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는 52시간 예외?..."경쟁력 강화" vs "개도국 마인드"

박지은 2024. 11. 12.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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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반도체 특별법' 당론 발의…보조금 근거 조항도 담겨
여당, 28일 본회의 통과 계획...우려 표하는 야당 입장 변수

[아이뉴스24 박지은 기자] 반도체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할 수 있는 재정적 근거를 마련하고 반도체 R&D 인력에 한해 '주 52시간 근무' 규제 예외 조항을 신설하는 것을 골자로 한 '반도체 특별법'을 놓고 논란이 조금씩 확대되고 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기업벤처위원회 위원장인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이 11일 '반도체산업의 경쟁력 강화 및 혁신성장을 위한 특별법'을 대표 발의했다.

여당은 이 법을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반도체 보조금에 대해선 일부 긍정적으로 협상할 여지가 있다는 입장이지만, 52시간제 예외에 대해선 우려를 표하고 있다.

법의 적용 대상이 될 산업계에서는 의견이 교차하고 있는 상태다. 특별법에 포함된 보조금에 대해서는 대체로 긍정적인 분위기지만, R&D 인력의 52시간 규제 예외 조항을 두고는 산업계 노사 의견이 상당히 다른 상황이다.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3나노 양산라인[사진=삼성전자]

여당과 경제계는 대체적으로 최근 삼성전자 실적 부진에서 비롯된 '한국 반도체 위기'의 주된 근거로 획일적인 주 52시간 규제를 꼽는다. 글로벌 경쟁 기업들은 밤낮없이 근무하지만, 우리 기업들은 52시간 규제에 묶여 있다는 논리다.

인공지능(AI) 반도체를 앞세워 시가총액 세계 1위 기업이 된 미국 엔비디아는 연구원들이 막대한 보상을 받는 대신 주 7일은 물론 새벽까지 근무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대만 TSMC는 연구원들이 24시간씩 3교대로 근무하는 '나이트호크 프로젝트'를 2014년부터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TSMC는 나이트호크 프로젝트 가동 후 삼성전자 몫이었던 애플의 아이폰용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전량을 수주했다. 당시 애플에 두 가지 버전의 AP를 제시했을 정도로 연구의 폭이 넓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국내 기업 사이에서도 52시간 규제 시행 후 근무 분위기가 느슨해졌다는 반응도 있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 직원들이 오후 5시에 식사를 하고 6시가 되기 전 셔틀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세계 최초와 초격차 기술력 유지가 가당키나 한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TSMC 파운드리 공장에서 생산한 반도체 웨이퍼 [사진=TSMC]

그러나 일반 직원 사이에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현재 반도체 특별법은 반도체 핵심 인력이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기술 개발을 할 수 있도록 노사 합의가 있는 경우 근로시간 규제를 완전히 풀겠다는 것으로 미국의 '화이트칼라 면제 제도'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직원들은 그러나 이미 반도체 R&D 인력의 경우 특별연장근로제도를 통해 최대 주 64시간까지 근무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을 맡고 있는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도 이미 64시간 근무를 도입한 상태다.

정치권에서 삼성전자 실책으로 인한 실적 부진을 한국 반도체 전체의 위기로 여기고 부적절한 처방을 내렸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삼성전자 DS부문에 근무하는 한 30대 직원은 "연구진이 일을 적게 해서 문제가 아니라 경영진이 방향을 잘못 잡아서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지금의 문제가 발생했다는 걸 직원들은 다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직원은 특히 "삼성전자는 부진했지만, SK하이닉스는 최대 실적을 내고 있는 상황을 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냐"고 꼬집기도 했다.

또 다른 30대 직원도 "충분한 인센티브 없이 근무 시간만 늘리면 반도체 업계를 떠날 사람이 더 많아질 것 같다. 지금도 미국으로 가고 싶어하는 동기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반도체 기업의 경우 탄력적으로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있어 높은 강도로 일을 하더라도, 아이들 라이딩(Riding)을 아빠가 할 수 있다고 하더라"며 "한국에선 어려운 일 아닌가"라고 아쉬워했다.

SK하이닉스 경기 이천 본사 전경. [사진=권용삼 기자]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삼성그룹 초기업노조도 R&D 주 52시간제 예외에 반대 입장을 냈다.

초기업노조는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근무시간을 늘려야 한다는 발상은 시대에 뒤떨어진 개발도상국 마인드를 반영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노조는 또 "이미 필요한 경우 특별연장근로라는 제도를 이용해 최대 주 64시간 근무가 가능하다"며 "이를 완화해 더 늘리는 건 노동자의 건강과 삶의 질을 심각하게 해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국민의힘은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과 합의를 거쳐 오는 28일 반도체특별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키겠다는 계획이다.

/박지은 기자(qqji0516@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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