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여행] 잎이 진 자리, 감성이 돋는다... 만추가 선사하는 레드카펫
나뭇잎 떨어진 자리에 가을 감성이 새순처럼 돋는다. ‘… 방하착(放下着) / 제가 키워 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 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 가장 황홀한 빛깔로 / 우리도 물이 드는 날’. 도종환 시인의 ‘단풍 드는 날’ 일부다. 한국관광공사가 만추의 낙엽 명소를 11월 추천 여행지로 선정했다.
눈부신 가을빛, 포천 국립수목원
경기 포천 국립수목원은 서울 여의도보다 넓은 11.24㎢, 하루에 둘러보기 어려울 정도로 넓다. 가을 풍경을 즐기기에는 숲생태관찰로와 휴게광장, 육림호 주변이 제격이다. 숲생태관찰로는 천연림에 조성한 460m 덱 산책로다. 울창한 수림 사이로 가을 햇살이 부서진다. 육림호 주변 숲길은 호수와 어우러진다. 투명한 수면에 단풍이 비치고 햇살이 반짝거린다. 피톤치드 풍성한 전나무숲길도 빼놓을 수 없다.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숲에서 채취한 종자의 싹을 틔워 조성한 숲이다.
국립수목원에서 걸어서 10분, 광릉까지 이어지는 산책로도 매력적이다. 광릉은 조선 7대 왕 세조와 정희왕후가 잠든 곳이다. 국립수목원은 하루 4,500명으로 입장 인원을 제한하고 있다. 인터넷 예약시스템(reservenew.kna.go.kr)을 통해 예약한 차량만 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다.
만추의 계곡, 오대산 선재길과 밀브릿지
오대산국립공원 선재길은 단풍과 낙엽이 곱기로 손꼽히는 곳이다. 가을이 깊어가면 떨어진 낙엽이 카펫처럼 깔린다. 스님과 신도들은 도로가 나기 전부터 이 숲길을 이용해왔다. 월정사 일주문에서 상원사까지 약 10㎞, 만만찮은 거리지만 급경사 없이 비교적 순탄한 길이다. 천년 고찰을 잇는 만큼 이야깃거리도 풍성하다. 산림철길, 조선사고길, 거제수나무길, 화전민길, 왕의길 5개 테마로 구분돼 있다. 완주가 힘들다면 일부 구간만 걷고 도로로 나와 시내버스를 이용해 돌아올 수 있다.
인근 늦가을 산책 코스를 하나 더 추천하자면 방아다리약수터를 중심으로 조성한 자연체험학습장 밀브릿지다. 고 김익로씨가 수십 년에 걸쳐 가꾼 울창한 전나무숲에 숙소, 카페, 갤러리 등이 자리 잡고 있다. 건축물은 자연과의 조화를 중요시하는 건축가 승효상의 작품이다. 입장료 3,000원.
붉은 메타세쿼이아, 대전 장태산자연휴양림
장태산자연휴양림은 메타세쿼이아가 주인공이다. 줄지어 선 원뿔형 침엽수에 붉은 단풍이 들고, 잎이 떨어지면 돗자리를 깔아놓은 듯 바닥까지 붉게 물든다. 이 숲은 1972년부터 고 임창봉씨가 20만 그루를 심어 조성했다. 초입에 세운 그의 흉상에 '나는 여생을 나무를 심고 가꾸며 진실하고 정직하게 자연의 섭리를 배우며 성실하게 살겠다'는 신념이 새겨져 있다.
휴양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소는 스카이웨이와 스카이타워다. 지상 10~16m 높이에 가설된 스카이웨이는 메타세쿼이아와 어깨를 나란히 한 공중 산책로다. 치켜 올려봐야만 하는 키 큰 나무의 단풍 속으로 걷는 길이다. 높이 27m 스카이타워가 방점을 찍는다. 나무 꼭대기보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풍광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스카이웨이에서 이어지는 140m의 출렁다리, 숲속 생태연못도 휴양림의 명물이다.
천년의 시간이 흐르는 함양 상림
경남 함양 상림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림이다. 통일신라시대 고운 최치원이 함양태수로 재임할 당시, 홍수를 막기 위해 둑을 쌓고 촘촘하게 나무를 심은 게 시작이었다. 초입에 함화루와 최치원 신도비가 있다. 지금은 활엽수 120여 종, 2만여 그루가 울창하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분지에 조성된 숲으로 들어서면 천 년을 이어온 나무의 정기가 느껴진다.
1.6㎞ 산책로 주변으로 잎이 넓고 키가 큰 개서어나무와 품이 넓은 느티나무 등 다양한 수목이 가지를 펼치고 있다. 가을이 깊어지면 떨어진 낙엽이 양탄자를 깔아 놓은 것처럼 울긋불긋하다. 주변의 공연 무대와 음악분수, 함양 특산물인 산삼을 주제로 한 전시관 등도 함께 둘러볼 만하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도열, 나주 전라남도산림연구원
나주 전라남도산림연구원에 ‘빛가람 치유의 숲’이 조성돼 있다. 연구 목적의 시험림이지만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반에 무료로 개방한다. 1,000여 종에 달하는 풀과 나무가 자라고 있어 계절에 따른 자연의 변화를 살피기 좋은 숲이다.
가을엔 약 400m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이 황금빛으로 물든다. 은행나무, 단풍나무, 감나무까지 어우러진 활엽수원과 화목원까지 가을 정취를 물씬 풍긴다. 호랑가시나무, 동백나무 등 상록수와 곧게 뻗은 향나무길도 눈길을 잡는다. 산책로는 대부분 평지이거나 경사가 완만하고 ‘무장애 나눔길’까지 조성돼 있어 관광 약자도 편하게 즐길 수 있다.
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1분당 10만원' 연체료 물린 사채꾼... 추심 시달리던 싱글맘 목숨 끊었다 | 한국일보
- 포주도 건물주도 떠난 미아리 맨몸으로 지키는 까닭 | 한국일보
- '여사 라인' 정리 신호탄... 만취운전 강기훈, 첫 쇄신 대상 유력 | 한국일보
- 尹 모교 서울대에 퇴진 촉구 대자보 "아내에게만 충성하는 대통령" | 한국일보
- "김병만이 전처 폭행" 주장에 김병만 "허위 고소" 반박 | 한국일보
- 빗속 매장 찾은 '맨발 노숙인'에 새 신발 신겨 보낸 옷가게 주인 | 한국일보
- 정지선 셰프, '흑백요리사'로 잘 나가는데... "남편과 7년째 각방" 고백 | 한국일보
- 이승기, 처가 논란에 밝힌 입장 "엄연히 독립된 가정" | 한국일보
- 탈북자가 본 '러시아 파병'… "적어도 밥은 더 맛있겠죠" | 한국일보
- "왜 남자와 통화해" 범행 뒤 "스스로 찔렀다" 거짓말… 하남서 또 교제 살인 |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