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장당했다”... 반토막 주가에 목소리 높이는 개미군단
기업가치 개선 vs 단기 차익 목적
[왕개미연구소]
“10년 동안 장기 투자해 온 반려 주식인데... 제가 이렇게 ‘국장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신약개발회사 오스코텍 주주인 50대 직장인 김모씨는 같은 처지의 개인 투자자 2000명과 함께 단체 행동에 참여 중이다. ‘국장당하다’는 중복 상장, 기업 쪼개기, 유상 증자 등 대주주 이익 때문에 소액 주주들이 피해를 보는 상황을 일컫는 신조어다. 한국 증시를 뜻하는 ‘국장’에서 배신을 ‘당하다’는 의미가 합쳐졌다.
김씨는 “오스코텍은 지난 8월 유한양행이 미국에 수출한 폐암치료제 신약(렉라자)의 원개발사로, 앞으로 매년 1000억 가량 로열티 수입이 예상됐다”면서 “하지만 지난 달 기습적으로 비상장 자회사(제노스코) 상장을 신청하면서 기업 가치가 훼손됐다”고 말했다.
오스코텍과 비상장 자회사(제노스코)는 각각 판매 로열티의 20%씩 받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비상장 자회사가 상장하게 되면 자산 가치가 희석되므로 모(母)회사 기업 주가는 하락하게 된다.
실제로 지난 달 자회사 상장 추진 발표 이후, 오스코텍 주가는 단기간에 40% 하락했다. 김씨는 “현재 소액 주주 2000명이 뭉쳐서 지분 12.9%를 확보했고, 이는 최대주주 지분율(12.46%)보다 높다”면서 “최대주주의 자기 식구 챙기기 목적에서 추진되는 것으로 보여지는 자회사 상장을 막기 위해 적극적인 주주 활동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증시의 만성 질병인 저평가 현상이 지속되는 가운데, 개인 투자자들이 기업 가치 개선을 요구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부의 밸류업(기업 가치 제고) 정책 이후, 소액 주주 권리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점도 영향을 미쳤다.
액트·헤이홀더·비사이드 등 주주행동 플랫폼은 소액주주들이 실시간 소통하면서 결집하는 통로가 되고 있다. 과거에도 온라인 종목 게시판 등을 통해 일부 개미들이 뭉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 플랫폼은 마이데이터(본인신용정보관리)를 활용해 실제 주주 여부를 확인하기 때문에 주주 간 응집력이 한층 강력하다.
10월 말 기준 주주행동 플랫폼의 전체 가입자 수는 15만명이고, 주주들이 보유한 주식 가치도 10조원에 달한다.
윤태준 액트 연구소장은 “모래알로 여겨져 왔던 개인들이 똘똘 뭉치는 이유는 기업의 경영 활동을 훼방 놓으려는 게 아니라, 주주 가치를 높이는 데에 있다”면서 “소액 주주들의 희생을 일방적으로 강요하지 않는다는 원칙만 지켜진다면, 오히려 대다수 주주들은 회사의 성공을 위해 적극적으로 지원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소액 주주들의 결집은 특히 회사의 의사 결정이 주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상황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최근 120억원의 유상증자를 발표한 마스턴프리미어리츠가 대표적이다. 과도한 유상증자 규모 때문에 주가는 연일 하락해 역대 최저가를 기록 중이다.
마스턴프리미어리츠의 과도한 유상 증자는 주식 가치를 크게 희석시키는 부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이에 반발한 소액주주들은 회사 측의 경영 방침에 우려와 불만을 표출하고 나섰다.
마스턴프리미어리츠 소액주주 대표 박시영씨는 “현재 개인 주주 물량 140만주, 지분율 5.3%를 확보해 여느 운용사 못지 않은 규모”라며 “주주로서 회사가 잘못된 의사 결정을 내리고 있는 건 아닌지, 불필요하게 많은 비용을 지출하는 건 아닌지 면밀히 감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단기 시세차익 목적 결집엔 우려
소액주주 운동에 참여하는 개인들은 단체 행동을 통해 기업들이 지배 구조 개선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게 하고, 나아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에 기여할 수 있다고 믿는다. 특히 대주주가 개인 용도로 상장회사를 활용하는 경우에 더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한다.
실제로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소액 주주들이 주도해서 내놓는 안건이 주주 총회에서 통과되면 주가가 많이 오른다.
하지만 단기 시세 차익을 목적으로 한 소액주주 운동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도 나온다. 단기 차익을 노리고 기업의 경영 방침에 과도하게 개입하거나 단기적 주가 부양을 요구하는 것은 기업의 장기적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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