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귀환에 웃는 조선·정유·원전…이차전지·자동차는 ‘조마조마’
친환경 관련 산업은 직격탄…보조금·세액공제 축소 불가피
(시사저널=허인회 기자)
도널드 트럼프가 백악관에 귀환하면서 국내 산업간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조 바이든 정부와는 정반대 정책이 예상되면서다. 특히 전통적 에너지원과 관련한 정유업계와 조선업, 그리고 소형모듈원전(SMR)을 중심으로 한 원전 산업엔 수혜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반면 환경규제 완화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관련 법 폐지를 트럼프가 공언한 터라 이차전지와 전기차 등 관련 업계는 위축을 우려하고 있다.
"미국산 석유·가스 더 늘려라"…수혜 산업은?
트럼프의 재집권으로 국내 산업계는 폭풍전야 모드로 돌입했다. 트럼프 1기에서 경험했듯 그의 공약은 허풍이 아닌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바이든 행정부와 비교해 가장 큰 산업 정책 변화의 중심에는 에너지 정책 전환이 자리 잡고 있다.
트럼프는 대선 기간 석유 시추를 의미하는 '드릴 베이비 드릴(drill, baby, drill)'을 여러 번 언급하며 석유·석탄·가스 등 화석연료 활성화를 강조했다. 인공지능(AI) 시대에 폭등할 전기 수요에 대응하는 동시에 산업과 가정에 저렴한 에너지를 제공하기 위해 값싼 에너지원을 총동원하겠다는 의미다.
석유 및 셰일가스 시추 확대가 이뤄질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생산량이 늘면서 자연스레 국제유가는 안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국내 정유 업계의 수익은 단기적으로 감소할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기름값이 싸지면 수요가 늘어나 석유 정제마진이 상승하는 구조라 이익을 볼 것이란 전망이다. 친환경 설비 투자 규모도 일부분 줄일 수 있어 수익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란 관측이다.
조선업계는 트럼프 재집권을 반색하고 있다. 국내 조선업계의 주력 선종인 액화천연가스(LNG)선에 대한 수요 확대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친환경 에너지원을 우선시하는 바이든 정부는 올해 초 LNG 수출이 에너지 비용과 안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재검토한다며 신규 LNG 수출 터미널 승인을 일시 중단한 바 있다. 하지만 트럼프는 터미널 건설을 허가하겠다는 계획이다.
LNG 수출 터미널 건설은 미국 내 LNG 생산 확대를 의미하며, 이를 운송하기 위한 LNG선 발주가 확대될 전망이다. 한국기업평가(한기평)의 '트럼프 당선에 따른 산업별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일부 중국 조선소를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LNG선 건조 역량을 갖춘 조선소는 국내 빅4 조선업체로 한정돼 있다. 이에 미국 내 추진 중인 다수 LNG 프로젝트들의 개발이 속도를 낼 경우 국내 조선사가 상당 부분 수혜를 입을 것이라는 것이 한기평의 전망이다.
유지·보수·정비(MRO) 호재도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11월7일 윤석열 대통령과 첫 통화에서 "미국 조선업계는 한국의 협력이 필요하다"며 "세계적인 한국의 군함 건조 능력을 잘 알고 있고 선박 수출뿐 아니라 보수, 수리, 정비 분야에서도 긴밀한 양국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 조선업을 콕 집어 얘기했다는 점에서 연간 20조원에 달하는 미국 해군 함정 MRO 시장 진출에 청신호가 켜졌다는 평가다.
또 다른 에너지원인 원전 역시 부흥을 맞이할 전망이다. 트럼프는 이번 대선에서 '미니 원전'으로 불리는 소형모듈원전(SMR)을 중심으로 한 원전 산업 육성 방침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아울러 원자력 관련 규제 완화와 인허가 절차 간소화도 천명했다. 이에 한국수력원자력 등 원전 기업과 함께 일찌감치 미국 SMR 기업 테라파워에 투자한 SK그룹과 두산에너빌리티에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린 뉴딜'은 끝났다…관련 업계, 노심초사
바이든 정부 들어 날개를 달았던 이차전지, 반도체, 전기차 업계는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앞서 트럼프는 10월5일 "바이든 정부의 '그린 뉴딜'(친환경 경제성장 정책)은 10조 달러 이상의 역사상 가장 큰 사기"라며 "재집권하면 종료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그린 뉴딜 정책의 대표적 결과물인 인플레감축법(IRA), 반도체지원법(CHIPS)에 대대적인 손질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배터리 업체들은 세액공제가 사라질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배터리 기업들은 현재 미국에서 생산된 배터리 셀에 대해 ㎾h당 35달러, 모듈은 ㎾h당 10달러의 세액공제(AMPC) 혜택을 받고 있다. 이 혜택이 사라질 경우 수익성 악화는 불가피하다.
자동차 업계는 전기차 수요 감소를 우려하고 있다. 현재 미국 소비자는 전기차 구매시 최대 7500달러의 세액공제 혜택을 받는다. 이 혜택이 사라진다면 전기차 시장 자체가 위축될 전망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IRA(인플레이션 감축법)는 보조금이라는 '당근'과 중국 협력 차단이라는 '채찍'을 동시에 활용해 중국산 소재·부품·배터리가 미국 시장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방파제 역할을 했다"면서 "만약 친환경차 보조금 자체가 사라진다면 방파제 효과도 함께 사라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반도체 업계는 미국에 반도체 제조 시설을 건설·확장하는 기업에 자금을 지원하는 '반도체지원법'(CHIPS Act·칩스법) 운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는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170억 달러(약 23조5000억원)를 들여 반도체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주에 후공정 생산기지를 건설하는 데 38억7000만 달러(약 5조2000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이에 바이든 정부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각각 64억 달러(9조원), 4억5000만 달러(6200억원) 규모의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지만 아직 구속력 있는 계약은 체결하지 못한 상태다. 업계에선 보조금 규모 축소가 현실화될 경우 공장 건설에 큰 차질을 빚을 것이란 우려를 하고 있다.
다만 관련 법의 전면 폐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법안 폐지를 위해선 의회의 승인이 필요한데, 칩스법이나 IRA와 관련된 연방 상하원 의원 대부분이 공화당 소속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주민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트럼프가 행정명령으로 보조금이나 세액공제를 받을 조건을 까다롭게 바꿔 예산을 축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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