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 칼럼] 돌아온 트럼프, 격랑의 韓경제
미국 대통령 선거는 긴 마라톤과 같다. 단순한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다. 예비선거가 치러지고 전당대회가 열리고 TV 토론도 벌어지는 등 숨가쁜 일정이 이어진다. 하지만 올해 대선은 유독 길게 느껴졌고 열기도 어느 때보다도 뜨거웠다. 한 마디로 다사다난했던 대선이었다.
4년 전 재선에 실패한 전직 대통령이 다시 대권에 도전한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현직 대통령이 연임에 나섰다가 선거운동 도중 사퇴하고 부통령이 대타로 등장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대통령 후보를 겨냥한 두 번의 암살 시도가 있었던 것도 전례 없는 사건이었다. 세계 최고 부자 일런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특정 후보를 공개 지지하고 적극적으로 도운 것 역시 '낯선' 장면이었다.
이렇게 장편의 할리우드 정치 영화가 펼쳐지면서 미 언론들은 한결같이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와 민주당 후보 카멀라 해리스의 '초박빙 승부'를 예측했다. 개표가 끝나도 상당 기간 승자가 결정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결과는 딴판이었다. 트럼프는 '7대 경합주'를 모두 석권하며 압승했다. 트럼프는 개표를 지켜보다 7곳의 경합주에서 우세 소식이 들리자 곧바로 승리를 선언했다. 그는 "우리의 승리는 미국 국민을 위한 위대한 승리이며, 우리는 이로써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것이다"고 말했다.
미국 대통령이 징검다리 당선으로 재집권에 성공한 것은 그로버 클리블랜드 이후 132년 만에 처음이다. 트럼프는 화려하게 복귀했고, 해리스는 애써 웃으며 패배를 인정했다. 언론사들의 미 대선 여론조사는 이번에도 또 망신을 당했다.
공화당은 대선에서 승리했고, 상원에선 다수당이 됐을 뿐 아니라 하원까지 장악할 기세다. 이른바 행정·입법 권력을 독식하는 '레드 스윕'(Red Sweep)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트럼프는 집권 2기 의제를 강력히 추진할 수 있게 됐다.
더 독해진 '미국 우선주의'는 미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기존 세계 질서는 더욱 흔들릴 것이 자명하다. 특히 중국은 트럼프 2기 행정부 하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을 국가가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대중(對中) 통제 정책이 한층 강화되면서 중국에 대한 포위망이 좁혀질 것이다. 중국이 이에 대응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대선 전 트럼프는 모든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 60%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했다. 호주계 글로벌 투자운용사 맥쿼리 그룹은 내년 트럼프의 선거 공약이 실현되면 이듬해 중국의 수출은 약 8% 감소하고 경제성장률은 2%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관측했다. 트럼프 집권 2기의 무역전쟁이 수출과 제조업을 주요 성장동력으로 삼았던 중국의 성장모델까지 종식시킬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렇다고 중국만 피해를 보는 것은 아니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중국이 보복관세로 대응할 경우 2028년까지 미국 GDP가 0.8%포인트 줄고 물가상승률은 4.3%포인트에 이를 것으로 봤다. 중국 외 다른 국가들도 보복에 나선다면 미국 성장률에 대한 타격은 더 커진다.
우리의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 미국 경제가 이렇게 위축되면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는 연쇄적인 충격이 불가피하다. 현대경제연구원은 트럼프의 재선으로 '관세 전쟁'이 세계로 확산하면 한국 경제 성장률이 크게는 1.1%포인트 떨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새로운 시대의 '미국식 민주주의'는 다시 한번 트럼프라는 인물을 선택했다. 내년 1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 많은 큰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뒤집을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이제 한국은 미·중과의 관계에서 '생존'의 길을 진지하게 모색해야할 운명이 됐다 .
5년 임기 반환점을 돈 윤석열 정부가 시험대에 올랐다. 윤 대통령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윤 대통령은 트럼프 당선에 "우리 국민 경제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미 리스크 헤징을 위한 준비는 오래됐다"고 강조했다. 장밋빛 낙관주의가 아니길 바란다. 실행력을 보여주고 결과물을 내놓아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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