벌을 받는다는 것이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이런 생각을 어디서 얻었을까? 이 독특한 발상의 출처를 보려면 밀레토스의 정치적 경험을 살펴야 한다. 아낙시만드로스의 고향 밀레토스는 이주자들이 모여 세운 평등한 폴리스였다. 그곳의 정치체제는 왕과 같은 지배자가 민중 위에 군림하는 ‘모나르키아’(monarchia, 군주체제)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동등한 시민으로 나랏일에 참여하는 ‘이소노미아’(isonomia, 평등체제)였다. 이소노미아는 모나르키아를 용납하지 않는다. 만약 모나르키아가 들어선다면 그 체제는 조만간 해체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윤리적·정치적 감각으로 아낙시만드로스는 자연의 질서를 해석한 것이다.

모나르키아에 대한 거부는 아낙시만드로스의 우주론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탈레스는 땅(지구)이 드넓은 물 위에 떠 있다고 생각했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스승의 생각을 거부하고, 지구를 떠받치는 데 물 같은 것은 필요 없다고 주장했다. 아낙시만드로스의 우주론에서 지구는 우주 한가운데 서 있고 그 주위를 태양과 달과 별이 돌고 있다. 커다란 동심원들의 중심에 지구가 놓여 있는 꼴이다. 이렇게 한가운데에 있기에 지구는 어디로도 쏠리지 않고 제자리를 지킬 수 있다. 이 기하학적 ‘균형’을 가리키는 말이 또한 ‘이소노미아’다.

여기에도 밀레토스의 정치적 경험이 배어 있다. 밀레토스의 이소노미아 체제는 구성원들의 평등성이 깨지지 않는 정치적 균형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그것을 상징하는 것이 도시 한가운데 있는 광장 아고라와 아고라에 세워진 신성한 건물이다. 이 건물 안에는 ‘공공의 화덕’(헤스티아 코이네, hestia koine)이 들어서 있었다. 집안의 중심에 화덕이 있어 가족의 평화와 번영을 상징했듯이, 도시의 중앙에 공공성의 불이 타오르는 화덕이 놓여 도시의 질서와 통합을 상징했던 것이다. 아고라의 화덕은 이소노미아라는 평등체제를 지탱하는 힘의 균형을 뜻했다.

헤겔은 철학사를 두고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에야 날개를 편다”고 말했다. 철학은 시대가 저문 뒤에야 일어난다. 자연철학이 탄생한 밀레토스야말로 이 말이 딱 들어맞는 곳이다. 아낙시만드로스를 비롯한 밀레토스 사람들이 우주를 철학적으로 사유하기 시작한 시기는 이오니아가 이웃의 큰 나라에 먹혀 체제가 무너지던 때였다. 먼저는 리디아의 크로이소스 왕이 기원전 561년 이오니아를 정복했고, 15년 뒤에는 페르시아의 키루스 대왕이 리디아를 무너뜨리고 이오니아를 복속했다. 이렇게 정복된 폴리스에는 참주가 들어섰다.

철학자 피타고라스(기원전 570~495)도 고향 사모스섬에서 친구 폴리크라테스와 함께 정치개혁에 힘쓰다 친구가 참주가 되자 배신감을 안고 국외로 망명한 사람이었다. 피타고라스는 이탈리아 남부로 가 피타고라스 학파를 세웠다. 그러나 피타고라스 학파는 그곳에서도 지배자에 맞서 정치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그 피타고라스 학파의 일원이었던 기원전 5세기 의학자 알크마이온은 아낙시만드로스의 우주론을 인간이라는 소우주에 적용해 이렇게 말했다. “건강은 축축한 것과 메마른 것,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의 균형(이소노미아)에 있다.” 질병이란 이 균형이 무너져 어느 하나가 참주 노릇을 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요컨대 이오니아의 자연철학은 자연철학인 동시에 사회철학이었다. 이오니아 철학자들은 사회를 보는 눈으로 우주를 보았다. 이런 사실을 또 다른 이오니아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기원전 540~480)의 사상에서도 볼 수 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투쟁’과 ‘불화’가 우주 만물을 형성시키는 힘이라고 말했다. 아낙시만드로스가 균형과 질서를 강조했기에 언뜻 보면 둘은 서로 반대되는 견해를 보이는 것 같다. 그러나 실상 두 견해는 다르지 않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이소노미아의 평등한 질서를 자연의 본성으로 제시함으로써 그 질서를 옹호했던 것이고, 페르시아의 지배가 굳어진 뒤에 태어난 헤라클레이토스는 투쟁만이 자유롭고 평등한 이소노미아 체제를 되찾는 길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두 사람은 같은 이야기를 다른 말로 했다. 정의가 무너진 곳에서는 정의를 되찾으려고 싸우는 것이 정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혁명이 일어나는 원인을 ‘권력의 독점’이라는 ‘불균형’에서 찾았다. 그러면서 혁명을 막으려면 첫째, 사소한 일에서도 법을 지킬 것, 둘째, 술수로 사람들을 속이지 말 것을 요구했다. 마지막으로 아리스토텔레스가 강조한 것이 공직을 이용해 재산을 불리지 말라는 것이다. 이 금기를 저버리면 혁명의 파도가 덮친다. 플라톤도 ‘법률’이라는 저작에서 혁명이 일어나는 원인을 ‘불균형’에서 찾았는데, 이때의 불균형은 통치자의 ‘능력’과 ‘지위’ 사이의 불균형이다. 작은 배가 큰 돛을 달면 뒤집히고 말듯이, 작은 인물이 큰 공직을 맡으면 모든 것이 뒤집히고 만다. 지금 이 나라를 두고 하는 말 같다. 알크마이온식으로 말하면 무능한 참주가 멋대로 헤집고 다닌 탓에 몸에 큰 병이 든 꼴이다. 이대로 가면 나라 전체가 주저앉게 생겼다.

고명섭 | 책지성팀 선임기자

‘하이데거 극장-존재의 비밀과 진리의 심연’(1, 2), ‘니체 극장-영원회귀와 권력의지의 드라마’, ‘생각의 요새’, ‘광기와 천재-루소부터 히틀러까지 문제적 열정의 내면 풍경’, ‘지식의 발견-한국 지식인들의 문제적 담론 읽기’, ‘이희호 평전-고난의 길, 신념의 길’을 썼다. 카이로스는 때·시기·기회를 뜻하며 현재를 밝히는 순간의 섬광을 가리킨다. 카이로스의 눈으로 철학·사상·역사를 포함한 인문학을 탐사하며 우리 시대와 대화한다.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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