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리에스 일루션’ 이은결 “마술을 해체하고 싶었다”
“욕망에서 출발해 타협하지 않은 작품”
포스터에서 ‘이은결 연출’이라는 글귀를 확인한 뒤 <멜리에스 일루션>을 보러 오는 관객은 당황할 수도 있다. 무대에 등장하는 퍼포머 6명은 모두 마술사 출신의 초기 영화감독 조르주 멜리에스의 가면을 쓰고 있다. 이 중 누가 이은결인지는 커튼콜 때 가면을 벗은 뒤에야 알 수 있다.
심지어 이 작품에는 일반적인 의미의 ‘마술’도 별로 없다. 제작진은 “연극, 마술, 영상, 마임, 가면극이 결합된 복합 공연”이라고 소개한다. 마술 공연이었다면 어린이 관객을 다수 모으겠지만, 이은결은 먼저 공연장인 LG아트센터 서울 측에 관람연령을 ‘중학생 이상 추천’으로 해달라고 요청했다.
12일 LG아트센터 서울에서 만난 이은결은 “제 욕망에서 시작해 최대한 타협하지 않고 만든 작품”이라고 말했다. ‘마술사’ 이은결이 대중과의 접점을 만드는 데 성공하고 이름을 알렸다면, ‘일루셔니스트’라 자칭하는 이은결은 작품에서 자신의 이름을 감출 정도로 ‘작품 자체’를 밀고 나갔다. 실제 2016년 초연해 꾸준히 개발 과정을 거친 <멜리에스 일루션>은 그동안 포스터에 ‘이은결’이라는 이름을 넣지 않았다.
최초의 영화인 뤼미에르 형제의 ‘기차의 도착’(1895)을 본 멜리에스는 영화의 가능성에 매료됐다. 곧바로 자신의 영화사를 차려 제작과 연출을 시작했고, 최초의 SF영화라 할 수 있는 ‘달세계 여행’(1902)을 만들었다.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가 사물과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에 가깝다면, 멜리에스의 영화는 미니어처 촬영, 이중노출 등 특수효과를 활용한 판타지 영화였다. <멜리에스 일루션>은 파산한 뒤 말년에 접어든 멜리에스가 작은 장난감 가게를 운영하며 여생을 마쳤다는 데서 착안했다. 장난감을 고치던 멜리에스가 떠올리는 환영을 그의 영화와 함께 무대에 구현한다. 멜리에스가 개발해 활용했던 초기 영화의 각종 특수효과가 무대에 재현된다.
이은결은 “마술을 해체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은결에게 기존 마술의 결론은 단일했다. 아무리 신기한 퍼포먼스를 보여도 결국은 ‘마술사에겐 신기한 힘이 있다’는 것과 ‘그 과정은 공개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은결은 멜리에스의 특수효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드러냄으로써 마술의 전제를 깬다.
이은결은 “마술을 하면서 관객은 즐거워도 내가 즐겁지 않은 적도 많았다. 즐거운 일 해야 오래 살지 않나”라며 “내 버라이어티 쇼를 보러오신 분께는 당혹감·실망감을 드릴지 모르겠지만, 새로운 걸 경험하고 싶은 분께는 충분히 흥미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멜리에스 일루션>은 ‘새로운 언어’를 찾으려는 이은결의 노력과도 관련 있다. 이은결은 “‘삶의 느낌’을 마술로 표현할 때 그걸 대중의 입맛에 맞게 할 수도 있고, 언어에만 집중할 수도 있다”며 이번 작품은 후자에 속한다고 설명했다. 무대 위에서 인용되는 영화들은 에드윈 포터, 찰리 채플린, 버스터 키튼, 세르게이 예이젠시테인, 장 뤼크 고다르, 스탠리 큐브릭 등 영화 매체의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한 이들의 작품이다.
엔터테인먼트를 완전히 포기한 작품은 아니다. 작품 후반부에는 관객이 스마트폰 불빛으로 참여해 퍼포머가 이를 활용하는 대목도 있다. 이은결은 관객에게 “이은결이라는 맥락, 영화라는 맥락을 모르고 무방비로 오시면 좋다”며 “(극 중) 스타맨은 관객의 플래시 별빛에 길을 잃기도 한다. 관객도 자신의 해석대로 공연을 가져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공연은 17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 U+스테이지에서 열린다.
백승찬 선임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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