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50> 꼴뚜기 호래기 호타루이까
- 호래기 호르레기 홀째기 꼴띠기
- 지방마다 부르는 이름도 제각각
- 회 찜 국 조림 등 다양한 요리로
- 이웃 일본서도 인기있는 식재료
- 그물로 잡거나 남해 등선 죽방렴
- 낚시로 잡은 횟감용 비싸게 유통
- 한때 망둥이가 뛰면 따라뛴다며
- 쓸데없는 어족으로 취급받기도
- 훌륭한 맛과 식감, 영양도 풍부
- 양식도 안되니 이제는 ‘귀한 몸’
다 큰 성체의 몸길이가 10~15㎝. 생긴 모습은 마치 어린 오징어같다. 그래서 살오징어 창오징어 한치류 등의 새끼도 이들의 족속으로 통칭해 유통되기도 한다. 바로 꼴뚜기이다. 우리나라 해역에는 반원니꼴뚜기 참꼴뚜기 꼬마꼴뚜기 등이 서식하고 있다.
그중 개체 수가 많고 주로 활용되는 꼴뚜기는 반원니꼴뚜기와 참꼴뚜기. 오징어 목, 꼴뚜깃과에 속하는 생물이다. 지역에 따라 ‘호래기’ ‘호르레기’ ‘홀째기’ ‘호디기’ ‘고록’ ‘꼬록’ ‘꼴띠’ ‘꼴띠기’ ‘꼴뜨기’ ‘꼬록지’ ‘한치’ 등으로 불린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 의하면 꼴뚜기를 ‘유어’(柔魚)라고 적고 ‘형상은 오징어와 비슷하지만 몸통은 더 길면서 좁다. 3~4월에 잡아서 젓갈을 담근다’고 기술하고 있다. 더불어 속명으로 ‘고록어(高祿魚)’라고 기록하고 있다.
주로 서울 중부지방은 ‘꼴뚜기’라 부르고 남해와 경상도에서는 ‘호래기’, 서해나 전라도에서는 ‘고록’으로 널리 불린다. 이북 지역에선 ‘홀째기’ ‘호디기’라 부른다. 이웃 일본에서는 ‘반딧불이 꼴뚜기’란 뜻의 ‘호타루이까’로 불리며 다양한 요리 식재료로 활용되고 있다.
▮11~12월 이맘때가 제철
개인적으로 이 꼴뚜기와는 좋은 기억이 많이 있다. 어느 해 초겨울의 밤, 경남 통영시 중화항 뱃머리에서 이 지역 말로 ‘호래기 낚시’를 했다. 낚시 장대에 야광 오징어 낚싯바늘과 생새우 미끼로 채비해 살살 끌어주니 톡톡 치는 어신이 온다. 낚싯대를 올려보니 가로등 불빛에 하얗게 빛나는 ‘호래기’가 먹물을 쏘며 올라온다.
일행이 한 손에는 회 초장 컵을, 다른 한 손에는 소주잔을 들고 기다린다. 잡은 호래기를 회 초장 컵에 떨어뜨리자, 호래기가 꿈틀대며 회 초장에 제 몸을 뒤섞는다. 이를 나무젓가락으로 집어 소주와 함께 먹는 것이다. 소주 한 잔에 갓 잡아 살아있는 호래기 한 마리. 그렇게 호래기 낚시에 밤은 깊어 가고 우리 일행의 도도한 주흥 또한 거방지게 깊어 가기만 했다.
경상도 남해안 지역에는 이 호래기를 회로도 먹고 데치거나 쪄서도 먹고 국으로도 먹는다. 젓국에 조물조물 갓 무친 ‘호래기젓갈’로 싱싱하고 개운하게 먹기도 한다. 멸치 어망에 함께 잡혀 온 호래기는 말려서 볶거나 조려서 반찬으로 활용한다. 식감이 좋고 감칠맛이 있어 술안주로도 널리 쓰인다.
전라도 서남해안에서는 꼴뚜기를 ‘고록’이라 부르는데, 이 고록으로 달큰하면서 짭조름하게 ‘고록젓갈’을 담아 일정 기간 두고 먹는다. 여수 순천 등지에는 고록과 무를 이용해 시원하고 고소한 ‘고록무김치’를 담가서 먹기도 한다. 물론 회로도 먹고 데치거나 조리거나 말려서도 먹는다.
꼴뚜기는 지역마다 잡는 방법이 조금씩 다른데, 주로 ‘안강망’이나 ‘들망’으로 어획한다. 안강망은 물살이 빠른 목에 그물을 고정해 놓고 물살에 의해 그물로 들어오는 어류들을 잡는 어로법이다. 들망은 어두운 밤에 그물을 바다 밑으로 펼쳐 놓고 그 위로 집어등을 켜놓았다가 불빛을 따라 꼴뚜기가 모여들면 그물을 들어 올려 잡는 방식이다.
조류가 원활한 서남해 지역은 ‘안강망’으로, 경상도 남해안에는 ‘들망’으로 주로 잡는다. 남해와 사천 등지에는 빠른 조류를 이용한 ‘죽방렴 어업’이 발전했는데, 이 죽방렴으로 싱싱한 꼴뚜기를 잡기도 한다.
통영 지역에는 낚시로 ‘활호래기’를 공급하는 전문 낚시꾼이 더러 있다. 11~12월 초겨울이 제철이라 이맘때면 이들이 제공하는 횟감용 활호래기가 비싼 가격으로 유통된다. 이 활호래기들은 통영의 서호시장이나 중앙시장 등에서 구할 수 있고, 부산에는 부평시장 인근으로 활호래기 전문 횟집 몇 곳이 취급한다.
일본에서는 이 꼴뚜기를 통칭 ‘호타루이까’(ほたるいか)라고 부르는데, ‘반딧불이 꼴뚜기’ ‘불똥 꼴뚜기’라는 뜻이다. 어획할 때 반딧불이처럼 파란 불빛을 낸다고 이름 지어졌다. 우리나라 동해에 인접한 도야마(富山) 지역을 중심으로 많이 잡힌다.
일본에서 ‘호타루이까’는 주로 잡자마자 선상에서 달큰한 간장양념에 절여서 ‘오키즈케’(沖漬け)로 만들어지거나 쪄서 츠케모노(つけもの, 절인 채소), 어란 등과 함께 곁들여 먹기도 하고, 김초밥 위에 얹어서 ‘호타루이까 스시’로 먹기도 한다. 특히 ‘호타루이까 오키즈케’는 일본인들의 10대 안주에 들어갈 정도로 그 인기가 높다.
▮쫀득한 식감에 고소한 감칠맛
몇 년 전 ‘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와 함께 돗토리 지역을 돌아본 적이 있는데, 당시 해안 어물전에서 ‘호타루이까 오키즈케’를 구입해 귀국할 때까지 술안주 삼았던 기억이 있다. 짭조름하면서도 달콤하고 쫀득하고 감칠맛이 일품이라 두고두고 일본 술과 함께했었다.
얼마 전에는 기타큐슈 고쿠라의 이자카야에서도 호타루이까 오키즈케를 맛보았는데, 이번 것은 단맛이 조금 더 강했다. 이렇듯 이웃한 나라에서도 유사한 식재료로 유사한 음식을 만들어 먹지만, 그 맛은 환경·지리·기질적으로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음이겠다.
며칠 전 단골식당에서 남해 죽방렴 호래기가 들어왔다고 연락이 와 들렀다. 대바구니에 동그마니 놓인 호래기에서 반들반들 윤이 난다. 이를 기름소금장에 콕 찍어 먹고, 회 초장에 푹 찍어 먹고 양파 위에 얹어 먹고 젓갈 장에도 살짝 찍어 먹는다.
꼬독꼬독 몰캉몰캉 쫀득쫀득 탄성 있는 식감이 우선 일품이다. 그리고 들큼하면서도 고소한 감칠맛이 풍성하다. 이를 양념장에 찍어 먹을 때마다 새롭고 흥미로운 맛의 변주가 화려하다. 고소 짭짤하고 매콤 달달하면서 짭짤 매콤하다가 아삭 향긋하다.
몇 마리 남겨서 ‘호래기 라면’을 부탁한다. 라면이 다 끓을 때쯤 호래기를 넣어 먹는다. 라면 가락에 호래기 한두 마리 함께 집어 올려 한 입 크게 먹는다. 탱글탱글한 면발에 쫄깃쫄깃한 호래기가 한입에서 어우러진다. 국물 또한 그릇째 들이켤 때마다 진하고 시원하다. 속이 확 풀리며 해장 되는 것이다.
한때 ‘망둥이가 뛰면 꼴뚜기도 뛴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다 시킨다’ 등의 속담으로 작고 볼품없고 크게 쓸데없는 취급을 받거나, 이곳저곳 여러 어망에 가리지 않고 잡어로 섞이기에 어부들에게도 대접받지 못했던 어족, 꼴뚜기.
그러나 지금은 양식이 안 되기도 하거니와 그 맛과 영양의 우수성으로 아주 귀한 식재료, 값비싼 어종으로 환골탈태한 상황이다. 사람 팔자뿐만 아니라 어물 팔자도 귀천이 바뀌는 건 시간문제인 것 같은 이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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