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읽기] 아쉬운 정치 기사, 정치 평론
(서울=뉴스1) = 매일 정치기사가 쏟아지지만 이것이 정치의 전부일까 의문이다. 각종 녹취록, 기자회견 등 관련 보도가 늘어나는 부분은 피할 수 없으리라. 그러나 행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방법이 녹취록의 정치인이 누구인지 파헤치고 리더의 태도를 논하는 것만이 전부일 리 없다. 대통령이 중요한 이유는 23개 부처, 20개 청 등 공무원만 115만 명에 가깝고 공공기관까지 합치면 150만 명을 넘는 행정부라는 거대조직의 수장이어서다. 그가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감시하고 견제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방법은 바로 얼마 전에 있었던 국정감사다. 입법부는 행정부의 지난 국정 운영의 실태를 파악하고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고 시정을 요구한다. 국정 전반을 성역 없이 파헤칠 수 있는 입법부의 막강한 권한이자 야당이 행정부를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해 집권 가능성을 보여주는 장이기도 하다. 지난 10월 7일부터 총 26일간 17개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802곳의 피감기관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워낙 정치 뉴스가 녹취록과 영부인 이야기로 압도되니 나도 노동을 공부한다면서도 환노위의 국정감사를 무심결에 지나칠 뻔했다. 국정감사를 성실히 챙기는 몇몇 언론과 기자님의 좋은 기사가 아니었으면 말이다. 기사를 읽고 환노위 유튜브 영상을 찾으니 의원님의 각기 다른 질의가 재미있고 관료나 증인들의 생생한 답변이 흥미롭다.
올해만 5명이 죽어 나간 산재사망 다발 사업장인 한화오션이 '재발 방지 조치'를 완료하지 않았는데도 고용노동부가 부실한 판단으로 '작업 중지 명령'을 '해제'한 사실이 감사 과정에서 밝혀졌다. 결국 차관이 고용노동부의 잘못을 인정하며 사과하는 모습에 증거를 어렵게 찾아낸 보좌진에 문득 고마운 마음이 든다. 하청노동자에게 470억 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한 사측이 국회가 중재하면 대화에 응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하니 이것이 입법부의 힘이구나 새삼 느낀다. 2년째 청산되지 못한 대유위니아의 임금 체불 액수가 더 늘어나 올해 7월 기준 1천79억 원의 임금을 체불, 피해자는 2424명, 미청산액은 770억 원이라니 이 비현실적인 숫자에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국회의원 앞에서 철석 같이 약속을 하고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도 체불을 이어가는 사업주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가슴이 답답해진다.
다행히 여야 의원 누구 하나 가릴 것 없이 국감이 끝난 뒤 임금체불과 산업재해를 근절을 위해 TF를 만들고 쿠팡과 위니아 청문회를 열겠다며 진지하게 의견을 피력하며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문제 해결에 대한 희망을 품어본다.
언론의 정치 보도는 국정감사 기간만큼은 일반 시민이 파악하기 어려운 많은 의제를 소개하고 의원의 질의 의도를 읽어내 이해하기 쉽게 기사나 영상으로 풀어내는 데에 있지 않을까. 그런데 챙겨보지 않으면 좋은 기사는 잘 눈에 띄지 않는다. 사실 환노위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많은 상임위에서 우리 삶을 다루는 중대한 문제에 대해 진지하고 충실하게 감사가 이뤄졌다. 그 자료를 찾아내고 질의서를 만드느라 수많은 이들이 의원회관에서 밤을 지샜을 것이다. 그것이 국회의 가장 중요한 정치 행위 중 하나이지만 정작 이 진지하고 치열한 정치과정은 보도의 중심이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영상에서 적지 않게 접하는 소위 정치평론가라는 사람들도 이런 이야기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입법도 예산도, 국정감사 같은 '진짜 정치'는 없이 정치 평론을 한다.
정치란에서 인기를 끄는 것은 의원과 정당 간 말싸움이고 비정한 권력투쟁이다. 국정감사 기간에도 부드럽게 회의를 이끌며 상임위가 본연의 감사 기능을 하도록 노력하는 위원장보다 사이다 발언을 하는 위원장이 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원래 싸움 구경이 제일 재미있고 고구마보다는 사이다가 시원한 법이다. 그러나 정치를 오직 지고 이기는 게임처럼 다루는 보도는 조정과 합의라는 정치의 특성을 배제한다. 이런 풍토에서는 정작 시민의 삶을 진지하게 고민하며 현장을 찾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대 당 의원까지 존중해 설득하는 정치인은 관심도 인기도 얻지 못한다. 그보다 강한 지지자 집단의 지지를 얻고 상대 진영을 자극하는 거친 언사를 과시하는 이들은 이른바 '민생'과는 거리가 멀지만 보도량도 많아지고 주목도 받는다. 결국 '정치가 우리 삶과 무관한 싸움뿐'이라는 시민들의 정치혐오와 환멸을 부추긴다.
인상평이나 특정 진영에서 듣고 싶어 하는 정치 기사만이 아니라 취재나 조사에 기반한 친절하며 세밀한 정치 기사를 더 읽고 싶다. 아니, 좋은 기사가 조회수 경쟁 때문에 위축되지 않고 기자로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개탄과 야유, 냉소를 자아내는 정치 평론은 정치를 온전히 보여주지 못할 뿐 아니라, 시민을 진짜 정치에서 멀어지게 해 정치를 기성세력의 독점물로 방치하게 만든다. 혹은 우리는 열망과 실망의 사이클을 반복할 뿐이다. 불의한 통치자가 단죄를 받으면 또 새롭게 나타난 정의의 수호자가 우리 삶을 낫게 만들 거라는.
정당과 통치자의 민주적 리더십은 선악 구도나 정파적 믿음으로 쉽게 가늠되지 않는다. 섬세하고 촘촘한 복기와 고민이 없으면 역사는 반복될지 모른다. 대다수 노동하는 시민의 정치를 위해 의견보다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건조한 보도를 많이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정혜윤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미래읽기 칼럼의 내용은 국회미래연구원 원고로 작성됐으며 뉴스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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