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으로 들로…꿀벌 살리기 위해 오늘도 달린다
전국에 꿀벌병원은 대전에 하나, 양봉협회에서 운영하는 경기 안성에 하나가 있다. 그리고 김용환 수의사가 광주에 3호를 냈다. 부인 기혜영씨도 수의사다. 이 꿀벌 수의사 부부는 벌을 살리기 위해 하루에 400㎞를 뛰고 돌아온 날이 많다. 번갈아 운전하며 섬으로 들로, 비산비야 외진 농가를 찾아 달려간다.
거대한 감청색 항아리 같은 하늘 끝에서 황홀한 아침이 혼례를 올릴 공간에 넘쳐나기를 기다리며…. 이슬의 흔적이 나뭇잎과 꽃들을 추억으로 적실 때, 아침에 핀 제비꽃 향기가 더욱 강하게 느껴질 때, 여왕은 그런 때를 좋아한다. 밖으로 나와 순회비행을 하며 왕국의 외관과 정확한 위치가 머릿속에 들어오면 화살처럼 하늘 꼭대기로 날아오른다. 다른 벌들이 가보지 못한, 빛으로 넘쳐나는 높은 곳을 향하여 여왕벌이 날아오를 때, 그 자태 그 향기에 넋이 나간 수벌의 무리들이 서둘러 그 뒤를 따라 오른다. 여왕은 끝없이 비상한다. 신비로운 의식을 방해받지 않기 위해서는 새들도 다니지 않은 황량한 영역에 도달해야 한다. 늙고 약한 수벌들이 더는 견디지 못하고 허공에서 사라진다. 건장한 소수의 무리 가운데 불가사의한 힘에 의해 선택된 한마리가 여왕을 따라가 붙잡고, 마침내 말을 타는 자세로 그녀와 합체한다. 둘의 정열이 최고조에 달하면 서로 뒤엉킨 그들의 비상은 일순간 사랑으로, 그리고 적의로 가득 찬 착란 속에서 나선형을 그리며 상승한다.
희곡 ‘파랑새’의 작가, 1911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책 ‘꿀벌의 생활’에서 결혼비행 대목을 갈무리했다.
“거기까지가 희극이고, 그 뒤로는 비극입니다. 수벌은 정자만 바치는 것이 아니라 생식기까지 바칩니다. 배가 갈라지면서 속이 텅 비어버린 몸은 빙글빙글 춤을 추면서 나락으로 떨어지지요. 그래도 그놈은 환희에 도달했습니다. 나머지 개체들, 무위도식하면서 오직 번식만을 위해 존재했던 수많은 수벌은 결혼비행 직후 무참히 학살됩니다.”
생사와 희비가 엇갈리는 그 섭리 속에서 새 생명은 태어난다. 보통 꿀통에는 여왕벌 1마리, 일벌 2만마리, 수벌 400마리 정도 사는데 여왕이 수태했으니, 나머지 수컷들은 쓸모가 없다. 여왕벌은 3~7년을 살면서 많게는 세번 교미하고 낭에 저장해 놓은 정자를 꺼내 늙을 때까지 매일 2천여개의 알을 낳는다.
김용환(59), 꿀벌 수의사다. 전국에 꿀벌병원은 대전에 하나, 양봉협회에서 운영하는 경기 안성에 하나가 있다. 그리고 김 수의사가 광주에 3호를 냈다. 부인 기혜영(57)씨도 수의사다. 둘은 수의대 커플로 나란히 박사학위를 받았고 같은 직장(광주광역시 보건환경연구원)에서 30여년 일한 뒤에 동시 명퇴하여 함께 개원했다. 김 수의사는 연구원에서 오랫동안 꿀벌의 생태와 질병에 관한 일을 했다. 수의사는 개 고양이 등의 반려동물 수의사, 소 돼지 등의 대동물 수의사로 나뉜다. 꿀벌 분야는 처녀지나 다름없다.
“‘꿀벌이 멸종하면 인류도 4년 안에 사라진다’는 말을 아인슈타인이 했는지는 모르지만 딱 맞는 말입니다. 지구 상의 100대 작목 가운데 71종이 벌에 의해 수분(受粉)을 하지요. 수술의 꽃가루를 암술로 옮겨줘야 열매가 달리고 사람이 먹고사는데 그 매개자인 벌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반려동물 수의사를 하면 수입 좋은 것은 알지요. 공직생활 오래 해서 연금도 나오니 돈보다 벌을 살리는 일을 해보자, 그런 생각으로 꿀벌병원을 열었어요.”
봄바람이 남쪽 바다에서 살랑 불어와 아카시아가 꽃망울을 맺을 때 양봉업자들은 트럭에 벌통을 싣고 남으로 섬으로 내려갔다. 거기서 며칠 벌을 놓아 꿀을 따고, 뭍으로 올라와 또 꿀을 따고, 점점 북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지금은 남벌로 아카시아 식재 면적이 10%에 불과하지만 일제강점기 철도 침목용으로 들여와 한때는 천지가 아카시아였다. 전남 완도에서 강원 철원까지, 북상하는 꽃을 따라 4월 말부터 두달을 유목민처럼 꿀을 땄다. 그것이 이동식 양봉이고 진짜 꽃꿀이다. 그리고 6월, 홀로 된 며느리가 호미를 던지고 떠나버린다는 밤꽃 필 때, 밤꿀이 나온다. 우리나라 꿀은 아카시아와 밤꿀이 대표적이고 그 사이사이 백화난만할 때 채밀한 것이 잡꿀이다.
“벌 죽음의 가장 큰 이유는 기후변화입니다. 꽃이 전국에서 동시다발로 피었다 져 버리니 채밀 기간이 그만큼 줄어든 것이고요. 온난화에 따른 바이러스 세균성 질병이 심각합니다. ‘꿀벌 실종’ ‘수억마리 집단 폐사’ 그런 얘기 나오잖아요? 꿀벌의 유충이 부패하는 ‘낭충봉아부패병’이 대표적이고, 지금까지 밝혀진 질병이 36종에 이릅니다. 벌이 떼로 죽는 일은 흔한 일이 되었고, 한봉은 거의 멸종상태입니다. 농가를 찾아가 원인을 찾고 진단 처방하는 일을 하지요. 또 농약을 드론으로 뿌리잖아요? 사람이 등짐 지고 할 때는 물에 타서 약하게 했는데 드론으로 대체되면서 고농도로 뿌립니다. 그 주위를 벌이 지나가면 바로 죽거나 몸에 농약을 묻혀 돌아와 알들이 폐사하고 말지요.”
질병보다 더 무서운 것이 말벌이다. 9~10월 양봉 농가는 말벌과의 전쟁이다. 장수말벌과 등검은말벌, 이 최상위 포식자는 너덧마리씩 무리 지어 습격한다. 입에 전기톱을 장착한 듯 벌통 입구에서 꿀벌의 머리와 꼬리를 잘라내고 몸통을 먹어치운다. 잘게 경단을 만들어 애벌레 먹이로 주기도 한다. 말벌 10마리가 1시간에 꿀벌 10만마리를 살육한다고 하니, 벌통 4~5개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셈이다.
“한마디로 아작을 내버립니다. 벌통 하나에 20만~30만원 하거든요. 양봉업자들은 가을에 아무 데도 못 가요. 전부 잠자리채나 배드민턴 채를 들고 벌통 앞에 지키고 서 있지요. 전에는 말벌을 잡는 대로 죽였어요. 지금은 머리를 써요. 생포해서 등에 농약을 발라 날려 보냅니다. 집에 가서 애벌레나 다른 말벌도 죽여라, 이거지요. 근데 이놈이 제집으로 안 가고 다른 꿀벌 벌통으로 들어가 버리네요, 그래서 말벌 다리를 하나 분질러 날려 보냅니다. 아프면 집으로 곧장 가잖아요. 근데 말벌이 날갯짓을 하면서 농약을 털어버리는 거예요. 이번에는 끈끈이 액을 붙여서 날려 보냅니다. 요새는 낮에 잡아두었다가 집으로 직행하라고 석양에 날려 보낸답니다. 말벌 덫도 나왔어요. 말벌이 좋아하는 포도향으로 유인해서 모기장 안에 생포하는 거지요. 그것으로 술을 담습니다. 신경통에 좋다는 말벌주가 비싼 값에 팔린답니다. 인간과 곤충의 공방전이 치열한데, 말벌이 다 나쁜 것은 아니고 해충 방제 기능도 하기 때문에 생태계에는 안 좋은 방법이지만 오죽하면 그러겠나 싶기도 합니다.”
하루는 벌이 날지를 못하고 기어 다닌다고 해서 왕진을 나갔다. 돌림병인가 싶어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꿀통을 열어보니 꿀이 없다. 벌 먹이를 남겨둬야 하는데 사람이 다 가져가 버린 것이다. 벌은 4시간 못 먹으면 비실거리다 죽는다고 한다. 벌에게 4시간은 사람이 넉달을 굶은 것보다 길다. 얼른 먹이를 채워줬더니 벌들이 다시 날더라고 했다. 벌은 사람이 먹이를 가져가 버린 것을 모르고 또 열심히 꿀을 따러 나간다. 가을이 깊어지면 꽃이 지고 없다. 월동 꿀을 가로챈 사람이 대신 설탕물을 준다. 벌이 그것을 먹고 토해내서 다시 꿀을 만든다. 그렇게 나오는 겨울 꿀이 사양꿀이다. 찬 곳에 두면 병 바닥에 하얀 결정이 깔리는 것, 설탕을 많이 먹었기 때문이다. 꽃꿀도 오래 두면 결정이 생기기는 하지만 좀 다르다. 꽃꿀은 2.4㎏ 1병에 6만원, 사양꿀은 2만원 정도 한다. 사양꿀은 제빵 제과에 많이 쓰인다. 식약처는 두 꿀을 구분하기 위해 사양꿀에는 ‘사양벌꿀’ 표기를 의무화했다.
김 수의사는 “꿀 한병에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6만원입니다. 진짜 꽃꿀 채밀은 딱 한철이어서 양이 많지 않고요, 꿀 1㎏을 만들기 위해서는 벌이 560만송이 꽃을 찾아 지구를 한바퀴 반을 돌아야 한다고 해요. 그 공력을 생각해보면 1병에 20만원은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진짜 꿀이 나오죠. 꿀은 믿어야 약입니다.”
재작년 겨울에 78억마리, 작년 겨울에 141억마리 벌이 사라졌다고 한다. 올겨울은 또 얼마나 많은 벌이 사라질까? ‘복사꽃 살구꽃 찔레꽃이 지면 우는/ 너의 눈물은 이제 달디 단 꿀이다/ …저녁이 오면/ 너는 들녘에서 돌아와/ 모든 슬픔을 꿀로 만든다’(정호승), 벌이 사라지면 수분도 수분이거니와 슬픔을 꿀로 바꿀 수 없다 하네.
이 꿀벌 수의사 부부는 벌을 살리기 위해 하루에 400㎞를 뛰고 돌아온 날이 많다. 번갈아 운전하며 섬으로 들로, 비산비야 외진 농가를 찾아 달려간다. 그렇게 해서 꿀맛 같은 올 한해 벌이가 둘이 합쳐 2천만원 정도 될 거라고 한다.
이광이 |
‘정말로 바다로 가는 길을 나는 알지 못하지만, 그러나 바다로 가는 노력을 그쳐본 적이 없다’ 목포 김현문학관에 걸린 이 글귀를 좋아한다. 시와 소설을 동경했으나, 대개는 길을 잃고 말아 그 언저리에서 산문과 잡글을 쓴다. 삶이 막막할 때 고전을 읽는다. 읽다가 막히면 ‘쓴 사람도 있는데 읽지도 못하냐?’면서 계속 읽는다. 해학이 있는 글을 좋아한다. 쓴 책으로 동화 ‘엄마, 왜 피아노 배워야 돼요?’, ‘스님과 철학자’(정리), ‘절절시시’, 산문집 ‘행복은 발가락 사이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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